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ARTIST 최병소
작가 최병소는 한국 현대미술사의 궤적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이다. 무한반복되는 선 긋기 방식으로 제작된 그의 작품은 시간과 노동이 집약된 독창적 표면으로 드러난다. 이와 같은 작가의 작품은 1970년대 한국의 주류 미술경향이던 단색조회화뿐만 아니라 사회적 의미를 담은 실험미술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도 있다. 지난 40여 년간 최병소가 몰두해온 작품세계는 유의미한 인식과 행위의 결과물이다. 전통적인 회화 영역을 넘어 소멸함으로써 재탄생하는 작가의 작품세계를 탐구한다.
섬약하고도 강건한 검은 화면, 그 ‘애매성의 예술’
신혜영 미술비평
여기저기 찢기고 갈라진 새까맣고 얇은 최병소의 평면작품을 처음 접한 사람은 그 정체를 궁금해 하며 한참을 쳐다볼지 모른다. 그것은 캔버스나 종이 위에 검은색 물감을 칠한 여느 색면회화와는 다르며, 오히려 연소된 얇은 나무껍질이나 금속성의 광물질에 가까워 보인다. 그러나 그 둘 모두 아닌 듯하다. 다 타버린 재와 같이 금세 바스러질 것 같으면서도 동시에 오랜 시련에 더 단단해진 철판과 같은, 섬약纖弱하고도 강건剛健한 이 물질의 정체는 무엇인가.
뜻밖에 그것은 종이(주로 신문지)가 얇아지다 못해 찢어질 때까지 볼펜과 연필로 선을 긋고 또 그어 만들어낸 작가의 시간과 노동이 집약된 화면이다. 재현된 어떠한 형상이나 붓 자국도 없는, ‘회화’라는 호칭이 무색하리만큼 새로운 이 인공물artifact은 전체적으로 윤이 나면서 군데군데 비정형으로 갈라지고 찢긴 표면이 시각적이기보다는 촉각적이고, 어느 회화에서도 접해보지 못한 차갑고 저릿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그렇다면 최병소의 이러한 검은 화면을 회화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것은 분명 전통적인 의미의 회화와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종이에 볼펜으로 수없이 많은 선을 긋고 그 위에 다시 연필로 더 많은 선을 그어 만들어낸 그것은 “여러 선이나 색채로 평면상에 형상을 그려내는 조형미술”이라는 회화의 사전적 정의를 벗어나지 않는다. 마침내 전면화되어 묻히지만 수없이 반복되는 ‘선’, 색으로 느껴지지 않지만 사실상 작가가 선택한 볼펜과 연필의 검은 ‘색’, 미술의 재료는 아니지만 신문지라는 확실한 2차원의 ‘평면’, 의도적으로 그려낸 것은 아니지만 반복되는 선 긋기에 의해 드러나는 갈라지고 찢긴 무정형의 ‘형상’, 그 모두를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최병소의 회화는 일반적인 색면회화와 구조적으로 전혀 다르다. 그것은 캔버스 위에 물감이 얹히는, 지지체와 안료의 고정된 관계를 탈피한 전혀 새로운 구조다. 사실상 지지체와 안료의 관계는 아주 오래전부터 최병소에게 중요한 화두였다. 안료가 칠해진 지지체를 ‘찢는’ 루치오 폰타나, 지지체를 완전히 뒤덮도록 안료를 ‘칠하는’ 바넷 뉴먼, 지지체를 안료로 ‘적시는’ 이브 클랭 등의 회화에 관심을 갖던 그는 종이 위에 아크릴 물감을 두껍게 칠한 후 뒤집어 종이를 사포로 밀어버림으로써 물감덩어리만을 남기는 지지체의 ‘소거’를 시도한 바 있다. 이렇듯 지지체와 안료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던 최병소는 마침내 지지체를 소거하지 않으면서도 안료와 일체화하는 방법으로 향하게 되었다. 그것은 캔버스 위에 물감을 올리는 면의 축적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선의 축적으로서, 지지체 위에 안료가 얹히는 것이 아니라 안료(볼펜과 연필)가 지지체(신문지) 속으로 파고들어 양자가 일체 되는 구조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이러한 지지체와 안료의 일체로부터 본래 재료가 지닌 물성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물성을 지닌 화면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최병소 작품세계의 차별성과 고유성
이른바 “사라짐으로부터의 탄생”, 즉 “소멸하면서 태어나”1는 이러한 최병소 회화의 근원적인 동력은 주지하다시피 지지체 위에 끊임없이 선을 긋는 작가의 반복적 행위다. 신문지의 전면全面이 까매지다 못해 찢겨질때 까지 볼펜과 연필로 선을 긋는 그의 반복적인 행위는 그야말로 보통 사람은 할 수 없을 정도의 극단적인 인내와 시간을 요구한다. 작가는 무아지경의 상태에서 선을 긋고 또 긋는다. 그리고 그러한 작가의 ‘긋기’는 그 자체 자율성을 가지고 확장되어 나가다가 마침내 물질 자체가 한계에 달하는 지점에서 멈춘다. 따라서 최병소의 회화는 어떠한 결과물을 내기 위해 붓을 움직이는 전통적인 회화와 달리 행위 자체가 우선시되고, 결과물로서의 화면이 과정으로서의 행위를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선을 긋는 손이 멈추는 지점에서 자연스럽게 새로운 물질이 탄생하기 때문이다.
