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FACE 2016 이지연
기억하나 헤매고, 그리고 발견하다
‘기억’은 사실 부정확하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기 때문이다. 또한 기억의 맥락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만 취사선택한 결과물이 기억이다. 이지연 작가가 벽면을 통해 제시하는 공간이 ‘기억’에 근거한 것이라는 말에 기자는 그 부정확함을 먼저 떠올렸다. “평면작업 <기억을 그리다-reminiscent> 연작은 기억 속 장소인 외가가 대상이에요. 2003년 돌아가신 외할머니에 대한 기억을 붙잡고 싶어서 그 장소를 그렸지요.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외가 친척들도 아무도 그림에 나오지 않고 어떤 상황이 나타나지 않는데 처음부터 그릴 이유도, 그리고 싶은 것도 없이 공간만 그리게 되었죠. ‘기억’을 이야기하려면 늘 이 이야기를 하는데, 사실 최근의 공간작업들은 그런 기억이라기보다는 공간 자체와 그 안의 놀이로 가려 해요.” 작가에게 그래서 ‘기억’이란 “공간을 지각하고 인지하는 방식의 배경”으로 정의된다. 그래서 작가가 제시하는 공간은 필연적으로 관람객의 ‘헤매임’을 요구하는 것 같다. 누군가의 철저히 사적인 기억의 결과물인 작업 앞에서 관람객은 어쩔 수 없이 ‘타인’이기 때문이다. “관람객에게 ‘어딘가?’를 상상하게 하는 것이 출발점이었어요. 전에 어떤 관람객이 53점으로 구성된 <5월의 일지를 들춰보다part4>(2009)를 보며 ‘추리소설의 장면’이 생각난다고 한 적이 있어요. 작가로서 굉장히 반갑고 신나는 경험이었죠. 그 헤매임 자체를 즐겼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관람객의 그러한 ‘즐김’은 선 이외의 벽면 공간을 상상력으로 채워넣게 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이 작가의 작품은 월페인팅, 캔버스 작업, 그리고 조각작업으로 나뉜다. 그런데 대부분 작업은 평면에서 구현되는 입체에 대한 고전적 해석, 즉 환영을 구축하는 과정으로 읽힐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맥락이라면 <호기심 상자_소파에 누워 천정을 걸었다>(2014)는 이례적이다. 작업이 대부분 관람객의 정상적 직립 자세에서 자연스럽게 시선을 보내는 행위에서 발견되는 것이라면, 이 작업은 위를 보기 위해 고개를 들어야 하거나 누워야 하는 수고를 요하기 때문이다.
“<호기심상자_소파에 누워 천정을 걸었다>는 전시장소가 큰 영향을 주었죠. 클레이아크미술관의 세라믹창작센터 입주 작가 전시였는데 입주해 있는 동안 미술관을 많이 돌아다녔어요. 제목의 ‘소파에 누워서 천정을 걸었다’라는 말 자체가 제가 어릴 적 놀던 방식이에요. 바로 외가의 가옥 구조가 그랬습니다. 집 안 구석구석 안 보이는 곳이나 벽 너머, 계단 뒤나 문 사이사이에 새로운 공간에 대한 상상을 하였지요. 말씀하신 ‘특별한 차별성’이라고 하면, 다른 작업들이 ‘제가 떠올리는 방식’의 ‘이미지’를 보도록 했다면, 이 작업은 ‘제가 바라보던 방식’에 가까운 ‘시선 또는 자세’를 요청-요구한 점일까요?”
장소와의 상호 교감이 작업에 중요한 요소일 것이다. 이에 대해 이 작가는 “평면작업이든, 벽면 작업이든 전시장을 필연적으로 고민하게 된다”고 털어놨다. “입체적인 설치가 아닌 경우에도, 공간을 자주 살피려 하는데, 벽면 설치작업의 경우는 공간의 구조나 규모가 이미지의 구상에 영향을 줍니다.” 최근 문래동에서 7&1/2의 기획으로 작업한 <존재하지 않은 경계>는 작가의 공간에 대한 고려가 십분 발휘된 작업이다. 이 작가의 작업은 시공을 초월하여 관람객이 상상력을 발휘해 각자의 ‘놀이방식’을 찾았으면 한다는 바람을 드러남이다. 그 ‘놀이방식’은 현재 부산에서 진행되고 있다. 그녀의 이력에는 근 5년간 전국 각지 레지던시프로그램에 참여한 경력이 빼곡이 적혀있다. 스스로 한 곳에 정주하기를 거부하는 작가의 근본적 습성이 지금의 작업을 낳은 것 같다. 지금 놓인 ‘상황’ 그 자체가 작업의 동력이라는 이지연 작가의 또 다른 ‘기억’과 ‘상황’은 무엇일까?
황석권 수석기자
이지연
1980년 태어났다. 이화여대 조형예술대 회화판화 전공과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2009년 첫 개인전을 열었으며, 지금까지 8회의 개인전을 가졌다. 또한 다수의 기획전과 그룹전에 출품했다. 현재 부산 예술지구P 레지던시프로그램 입주작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