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FACE 2016 박여주
공간 너머의 공간
공간은 인간의 삶을 담는 그릇과 같다. 공간은 특정한 방식으로 우리의 행동을 제약하고 조직하지만 우리는 새로운 인식을 통해 공간을 확장할 수 있다. 박여주는 지속적으로 공간 설치작업을 선보인다. 작업의 형태는 기본적으로 미니멀한 기하학적 구조물에 가깝다. 작가는 개선문, 리알토 다리 등 사적인 공간이 아니라 종교적이거나 역사적인 공간에서 작업의 모티프를 가져왔다. 기존의 형태는 유지하면서도 작업에 어떤 내용을 삽입하기보다 소거하는 방식으로 공간과 그 형태에 집중한다. 그리고 인간적인 스케일의 새로운 공간으로 치환시켜 관람객의 낯선 경험을 유도한다. 작업은 일상의 공간 속에서 문득 마주하게 되는, 다른 차원으로 통하는 입구를 의미하는 하나의 메타포로 작용한다. 작업 자체가 일상의 공간과 가상의 공간을 연결하는 하나의 통로 구실을 하며,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 자체를 환기시키는 것이다.
특히 박여주는 문, 계단 등 내부와 외부가 구분되지 않는 경계의 공간을 탐닉한다. 작가는 이 공간을 강조함으로써 마치 이 공간을 넘어가면 다른 세계로 갈 것 같은 환상을 선사한다. 최근 문화역서울 284와 재능아트센터에서 선보인 신작은 설치 구조물 대신 기존 건물, 특히 계단에 조명을 설치해 낮과 밤 사이의 시공간을 의미하는 새로운 차원의 공간을 제안했다. 그녀의 작업에서 조명이 등장한 것은 2013년 사루비아다방 개인전부터다. 구조물 설치만으로는 작가가 전달하고 싶은 요소가 제한적이고, 관람객의 몰입도가 약했기 때문이다. 이때 조명은 내·외부의 경계를 허물며,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연출하기 위한 장치이자 공간을 새로운 차원으로 치환시키는 역할을 한다.
현재 북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구사구용(九思九容)전>(1.19~2.28) 출품작 <수태고지 Ⅱ> 는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예수 잉태 사실을 알리는 프라 안젤리코의 그림 배경이 되는 건축 구조물에서 착안했다. 작가는 이 구조물에 홍등가 특유의 붉은색 조명을 설치했다. 종교적으로 가장 성스러운 순간에 가장 세속적인 공간을 결합하며 박여주는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자연스럽게 이야기한다. “유학 이후 한국 사회가 여전히 가부장적이고 여성에게 많은 희생을 강요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죠. 그렇다고 제가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30대 한국 여성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부분을 이야기하고 공감대를 형성하고 싶어요.”
지금까지 박여주의 작업은 서구적인 건축 양식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 대부분이다. 최근 국내 활동을 하면서 한국적 공간에 관심을 갖게 됐는지 묻자 작가는 유학을 하기도 했지만 사실 일상에서 우리가 접할 수 있는 동양적인 공간의 요소가 드문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서구식 공간에서 생활하는 우리에게 전통적인 한옥이 낯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고 보니 한국에서 활동한다고 해서 작가가 한국적 공간을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 오히려 강박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박여주는 요즘 문래동 철공소의 오래되어 빛바랜 철문이 아름답게 느껴진다고 말한다. 앞으로 그녀는 회화에 다시 주목하며 새로운 시도를 이어갈 계획이다.
이슬비 기자
박여주
1982년 태어났다. 서울여자대학교 서양화과와 2010년 슬레이드 예술대학(The Slade School of Fine Art, UCL)에서 석사과정을 마쳤다. 2013년 프로젝트스페이스 사루비아다방에서 열린 <夜想>을 시작으로 2회의 개인전을 열었다. 경기도미술관, 서울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등에서 열린 단체전에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