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ARTIST 강은엽
조각가 강은엽은 형식과 내용의 스펙트럼이 넓고 깊은 작가다. 전통적 조각어법에 충실한 초기작부터 일상과 자연, 그리고 생명에 대한 성찰이 담긴 최근작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품은 탁월한 감각을 보여준다. 이와 같은 강은엽의 예술세계는 결국 ‘사랑’과 ‘모성’, ‘생명’에 대한 깊은 사색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타자에 대한 관심과 시선은 작가가 오랫동안 추구해온 대상에 대한 애틋한 정서와 감각적인 표현으로 구체화 된다. 작가 강은엽의 작품세계를 탐구한다.
만남의 용법
유진상 계원예술대 교수
강은엽은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 50여 년의 세월 동안 한국 조각에서 매우 독보적인 작품세계를 보여주었다. 그의 작업은 전통적인 조각으로부터 새로운 영역을 향해 끊임없이 도전적인 탈출을 시도해왔다. 잘 알려진 <창窓> 연작과 같은 테라코타 작업은 회화와 조각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당대로서는 파격적인 입체적 평면을 선보였다. 그는 조각적 표면 위에 선묘線描뿐 아니라, 루치오 폰타나에게서 볼 수 있는 평면의 투과透過를 우의적으로 감행함으로써 조각적 매스에 안과 밖, 혹은 내면과 외양이라는 서사적 구조를 부여했다. 이러한 시도들은 초기 모더니즘 조각이 뿌리내리던 시기에 여성 조각가로서 그가 확보할 수 있었던 중요한 표현의 가능성들로 해석된다. 다시 말해, 남성 위주의 당대 조각계에서 그는 자신의 삶, 특히 여성으로서 삶의 경험-사랑, 모성, 신체성, 소수성 등과 같은-이 일으키는 폭넓은 감성의 영역들을 조각을 통해 기록한 것이다. 1979년 공간미술관에서 열린 그의 두 번째 개인전은 이러한 작업의 정수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전시다. 이 전시에서 강은엽은 테라코타, 즉 흙을 중심으로 한 작품을 대거 선보였는데, 이 작품들은 그가 일관되게 추구해 온 ‘유기적 형태의 창조’가 어떤 단초에서 출발하는지 잘 보여준다. 여기서 ‘유기적 형태’란 단지 형식적인 요소들의 조합이 아닌, 감정적이고 신체적인 요소들과의 상호작용으로부터 생성되는 물질적 형태라고 볼 수 있다. 그것들은 자연으로부터 비롯되거나 그것에 속하는 형태이며, 삶과 죽음의 순환적 과정에서 파생되는 형태이기도 하다. 여기서 ‘흙’은 단지 재료일 뿐 아니라 이러한 유기적 순환과 생성의 가장 중요한 바탕이며 개념적 질료이다. 그러므로 그가 흙 대신 돌이나 나무를 사용할 때조차 흙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그것이 대표하는 신체적이고 동시에 관념적인 출발점을 끊임없이 환기시키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다.
1987년에 도쿄의 마키眞木화랑에서 열린 개인전 제목은 ‘Escape’, 즉 ‘탈출’이었다. 작가의 개인사를 차치하고라도, 한국의 여성 조각가로서 그가 살아온 시대를 떠올릴 때 그리 의외의 주제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이 전시에서 작가가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육각의 나무 프레임은 흡사 프랜시스 베이컨의 회화에서 볼 수 있는 투명한 육면체의 틀을 떠올린다. 후자의 틀 안에서는 인간 군상이 마치 유령처럼 사라져가거나 원초적 감정들에 사로잡혀 절규하고 있는 반면, 강은엽의 틀 안에서는 어떤 존재의 파편들이 일어난 사건의 기억을 간직한 채 허공에 떠 있거나 그 안에 쌓여있다. 특기할 것은 기존의 테라코타 작업 이후에 이러한 형태와 재료들로 이어지는 양상이다. ‘창’ 연작에서 테라코타의 표면을 날카롭게 꿰뚫어 벌려놓음으로써 형태의 안쪽을 암시하고자 하던 제스처는 여기서 파열 혹은 내파內破, implosion의 그것으로 이어진다. 이는 특히 <하늘과 땅 사이>(1987)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또한 이 전시에서 선보인 <9개의 방>은 이 나무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목에서부터 직접 가리키고 있다. 각각의 틀 안에는 마치 소설의 챕터들처럼 다양한 사건들이 벌어지는데, 부분과 전체의 관계를 통해 서사적 관계들을 함축하는 이러한 방식은 작가의 다른 작품들로 이어진다.