최병소 회화가 지닌 고유함의 또 다른 요인은 재료의 선택과 그 변용에 있다. 작가가 신문지를 본인 작품의 주된 재료로 선택한 것은 그것이 “저렴하고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라는 일차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최근에는 신문용지를 구입해 쓰기도 하지만 그가 사용해 온 지지체는 주로 신문지와 잡지, 때로는 비행기표나 지폐 등과 같은 일상의 오브제고, 그가 사용하는 안료/매체는 물감을 묻힌 붓(화구)이 아니라 책상 옆에 굴러다니는 볼펜과 연필(문구)이다. 물론 미술사 내에서 많은 예술가가 일상의 오브제를 예술의 소재로 사용했으나, 그것들 대부분은 재료가 가진 ‘물성’에도 불구하고 ‘개념적’ 측면이 강했다. 그러나 최병소가 사용하는 일상의 오브제는 단지 용도와 의미를 변경하는 관념적인 차원이 아니라, 작가의 극단의 반복적 행위를 통해 전혀 새로운 물질로 변모하는 실질적인 차원에서 작동한다. ‘언제 어디에나 존재하는’ 재료로 ‘누구나 할 수 있는’ 선 긋기라는 행위를 통해 전혀 새로운 형태의 미적 산물을 만들어내는 최병소의 회화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일상과 예술의 경계 흐리기일 것이다. 사실상 이러한 최병소의 일상과 예술의 혼재는 삶과 밀착된 그의 작업 태도에서도 엿볼 수 있다. 평생을 집에 딸린 작은 골방에서 잠자고 밥 먹는 시간 외에는 음악을 들으며 끊임없이 손을 움직이는 그에게 일상과 예술은 분리될 수 없는 ‘하나’기 때문이다.
물론 최병소가 사용하는 신문지라는 재료를 단지 일상의 오브제로서만 고찰하기에는 미흡함이 있다. 그 이면에는 ‘신문’이 지닌 상징적 함의와 시대적 배경이 있다. 그가 미대를 졸업하던 1974년은 유신체제가 공포된 지 1년 남짓한 정치사회적 격동기로서, 사회 전반적으로 표현의 자유가 억압된 침체된 분위기가 팽배했다. 당시 미술계도 정신적으로 황폐해지고 사회로부터 소외된 작가들이 의도적으로 현실을 외면하고 자연으로 회귀하려는 단색화 사조로 편중되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1960년대 후반부터 지속되어 온 – AG와 ST로 대변되는 – 한국 실험미술 작가들 일부는 현실을 그대로 외면하기보다는 예술 영역 안에서 직간접적으로 자신의 발언을 표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언론의 편파성을 비판하고자 신문을 이용해 행위예술을 선보인 성능경과 같은 작가다. 최병소의 신문 작업 역시 1970년대의 시대적 배경에서 신문이 지닌 상징적 의미와 무관하지 않다. 당시 그는 매일 날아드는 신문을 읽으면서 답답하고 침통한 마음을 참다못해 신문의 내용을 지워나가기 시작했다.
결국 읽을 수 없도록 지워지고 애초에 무엇이었는지 흔적조차 사라졌지만 그것은 당대의 현실을 보여주던 바로 그 신문이었으며, 그는 직접적인 방식은 아니지만 당시 사회상을 자신의 작업에 적극 반영했던 셈이다.
