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FACE 2016 신정균
이데올로기의 실체를 찾아서
“군대 전역한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군대를 소재로 작업하냐?” 한국의 분단 현실을 끊임없이 상기시켜 온 작가 신정균은 지인들에게 종종 이런 핀잔을 듣는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전역 이후에도 1년에 한 번 예비군 훈련을 받고, 몇 년 전에는 훈련장에서 누군가 옆 사람을 총으로 쏴버려 큰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운이 좋아 다행이지 죽은 사람이 작가 자신일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순 없었다. 한반도에 사는 사람 중에서 분단 현실에서 자유로운 이가 누가 있을까?
첫 번째 개인전 <발견된 행적들>은 사회적 맥락과 과거의 교육 속에서 자연스럽게 내 안에 자리 잡은 이념의 실체를 직접 찾아보려는 시도였다. 아트스페이스 오에서 열린 두 번째 개인전 <알 수 없는 일>(2.12~27)은 자신에서 확장해 주변 사람들과 함께 일상에 작동하는 이데올로기를 찾아보는 과정에 해당한다. “제가 속한 세대는 윗세대처럼 6?25전쟁이나 민주화운동을 직접 겪지 않고 피상적으로 접했습니다. 그래서 뚜렷한 이념이 없는 것 같지만 일상과 주변에서 목격되는 일련의 사건들과 결코 동떨어있는 것은 아니죠.”
이번 전시에서는 간첩 식별요령을 토대로 작가가 만든 ‘작업 매뉴얼’이 전체적인 틀이 되었다. 작가는 매뉴얼대로 행하면서 남을 의식할 수밖에 없었고, 남들도 그를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았지만 사실 하나하나 뜯어보면 특별히 문제 될 것은 없었다. 전시장 한 켠에 설치된 방 <Numbers Station>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나열된 물건들은 일상에서 마음만 먹으면 구할 수 있는 것으로 특별한 개연성 없이 한곳에 모아놓은 것이지만 마치 간첩으로 추정되는 누군가의 은신처처럼 보인다.
작가는 한국 사회에서 금기시된 것과 아닌 것이 사실은 한 끗 차이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그의 작업은 작가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인식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오해를 받거나 불편한 지점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작가는 이데올로기를 찾는 과정에서 우리 사회에서 작동하는 이데올로기를 몸소 체험한 셈이다. 작가는 특유의 재치로 이데올로기가 작동하는 경계를 교묘하게 넘나듦으로써 그 실체를 드러낸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재)번역된 시)>에서는 한국과 미국에 대한 적개심을 그대로 표출한 리창식의 시가 프랑스어로 번역되고 한국어로 재번역되는 과정을 거치며, 몽환적인 영상과 함께 프랑스 여인의 낭만적인 목소리로 전환돼 원래의 선동적인 문구와는 전혀 다른 인상을 자아냈다.
전시가 열린 당시 때마침 북한의 핵 개발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로 인해 남북의 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경색 국면을 치닫고 있었다. 작가는 졸업전 때는 연평도 포격 사건이 터졌고, 첫 개인전 때는 통합진보당 이석기 사건이 일어났다며 어찌 보면 한국 사회에서 늘 있는 일이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일상의 풍경을 작업으로 다루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단다. “제가 하는 작업이 때로는 오해를 사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제가 이 작업을 계속하는 이유는 불안감 때문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전쟁은 곧바로 그 정체를 드러내진 않지만 일상 속에 늘 내재되어 있어요. 그런 것들을 너무 두려워할 필요도 없지만 잊고 살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이슬비 기자
신정균
1986년 태어났다. 서울대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을 수료했다. 2013년 송은아트큐브에서 <발견된 행적들>을 시작으로 2회의 개인전을 열었다. 스페이스 K, 아르코미술관에서 열린 단체전과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 <유타국제다큐멘터리페스티벌> 등에 참여했다. 2014 일현 트레블 그랜트 특별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