[New Face 2014] 민진영
유년의 기억, 그리고 집
어둡지 않지만 밝지 않다. 작가 민진영은 집, 공간, 빛, 어릴 적 기억 등에 중심을 두고 작업해왔다. 집하면 마음을 놓고 푹 쉴 수 있는 휴식의 공간을 떠올릴 수 있다. 재료로 사용되는 빛은 어둠과는 대비되는 감각으로 포근하고 따뜻한 느낌을 주곤 한다. 그런데 이러한 감성적인 소재와 재료를 사용함에도 민진영의 작품은 꽤나 이지적이고 차가운 면이 강하다. 개인의 유년시절 기억에 기반을 둔다는 그녀의 작품에서 어린아이들이 뛰어노는 순진무구한 동심의 꿈동산이 떠오르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
집은 사실 상징적인 소재일 뿐 작가의 본질적 관심은 공간에서 펼쳐지는 개인의 이야기다. 집이라는 공간에서 살아가는 최소단위의 공공집단이자 지극히 개인적인 가족을 다루고 있다. 그들만이 알고 있고, 경험한 이야기가 펼쳐지는 집에서 작가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리고 그 속에는 안락하고 행복한 추억과 영영 잊고 싶은 과거가 공존한다. 민진영의 집은 단단하고 굳건한 건축이라기보다는 비닐하우스, 텐트 등 입체적이고 가변적인 요소가 강하다. 불안전한 집에 대한 그녀의 어릴 적 기억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어린 시절 트라우마가 가학적으로 폭발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다친 살을 부드러운 연고로 치료하지도 않는다. 그녀는 연민이라는 감정으로 자신의 상처를 살며시 드러내다가 또다시 억누르기를 반복한다. 보여줄 듯 보여주지 않는 그녀의 감정은 기나긴 터널을 지나는 어린 민진영을 떠올리게 한다. 강원도 삼척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어느 늦은 밤 본인이 감당할 수 없는 무거움을 얹고 산길을 건너는 떨리는 발걸음, 멀리 집에서 뻗어 나오는 빛을 갈망하는 눈망울 그리고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그 어둠의 터널이 언젠가 끝나 밝은 빛의 세상이 오기를 열망하는 소녀의 바람이 작품과 작가에게서 나타난다. 작가는 이러한 기억이 ‘치부’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치부’라는 감정은 타인에게 보여주거나 알리고 싶지 않은 과거이면서 누군가 알아줘서 토닥여주기를 바라는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설까. 작가는 유독 ‘상처’와 ‘어린아이’에 관심이 많다.이번 6월 12일부터 7월 9일까지 OCI에서 열리는 <민진영, 박경진전>에서 선보이는 신작에서 상처받고 치유가 필요한 어린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불안한 심리의 어린이들이 미술심리치료를 받으며 그린 그림들을 모아 영상으로 보여주는 작업이다. 작가는 예술작품이 아닌 심리치료의 방편으로 그린 그림에서 예술이 가진 치유의 감정을 공유했다. 작가가 생각하는 가장 큰 감정 중 하나는 ‘연민’이라고 한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큰 힘이 있는 단어라고 생각하며 공감 코드의 가장 적절하고 기본이 되는 요소라고 본다”고 말했다. 개인사를 작품의 소재로 삼지만 작가가 말하는 연민은 단순히 자기연민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인간은 누구나 크든 작든 상처를 받고 아물리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 상처는 연민이라는 관심으로 공감을 만들어내고 치유를 이끌어낼 수 있다.
인터뷰 말미에 그녀는 “주변에서 작품이 점점 밝아진다는 말을 듣는다”며 미소를 지었다. 곧 태어날 둘째와 함께 앞으로는 길고 긴 마음의 터널을 빠져나와 어린잎 같이 여리고 따뜻한 연민으로 개인과 타인을 밝혀낼 작업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임승현 기자
민진영은 1981년 강원도 삼척에서 태어났다. 홍익대 조소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고 2012년에는 신한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2013년 ‘2014 OCI YOUNG CREATIVES’에 선정되었다. 현재 난지창작스튜디오에 입주해 작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