강은엽의 작품 가운데 가장 격정적인 작업은 1989년 갤러리 서미에서 열린 <Embrace전>에서 발표한 돌, 철판, 유리 연작을 들 수 있다. 50대에 접어든 작가의 열정과 통찰이 번뜩이는 이 작품들의 키워드를 떠올리라면 ‘고통’과 ‘연민’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전의 나무 프레임 작업들과 더불어 새롭게 소개된 돌, 철판, 유리 작업은 신체적 고통과 그것의 항구적인 지속을 직접적으로 시각화하고 있다. 거칠게 깎이거나 잘린 돌과 철판을 관통하는 것은 바로 비수처럼 날카롭게 깨진 유리 파편과 뾰족한 금속의 봉棒들이다. 제목에서 언급한 ‘embrace’, 즉 ‘포옹’은 이러한 날카로운 관통을 견디고 있는, 그것을 붙잡아 영원히 품고 있는 존재의 단단함을 가리킨다. 이 드라마틱한 작품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관객조차 신체적 고통을 느낄 수밖에 없다. 예컨데 1989년 작인 <만남 Encounter>은 세 개의 날카로운 유리 파편이 창끝처럼 나란히 돌에 박혀있는 작품으로, 운명적 만남이 야기한 환희와 고통을 더없이 간결하게 표현한 시각적 시詩다. (수정과도 같은 세 개의 유리 파편은 작가 자신의 아이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강은엽의 독특한 ‘시적 연결’poetic association에 대해 오병욱은 ‘상대적인 관계항들의 대조적인 배합에서 파생하는 갈등의 부산물’이라고 표현했다. 즉 작가의 방법론 속에서 시각적 형식의 탁마琢磨 대신 시적이고 심리적인 직관적 개입이 부각된다는 의미이다. 작가는 이러한 방법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모든 물질이 자체의 경이로움을 가질 만큼 그 물질과의 만남은 언제나 감동적이다 어떤 재료와의 만남은 적중된 예감처럼 필연적인 것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한 재료 그리고 또 다른 재료와의 만남이 상대적인 관계로서의 새로운 국면의 창조를 낳게 하는 것이 아닐까…”
1992년에 서미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 <시간의 배후 The Other Side of Time>에서 강은엽은 이러한 ‘경이로움’에 대한 통찰을 독보적인 방식으로 풀어놓았다. 이 전시에서 그는 말 그대로 거칠게 깎여진 오석烏石들을 전시장 바닥에 늘어놓았다. 전시 서문을 쓴 서울대 환경대학원 김형국 교수는 이 전시의 제목이 ‘시간의 배후’인 것에 대해 “인위의 문명에 때묻지 않은 시간에서만 존재할 수 있었던 ‘자연다운 자연’에 대한 동경”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그것을 점점 빨라지는 공간이동 수단에 의해 시간이 중요해지는 ‘시간의 공간대체현상’에 대한 반대급부적 대응이라고 보았다. 즉 바닥에 놓인 정적인 사물들은 여전히 느리게 흐르는 시간과 사물 자체의 존재를 지탱하는 공간의 간격들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전시는 개별적 작품이 아닌 설치작업처럼 보이며, 전시된 바위들은 최소한의 인위적 가공만이 가해진 고대의 거석 집단처럼 보인다. 그중에 한 작품에 붙어 있는 <지금은 고요할 때>라는 제목은 작가의 의도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한다.
