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face 2014] 조종성
이동시점은 상상의 발판
서울 한성대입구역 인근 갤러리 버튼에서 선보인 렌티큘러 작업은 동양화가로 알려진 조종성의 작업 면모에 ‘과연 같은 작가의 작품인지’ 물음표를 찍게 만든다. 렌티큘러에 엿보이는 집 형상의 구조물은 관람객의 움직임과 보는 각도에 따라 투명한 케이스가 씌워졌다 벗겨졌다 한다. 작가는 이 작업이 투명하기 때문에 쉽게 인식하지 못하는 인간의 삶에 대한 규제와 개입에 관한 이야기라고 말한다.
사실상 조종성의 작업에서 이동시점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의 작품은 전통적인 산수화 일부를 차용해서 마치 작가가 그림 속에 직접 들어가 산과 산 사이의 풍경을 거닐듯이 산과 산 사이에 무엇이 있는지 머릿속에서 이동하고 상상한 장면을 표현한 것이다. 그는 “이동시점 자체는 머릿속에서 움직이는 것이고, 계속 변화하는 산세들을 하나로 모았다가 펼쳐내는 방식”이라고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서양의 원근법이 고정된 장소에서 바라보는 시점이라면 동양의 전통적인 시선은 한곳에 머무르지 않고 이동하기 때문에 복합적이고 역동적인 변화를 담아낼 수 있다.
여기에서 그가 말하는 전통은 조금 특별하다. 보통 한국화에서 전통을 말할 때 화법이나 색채, 문양 등으로 설명하는 경우가 많지만 조종성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이 땅의 자연적인 지형과 기후에 대처하며 살아가는 방식이 오히려 전통에 가깝다고 말한다. 과거 산세를 오르내리면서 바라보던 다양한 시점이 오늘날에는 고층빌딩이나 엘리베이터 등 현대 건축물을 통해 경험하는 시점과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우리나라 건축의 대표적인 전통을 상징하는 한옥, 기와보다 남향집이 더 전통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한국의 지역적 특성상 겨울에는 찬바람을 막아주고 여름에는 시원한 바람이 불기 때문에 시멘트나 콘크리트로 지어도 남향집이 많다.”
사실 무엇이 동양적인지, 서양적인지 구분하기 애매모호해진 지금 우리의 의식 속엔 우리의 전통보다는 서구의 문화, 그리고 현대적인 것이 우월하다는 사고방식이 은연중에 깔려 있다. 조종성은 “자연 환경이 변하지 않는 이상 지역의 문화는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에도 있으며 미래에도 있다”며 “역사와 환경에 따라 서로 다른 지역 간의 가치를 동등하게 연결해서 볼 수 있는 시각에 관심이 많다”고 밝혔다.
그의 작업에는 투명한 케이스 안에 들어있는 건축 모형 뿐 아니라 집의 형태가 자주 등장한다. 삶을 껴안은 장소인 집은 우리에게 가장 익숙하면서도 좋은 경관을 제공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실제로 과거 선조들은 아름다운 자연을 옆에 두고 보기 위해 경치가 뛰어난 곳에 정자를 짓지 않았던가? 이처럼 그의 작업에서 집이라는 메타포는 세상을 바라보고 경험하는 시공간을 담아내는 유동적인 개념이다. 예술가이자 한 명의 사회 구성원으로서 조종성은 고민이 많다. 우리의 삶에서 규제와 개입은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는가? 식민지 시대와 그 잔재 청산 문제, 분단 이후 한국과 미국의 관계, 독재 권력과 지금의 정치 관계 등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견고한 풍경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자유롭게 이동하며 숨은 시점을 포착해내고, 우리만의 시각으로 더 나은 미래를 상상할 수 있을까?
이슬비 기자
조종성은 1977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동아대학교 회화과와 한성대학교 대학원 회화과를 졸업했다. 5회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서울, 상하이, 파리 등지에서 개최한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제5회 금호영아티스트에 선정된 바 있다.
<architecture agaINst space, len. 05>(사진 맨 왼쪽) 렌티큘러 45×45cm 2014 갤러리 버튼에서 열린 개인전<상자 안의 고양이>(6.5~26) 광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