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Face 2014] 추미림
디지털 시대의 향수
픽셀아티스트, 시각예술가, 디자이너 등 추미림을 따라다니는 수식어는 유독많다. 그 중 가장 많이 알려진 연관검색어는 픽셀아티스트다. 이 표현은 한 매체에서 작가를 소개하면서부터 시작되었지만 사실 작가가 이 단어를 언급한 적은 없다. 처음엔 마치 픽셀만을 작업의 중심으로 삼는 듯한 어감을 주는 픽셀아티스트란 꼬리표에 거부감을 느끼기도 했다. 픽셀이란 컴퓨터 화면의 이미지를 구성하는데 기본이 되는 단위이다. 조각조각 쪼개진 이 작은 단위를 반복시켜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는 자신의 일상이다.
사람들이 정보를 검색 및 공유할 수 있는 정보 공간을 뜻하는 ‘웹’ 혹은 ‘인터넷’과 그녀의 생활공간인 ‘도시’가 그녀의 일상무대다. 이 두 장소는 가상과 현실을 넘어 차가운 매체로서 이해되고 해석되곤 한다. 그러나 도시에 성장기반을 둔 젊은 세대에게 어린 시절의 추억은 도시 내부에서 나타났고, 아련하고 아름다운 향수는 도시 속에서 벌어진 해프닝들로 가득찼다. 자연은 자연스럽지 않다. 그들에겐 오히려 길게 늘어선 아파트, 높은 빌딩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스카이라인, 그 사이로 뻗어나오는 야경이 일상속 자연스러운 생활공간이다.
웹 또한 마찬가지다. 어린 시절부터 인터넷 세상에서 궁금증을 찾아 헤매고 많은 사람과 소통하는 매개 역할을 해온 세대, 이들에게 웹공간은 차갑고 건조한 매체가 아니다. 웹은 나와 나를 둘러싼 환경으로 가상과 현실 속의 나 사이를 끊임없이 이어준다. 작가는 디지털 환경에서 발생하는 향수에 주목했다. 시뮬라크르의 세계를 시뮬라시옹의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이 작가의 목표는 아니다. 웹은 복제시대의 원본성을 잃은 무미건조한 세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디지털 세대는 웹상에서 자신을 투영하며 살아간다. 개인의 감성을 반영하고 다수의 감정이 오고간다. 심지어 오프라인의 물리적 감각이 웹에서 구현된 자아에 전이되기도 한다. 그리고 온라인상에서 감정표현은 오프라인상의 ‘나’에게 다시 반영된다.
10월 1일부터 21까지 윌링앤딜링에서 열리는 개인전에서 선보이는 작품은 이런 감정교차가 두드러진다. 어느 날 작가는 자신이 거주했던 파리 베르사유 지역을 인터넷 지도로 검색했다. 부감으로 찍힌 위성사진 속 도시는 자신이 유학생으로서 느낀 외로움과 고독이 깃든 공간이 아니었다. 화면 속에 비친 위성사진을 보면서 작가는 아름다운 기억들이 가득한 베르사유를 떠올렸다. 가상현실 속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감성, 왜곡되고 선택되는 기억을 작가는 가장 단순한 단위인 픽셀로 재탄생시켰다. 기억을 재조합하듯 지도는 자신의 흔적을 재확인시키고 재배열했다.
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추미림은 디자인과 순수미술 사이의 경계에서 고민했다. 영화 포스터회사, 게임 회사에서 근무하기도 했던 그녀는 기존의 카테고리 안으로 밀어넣어 작가를 정의하려는 환경에서 갈등했다. 새로운 길을 찾고자 프랑스로 유학을 간 그녀는 장르 간 활발한 교차를 당연시하는 프랑스 교육과정에서 무수히 나눠지고 교차 및 집합하는 아이덴티티의 가능성을 엿보았다. 현재 작가는 미술전시 외에도 다양한 상업장르와의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하고 있다. 각종 패션 및 뷰티 제품과의 협업이 대표적이다. 작가로서의 정체성이 흐려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을법한데 작가는 “기존의 제품과 내 작업 사이의 콜라보레이션보다 둘 사이의 유기적이고 창조적인 제3의 무엇인가를 만들 수 있는 협업을 해보고 싶다”며 오히려 협업 자체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방식의 아쉬움을 토로한다.
추미림은 특정 범주로 구분되기를 거부한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녀는 지극히 일상적인 주변 환경에 관심을 가지고 이를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우리에게 함께 나누기를 제안한다는 점이다.
임승현 기자
추미림은1982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단국대 시각디자인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베르사유 보자르에서 수학했다. 서울의 픽셀스페이스, 한국디자인공예문화진흥원 윈도우 갤러리, 싱가폴의 갤러리 스테프에서 두차례 개인전을 가졌다. 2012년부터 K-SWISS, LG 생활건강 등과 다양한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