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FACE 2015 이정형
“작가의 작업이 노동의 부산물을 재구성하는 이유, 그래서 그 현장감을 생생하게 드러내어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바로 세대의 현실을 예술에 곧바로 투사한 것이다. 지금까지 예술은 순수의식이어야 했고, 사회참여적이더라도 적어도 미감적 형식을 반영해왔다. 이정형 작가의 메타포는 상궤를 완전히 달리 하는 것이다.”
– 이진명 간송C&D 큐레이터
너와 나의 연결고리
영화 <인셉션>에서 수면상태로 들어간 주인공은 강한 물리적 충격을 받아 현실세계로 돌아온다. 영화에서는 이를 ‘킥’이라 한다. 영어로 ‘짜릿한 쾌감’을 뜻하기도 하는데 최근에는 TV에서 셰프가 자신만의 특별한 조리법을 ‘킥’이라 불러 귀에 익숙한 단어다. 이정형의 작업을 보고 있자면, ‘작가의 킥’이 궁금해진다. 순간을 사진으로 포착하는 작가의 조형적 미감은 투박하면서도 세련됐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노동의 중심에서 순간적 찰나를 놓치지 않고 작업으로 연결시키는 전환의 순간, 그 결정적 지점은 무엇일까.
이정형의 작업은 누구보다 일상과의 유착과 단절이 극명하다. 작가는 이른바 생계형 작업과 예술적 작업이라는 두 작업 경계의 묘한 줄타기를 시도한다. 생계를 위한 노동으로 작가는 ‘종합 설치 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이곳은 작품의 디스플레이나 전시장 설치 등의 일을 하고 있다. 이정형은 20대 중반부터 유명 작가의 어시스턴트로 활동했다. 작업 설치를 돕다보니 점차 전시장 설치나 공간을 구성하는 일에 대한 도움요청이 잦아졌다. 이 활동은 분명한 노동이다. 전시장은 작품이 진열되고 보여지는 공간이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공사 현장이다.
작가는 일터에서 틈나는 대로 사진을 찍는다. 노동하는 사람, 휴식을 취하는 노동자, 노동 이후의 잔재 등 현장에서 벌어지는 시시비비의 순간을 가감없이 담는다. 특별한 연출 없이 휴대전화로 찍은 사진은 기록물에 가깝다. 작가는 그렇게 찍은 사진을 모아 분류한다. 카테고리를 만들어 기록의 현장을 정리한다. 이중 전시할만한 작품을 선정하고 설치작업의 모티프를 삼기도 한다. 이정형의 작업은 날것 그대로의 모습에 가깝다. 이정형 작가는 지난해 아마도예술공장에서 진행한 제2회 〈아마도 애뉴얼날레_목하진행중〉에 참여했을 때 “작품의 뒷이야기가 매우 흥미롭다. 그러나 설명 없이 작품만 봤을 때는 전달이 부족하다”는 의견을 많이 들었다. 이번 윌링앤딜링에서 열리는 그의 첫 개인전 〈파인 워크〉(4.30~5.20)에서 선보일 작품은 그 의견을 반영하여 날것 그대로를 보여주기보다는 가공과 변주를 취하려고 노력했다. 작가는 ‘벽’을 큰 테마로 설정했다. 벽을 칠할 때 사용하는 페인트통을 모아둔 것을 표현한 <Painter>는 마치 작가의 팔레트를 연상케 한다. 또 벽을 칠할 때 사용하는 바퀴 달린 의자는 약간의 변용을 통해 움직이는 가벽의 모습을 갖췄다.
결국 전시가 열리면서 사라지는 사람들의 흔적과 노동의 공을 완성된 전시장에 다시 작품으로 소환한다. 크게 가공을 거치지 않은 날것의 느낌이 오히려 세련된 유머, 지적인 풍자로 다가온다. 그렇다고 그가 사회 비판적인 시각에 초점을 맞춘 작업은 아니다. 작가는 젊은 작가들이 노동과 예술을 병행하는 행위를 부조리게만 인식하지 않는다. 다만 이 둘 사이의 상응을 이끌어가는 교착지점을 찾으려 한다. 물론 2년 전까지만해도 노동과 예술 사이의 괴리감, 그 사이에서 예술가로서의 자신이 사라져버리는 것은 아닌가 고민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정형은 노동 현장을 예술로 끌어들이면서, 오히려 소재의 폭이 무궁무진하게 넓혔다. 작가는 “일은 작업이 되지만, 작업은 일이 될 수 없다”며 일터에서 얻는 많은 예술적 감각의 순간을 이야기했다.
일례로 공구를 구비하기 위해 자주 들르는 청계천 공구상가에서 나열된 공구들을 보고 어느 순간 영감을 얻는 식이다. 누군가의 눈에는 물건들이 뒤죽박죽 쌓여있는 듯 보이지만 그 속에 숨은 법칙이 있었다. 그걸 발견한 순간 작가는 작업의 룰을 생각해낸다. 한편 공사 현장에서 사용하는 다양한 공구도 그에게는 특별한 스토리를 담은 예술오브제로서 읽힌다.
노동과 예술의 연결고리를 직접적으로 투사하고 물질적으로 드러내는 이정형의 표현 방식은 숭고한 아름다움의 표현은 아니다. 그러나 노동과 예술의 뫼비우스의 띠 자체가 예술적 숭고함은 아닐까. 그의 작업을 대면한 관객이 작품을 이해하는 ‘킥’이다.
임승현 기자
이정형은 1983년 태어났다. 홍익대 도예유리과와 동 대학원 조소과를 졸업했다. 2008년부터 수차례의 단체전과 세 차례의 공공미술프로젝트에 참가했다. 윌링앤딜링에서 4월 30일부터 5월 20일까지 첫 개인전 〈파인워크〉를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