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Face 2014] 강호성
어린아이, 세상으로 나오다
작가 강호성은 스스로를 ‘알전구’ 같다고 표현했다. 알전구는 둥근 곡선과 유리의 매끄러운 질감 때문에 만지면 차갑다. 하지만 전구를 등에 끼우는 순간, 온기를 갖고 투명했던 유리에선 빛이 밝아온다.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라 차갑다는 말을 듣지만 그의 내면의 온기를 온전히 담은 작품은 맑고 밝다.
강호성은 대학교 4학년 때 제1회 아시아프에 출품한 <음유동자> 시리즈가 주목받으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는 <요지연도(瑤池宴圖)>를 떠올리며 아이들을 동자로서 불러들였다. 천진난만한 아이가 말 위에 올라타 악기를 다루는 모습은 보는 사람의 입가에 저절로 미소를 머금게 했다. 바로 이 솜사탕같이 포근한 아이들의 모습을 그린 작품으로 수많은 갤러리로 부터 러브콜을 받은 그는 대학교 졸업 직전 첫 개인전을 열며 성공적으로 미술계에 데뷔했다. 그러나 이때 작가는 물밀듯 들어오는 상업화랑의 러브콜 때문에 그림이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을까 경계하며 작업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미지의 세계에서 연주하던 동자들을 자신의 일상 속으로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음유동자> 시리즈에서 등장인물 의 캐릭터를 선보였다면, 그 이후 작업에선 그들의 공간, 스토리가 체계적으로 잡혀갔다. <산책>은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벤치에 앉아있거나 화단으로 나온 동화 속 주인공들이 돋보인다. 때로는 공작 깃털 초대장을 받아들고 다리를 건너가 마주하게 되는 동화 속 세상을 나타내기도 했다(<우리시대의 동화>). 2013년 전시한 <롤 플레이>는 여러 시도를 한 작품이었다. 역할극을 주제로 어린아이 얼굴의 특징을 끄집어내어 가면을 만들었다. 작가 스스로 ‘못난이 시리즈’라고 부르는 이 작품은 아이들에게 감각적인 부분이 필요한 역할을 부여하고 이를 담당하는 모습을 담았다. 또 한 가지는 가면의 제의성에 주목한 ‘서낭당’이다. 도깨비 가면 자체가 하나의 권력을 갖는다고 상정하고 권력에 종속되어 안정감을 느끼는 인간의 속성을 가면 앞에서 아이들이 장난치는 모습으로 표현했다.
강호성의 모든 작품에는 스토리가 살아있다. 그러나 저마다의 스토리가 유기적이지는 않다. 혹자는 시리즈마다 바뀌는 서사에 당혹스러울 수 있지만 한편으로 매 전시마다 그 당시에 느끼는 감정이 담긴 이야기를 모색하는 작가의 뛰어난 스토리 구성능력이 눈에 띈다. 각 스토리는 아이가 등장하고, 소리가 표현된 공통점도 있다. 작가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절대적인 미가 있다고 믿는다. 이를 나타내기 위한 소재로 음악과 아이를 택했다”며 자신의 미학적 견해를 밝혔다. 작가는 어두운 내용을 주제로 삼더라도 아름답고 따뜻하고 맑게 표현하고자 한다. 장지보다 비단에 채색을 선호하는 이유도 맑은 이미지를 보다 영롱하게 표현하기 위해서다. 비단이라는 특성상 철저하고 꼼꼼하게 구상한 후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특징이 있다.
이번 노암갤러리(8.27~9.3) 전시에 선보일 작품에선 눈에 띄는 변화가 감지된다. 물론 여전히 비단에 스며든 은은한 빛과 아이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아이들이 10대 후반으로 훌쩍 자랐고 서사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들보다 아이들 개개인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예민한 청소년기 아이들을 표현한 ‘이상(理想)감각’에서 감각적이고 여린 아이들의 오감을 행동으로 표현했다. <사다리 위의 신사>라는 제목으로 준비 중인 전시는 <롤 플레이>와도 연결지점이 있다. 사다리를 개개인의 모습으로 상정하고 그 위의 신사들은 하나의 권력자로 보았다. 사실적인 상황과 연결되어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러한 변화는 지난 4월에 발생한 세월호 침몰 사건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고등학생을 가르치는 일을 꾸준히 해온 작가에게 큰 우울감을 주었다고 한다.
비단을 선택한 작가가 표현하는 우리 시대의 모습에는 맑고 따뜻함이 스며들어 있다. 고독하거나 끔찍한 세상일지라고 그의 붓을 거치면 생그럽게 태어난다. “추에서 미를 찾는 것은 나의 소명이 아니다”라는 작가의 한마디가 그의 작품을 가장 잘 설명하는 단서가 아닐까.
임승현 기자
강호성은 서울대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을 수료했다. 2009년부터 5회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다수의 기획전에 참여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정부미술은행, 영은미술관, 분당서울대학교병원 등에 작품이 소장되었다. 현재 양주시립 미술창작 스튜디오 777레지던스 입주작가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