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FACE 2016 정희정
태움과 채움 사이, 우연과 계획 사이
아직 20대인 젊은 작가가 산과 향(香)을 좋아한다. 작가 정희정이 이러한 취향을 갖게 된 데에는 집안환경의 영향이 크다. 어린 시절부터 작가는 산을 좋아한 아버지 손에 이끌려 매주 산에 올라가 놀이터 삼아 시간을 보냈다. “자연은 언제나 내 기분을 좋게 하는, 행복한 추억이 가득 배어 있는 공간”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그래서 정희정의 산수화는 사실적 표현에 근거한 형상이라기보다 본인의 경험과 기억을 담아낸, 그때 그 감정이 고스란히 담긴 풍경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친가가 한 달에 한 번꼴로 제사를 지내야 하는 종갓집이며 할머니, 어머니가 독실한 불교신자라는 사실은 작가의 곁에 늘 향이 있게 했다.
붓과 먹의 농담으로 무한한 표현이 가능한 점이 동양화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말하는 작가. 하지만 지금은 ‘붓’이 아닌 ‘향’으로, ‘물’이 아닌 ‘불’로 그림을 그린다. 동양화에서 가장 중요한 선을 불과 향이라는 제한된 재료로 해결함으로써 작가는 자신만의 운용법을 고안했다. 불붙은 향은 시간차를 두고 한지에 머물며 각양각색의 그을음을 생성해 내고, 그 흔적은 먹과는 또 다른 느낌의 농담과 선염을 만들어 낸다. 외부 환경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한지의 질료적 특성이 불과 만나 일궈낸 결과다. 켜켜이 쌓인 한지 조각은 작가의 작업이 얼마나 고된 노동을 요하는지 짐작하게 하고, 그 사이로 비치는 그을린 흔적은 시간의 층위를 말해준다. 하지만 “미묘한 변화들이 모여 하나의 이미지로 생성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일은 나를 가장 기분 좋게 하는 일”이라며 말하는 작가의 표정은 생기가 넘쳤다.
작가는 숙련된 감과 우연적 효과에 의지해 형상을 표현하는 데 반해 그것을 시각화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고 장기 계획을 세워 단계별로 작업의 의미를 도출해간다는 점이다. 정희정의 이러한 면모는 작품 〈Burning of ridge〉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여기서 작가는 한지가 아닌 신문지와 유명 외식 브랜드의 포장지를 태웠다. 이는 작업 방향을 소멸과 생성이라는 근원적 요소에서 현대사회가 당면한 여러 문제, 예컨대 단순 노동자나 일용직에 대한 사회적 편견, 청년 취업문제 등으로 선회하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의외라는 반응을 보이자 작가는 오래전부터 이에 대해 고심해왔다며 사실 오브제 작업은 그러한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첫 시도였다고 한다.
“산수만 하는 작가로 고착화되기에는 아직 젊지 않나요”라고 웃으며 되묻는 작가의 모습에서 말하지 않은 얘깃거리가 아주 많아 보였다. “하지만 제 안에서 어느 정도 준비를 마치기 전까지는 말을 아끼고 싶어요”라며 조심스레 말하는 작가의 태도에서 신중한 성격이 다시 한 번 느껴졌다. 그러기 위해 작가는 현대미술 전시도 되도록 많이 보려고 노력한다. 특히 동시대 작가들이 전시공간을 어떻게 바라보고 작업으로 풀어냈는지 해석하는 일이 가장 큰 관심사다. 동양화의 무한한 변신과 확장이 정희정의 손에 들린 불과 향에 의해 어떻게 흘러갈지 사뭇 궁금해진다.
곽세원 기자
정희정
1988년 태어났다. 성균관대학교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을 수료했다. 2015년 OCI미술관에서 〈태우다, 태어나다〉 제하의 첫 개인전을 열고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2013년 제11회 겸재진경미술대전 특선, 2014년 제1회 Campus10 ART Festival @ Hanhwa63 신진작가전 최우수상을 수상했고, 2014년 2015 OCI YOUNG CREATIVES에 선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