생명에 대한 공감능력
1992년에 창설을 주도한 계원예술대학교의 설립 이래로 전력을 다해 몰두해 온 예술교육 활동은 지난 20여 년 간 강은엽의 창작활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에게 창작의 핵심 동력인 타자에 대한 사랑과 공감은 교육이라는 광범위한 프로젝트 안에 녹아들었다. 이 시기에 그는 자연적 재료들로부터 인공적이고 건축적인 기념비적 구조들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조형성의 영역을 탐구하면서 동시에 그러한 발견을 전달하고 확산하는 일에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의 작품 속에 일관되게 녹아든 삶과 타자에 대한 애정은, 특히나 그의 동물에 대한 적극적인 사랑으로 인해 잘 알려져 있다. 강은엽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동물보호협회 ‘카라’ 회장으로서의 활동은 그 일부에 해당한다. 실제로 그는 10여 마리의 유기견을 거두어 함께 생활하고 있다. 동물에 대한 그의 관심과 헌신은 일상적 삶에서나 창작에서 생명에 대한 공감능력이 얼마나 핵심적인 요소인가를 웅변으로 보여준다. 나는 이것을 ‘생명 공명life resonance’이라고 부른 바 있는데, 그것은 바로 강은엽의 작업이 형식적 조형성의 완성이 아닌 세계와 삶의 관계에 대한 것임을 강조하는 것이기도 하다. ‘생명 공명’이란 다름 아닌 다른 존재의 형태에서 나의 존재를 발견하는 것으로, 예술의 기본적인 작동방식이기도 한 것이다. 이러한 ‘생명공명’은 최근에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열린 2인전 <타이틀매치>에 전시된 작품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강은엽에게 산책은 매우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20년 가까이 살아온 청계산 자락 자택에서 인근의 산을 오가는 산책을 통해 그는 버려진 유기견들을 보살피고, 마찬가지로 꺾이거나 죽어버린 나무들을 거두어왔다. 이렇듯 버려진 것들을 거두는 일은 그가 평생 동안 해온 작업들의 의미와도 깊은 연속성을 지닌다. 그에게 작업이란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사랑’과 ‘모성’, 그리고 살아있는 혹은 살아있던 것들의 ‘몸’과 관련된다. 그리고 버려진 것들 안에 내재하는 ‘작아진’ 생명에 대한 연민 역시 그의 마음과 맞닿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타자에의 관심과 시선은 그간 해온 작업들 속에서 자연적인 대상들에 대한 애틋한 공감과 공감각적인 시적 몰입으로 발현되었다. 오랜 세월 성장하면서 아름답게 형태를 잡은 나무들이 어느 순간 최후를 맞게 되어 그 형해形骸가 나뒹구는 것을 발견하면, 작가는 그것에 염을 하듯이 작업을 입혀 다시 새로운 시간을 부여한다. 이 전시에서 그는 살아있는 나무들과 쓰러진 나무들이 함께 존재하는 숲의 사진들, 쓰러진 죽은 나무들의 몸을 다룬 조각들(<쉼>)과 나무들의 나이테를 탁본이나 도장처럼 찍어 놓은 판화들(<말과 글>)을 전시했다. 다른 작품들에서도 그렇듯이 제목은 강은엽의 작품들에 있어 중요한 조형적 요소가 된다. 전시장 벽에 기대어져 있는, 작가가 산을 오르내릴 때 지팡이 삼아 짚었던 나무 작대기에 그는 <돌아봄_한 그루 나무>라는 제목을 붙였다. 그가 하나의 존재와 생명의 시간을 공명하고 의지하며 그것의 삶을 반추하는 작품인 것이다. 숲 속에 나뒹굴던 나무 껍질을 주워 그대로 ‘레디메이드’로 사용한 <긴 여행에 관한 책>은 작가의 창조적 삶과 익명의 존재 사이에서 오가는 깊은 밀어密語를 연상시킨다. 이번 전시를 통해 이 원로작가는 어떤 새로운 전환의 에너지를 발견한 것처럼 보인다. 물론 그것은 이제까지의 작업들에서 작가가 꾸준히 깊이를 더해 온 것이다. 버려진 것들과 약한 것들, 사라진 것들과 감추어진 것들에 대한 따듯한 공명은 강은엽의 작품세계 전체에 걸쳐 나타나는 일관된 내용이다. 그에게 인간과 사물, 동물과 자연은 모두 동일한 시선의 거리에 놓이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들을 그는 물끄러미 바라보고 보듬고, 말을 걸고, 버려진 것들을 거두어들인다. 삶과 세계의 경험 안에서 그의 작업은 말 그대로 함께 살아가는 과정을 다룬다. 그가 보여주는 반세기에 걸친 창작적 삶은 그 어떤 형식적 완결과도 다른 새로운 차원의 예술적 예시를 열어주고 있다. 그것은 삶 속에서 일어나는 숱한 ‘만남’에 대한 새로운 비전이며, 이는 삶과 세계의 새로운 용법들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나갈 것이다. 강은엽의 작품은 그러한 가능성의 스펙트럼을 더욱 넓혀가고 있다. ●
강 은 엽 Kang Eunyup
1938년 태어났다. 1963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를 졸업하고, 뉴욕 Art Students League에서 Jose De Ceieft에게 조각수업, 뉴저지 몽클레어주립대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62년 중앙공보관 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5차례 개인전을 열었다. 1993년 제7회 김세중조각상을 수상했고, 계원예술고등학교 예술연구소장(1980~1993), 계원조형예술대학 교수(1993~2005)를 역임했다. 현재 사단법인 동물보호 시민단체 카라(Korea Animal Rights Advocate) 명예대표, 한국현대문학관 관장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