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FACE 2015 김원정
“김원정은 나름의 실험적 작업방식으로 자연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그녀는 타버린 편지를 묘목과 함께 심었는데 이것은 하나의 의식이자 사적 행위였다. 또한 병을 수직으로 심고 그 안에 상추씨를 넣어 다른 참여 예술가들을 위해 상추를 키웠다. 이 모든 소규모 프로젝트들은 시각적으로 아름다운 수작업이 아닌 “생활 속 예술”로서 또 다른 차원의 섬세한 작업이다.”
– 클라라 청 홍콩 C&C디렉터
세상에 쓸모없는 것이 어디 있으랴
어떤 대상이나 생각이 ‘쓸모있느냐 없느냐’의 기준은 제각각이고 판단은 ‘상대적’이다. “세상에 잡초라는 말은 없다”는 말을 곱씹어보면 보리밭에서 자라는 벼, 논에서 자라는 보리를 잡초로 보는 우리네 편견에 대한 일갈이다. 상대적 가치에 대한 판단을 통해 얻는 생의 깨달음을 장자(莊子)는 이미 인간세편(人間世篇)을 통해 설파한 바 있다. “쓸모없다고 하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쓸모있는 것이 된다. 발상의 전환을 해보면 쓸모없음이란 없다. 우리는 쓸데있는 것의 쓰임을 알지만 쓸데없는 것의 쓰임을 알지 못한다.” 이 말은 19세기 서구 시인의 언어를 통해 재현됐다. “잡초란, 아직 그 가치를 발견하지 못한 식물이다.”(랄프 왈도 에머슨(Emerson, Ralph Waldo))
예술이란 바로 이러한 말의 궁극적 지점에 다가가 있는 것이 아닐까? 예술이 삶을 살아가는 데 유용한 가치로 기능하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세속과의 거리를 측량하는 것이 진정으로 예술을 알아가는 과정일 것이다. 당장 내 밥상 위의 밥이 되지는 않지만 그 이면의 효용은 분명 존재한다.
김원정은 작업 태도와 방식에서 현인들의 언급을 실천하는 듯 보인다. “자꾸만 쓸모있는 사람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우리의 노력이 과연 어떠한 결과를 가져 왔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 작가가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해온 작업이 바로 <무용지용(無用之用)> 연작이다. “어떤 작물이든 특정한 목적에 부합하지 못하면 가치 없는 잡초일 뿐이라는 말에서 잔인한 인상을 받았어요. 그 말을 풀어보면 본질이 무엇이든 간에 관점과 목적에 따라 모든 것이 잡초일 수도 아닐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 사회 속에서 우리가 간과했거나 혹은 알아보지 못한 우리들 혹은 여러 존재의 가치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고자 잡초에 비유하여 작품으로 표현하게 된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잡초란 해당 경작지에 오롯이 자라야 하는 식물의 성장을 저해하는, 제거되어야 할 존재로 여겨진다. 하지만 몇몇 식물학자들은 뿌리가 깊이 박히지 못한 식물을 위해 이른바 잡초들이 토층 깊은 곳에서 양분을 끌어올려줘야 비로소 비옥한 땅이 된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잡초는 쓸모없는(無用) 것이 아니라 존재의 이유가 명확한 것이다. 우리의 삶도 그렇다. 유아독존의 삶에서는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을 수 없다. 우리는 끊임없이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인식하고 인정하기에 나 자신이라는 가치만 존재하는 삶은 그 어디에서도 의미가 없음을 안다. 그렇지만 이른바 ‘우(愚)’를 계속 범하는 이유는 나의 가치를 지키려는 욕심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김 작가의 작업은 대부분 초록의 기운이 가득하다. 아마 그녀가 나고 자란 곳(경남 고성)에 대한 기억을 거부할 수 없었으리라. 학업을 마치고 돌아온 작가는 갑작스러운 모친의 죽음에 충격을 받았고 그것을 극복하는 수단으로 꽃을 비롯한 식물을 수집하게 되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인생의 부침이 닥쳤을 때, 결국 작업이 그녀의 탈출구 구실을 했던 것. 그렇다면 김 작가는 잡초의 가치를 발견하면서 인생의 분기점을 마련한 셈이다. 그러한 여정에서 최근 참여한 <태화강 국제설치미술제>에 설치했던 <A Journey 상추 프로젝트 : 끝없는 항해>는 이전 작업의 맥락을 이으면서 언어적 유희성을 살린 새로운 갈림길로 접어든 작품으로 보인다. “상추라는 이름에 제가 지나온 시간을 투영하기 위해 생각 ‘상(想)’과 뽑을 ‘추(抽)’라는 의미를 부여하게 되었고, 이 두 단어의 조합은 상추 작업의 개념이 되면서 동시에 관객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상추> 작업은 언어로 의미를 직접적으로 제시하기보다는 상상의 여지를 제공하는 수단으로 국한했다고 설명했다.
어쨌든 김 작가의 작업은 푸르름을 담는다. 그 색과 향취는 토양이 없이는 존재하거나 이룩될 수 없다. “총명하고 지혜롭지 못하기에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려 노력하는 편”이라며 겸양의 제스처를 취했지만 “생명을 담는 ‘화분’이 되고자 한다”는 작가의 말은 작업에 대한 야심찬 욕심으로 들렸다.
황석권 수석기자
김원정은 1981년 태어났다. 경남대 미술교육과와 Pratt Institute Master of Fine Arts를 졸업했다. 지금까지 총2회의 개인전을 열었다. 또한 한국과 미국 등지에서 열린 다수의 기획전에 참여했다. 현재 경남 고성에서 작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