이후에도 그는 줄곧 원래 화면을 뒤덮어 지움으로써, 읽을 수 없는 신문, 내용을 알 수 없는 잡지, 탈 수 없는 비행기표, 쓸 수 없는 지폐 등, 의도적으로 용도를 폐기하고 예술적 맥락에서 새롭게 탄생케 하는 일련의 작업들을 발표했다. 짐작할 수 있듯, 최병소의 작업은 사실상 상당 부분 실험미술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특히 초창기 작업들은 그러한 성향이 좀 더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1974년 첫 전시 <한국 실험작가전>과 1974년부터 5년간 참여한 <대구 현대미술제> 등의 전시에서 그는 화병에 꽂아놓은 꽃을 쳐서 바닥에 떨어진 꽃잎 몇 장을 분필로 표시해둔다거나 여름철에 전시장에 생선을 가져와 도마에 난도질하여 냄새가 진동하도록 하는 해프닝작업과 특정 장면의 사진 옆에 단어를 나열해 놓는 개념작업2 등을 선보인 바 있다. 또한 최근 신문작업 중에도 평면이 아닌 부서진 조각들은 접시에 담아두거나 책의 모서리 낱장들을 긁어 아크릴 박스 안에 세워놓는 등의 설치작업을 병행해왔다.
그러나 여전히 최병소의 주된 작업은 ‘회화’의 범주 안에 있다. 또한 1970년대 당시 그의 회화는 주로 단색화로 분류된 바 있다.3 표면적으로 단색이고 물성이 강조되며 반복적인 행위를 통해 화면을 중성화하는 단색화와의 유사성 때문이었다. 특히 그러한 인식에는 그의 작업이 단색화의 대표 격인 박서보의 묘법과 – 계속해서 ‘연필’을 사선으로 ‘긋는’ – 재료와 행위 측면에서 부분적으로 유사하다는 사실이 일조했을 것이다. 그러나 두 작가의 작업은 방법과 개념상 상이하다. 박서보의 묘법에서 연필이 어디까지나 유화물감을 긁어내거나 밀어내기 위해 사용되는 보조도구 – 손가락, 나무, 쇠붙이 등과 유사한 – 에 해당한다면, 최병소의 신문작업에서 연필/볼펜은 화면을 전면화하는 유일한 도구다. 또한 물감이 얹힌 캔버스 위에 연필이 지나간 자리를 남겨 행위의 궤적을 드러내는 박서보의 묘법과 달리, 최병소의 작업은 신문지에 연필/볼펜의 선을 긋는 극단의 반복적 행위 끝에 결국 행위의 흔적은 사라지고 표면 전체가 균질해진 새로운 물질이 탄생한다. 이렇듯 최병소의 작업을 일정 부분 단색화와 비교할 수는 있을지언정, 온전히 그것을 단색화 사조 안에 넣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것은 그의 작업이 실험미술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결국 ‘회화’라는 결과물로 귀착돼 온전히 그 안에 머무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 논리다. 이렇듯 최병소는 1970년대 한국 현대미술에서 일어난 단색화와 실험미술이라는 결코 양립할 수 없던 중요한 두 사조 사이를 표류하며 자신만의 고유한 예술 영역을 구축한 작가다.
작가 스스로 “그리기인 동시에 지우기고, 채우기인 동시에 비우기며, 의미이자 무의미다”고 밝히고 있듯, 최병소의 회화는 ‘애매성’을 본질로 삼는다. 선을 그리지만 결국 그것은 글자를 지우는 일이고, 선을 채우는 동안 작가 자신과 본래의 물질은 비워지며, 신문의 글자를 지움으로써 의미를 무화無化하지만 그것은 애초에 아무것도 없었던 무의미와는 다르다. 그리고 그것은 실질적으로 지지체와 안료, 과정과 결과물, 개념과 노동, 오브제와 회화, 일상과 예술, 실험미술과 단색화 등 수많은 미술사의 대립항 사이의 경계를 흐리는 위치에 서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러한 ‘애매성’이 곧 고유함을 담보한다.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으면서 그 사이 어딘가에서 유연하게 그만의 의미를 생성하는 것이다. 현대미술의 중요한 논제와 사조를 관통함에도 그간 그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나 논의가 부재했던 것은 어쩌면 이러한 ‘애매성’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로 인해, 지나간 사조의 작가가 아닌 여전히 삶과 밀착해 작업을 지속하는 동시대 작가로서 제대로 평가받을 기회가 남은 것은 오히려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의 섬약하고도 강건한 검은 화면이 고유한 ‘애매성의 예술’로서 다시금 평가받길 기대한다. ●
최 병 소 Choi Byungso
1943년 태어났다.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서양화과와 계명대학교 대학원 서양화과를 졸업했다. 1975년 대구 시립도서관 화랑에서의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16회 개인전과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2010년 이인성미술상을 수상했고 현재 대구에서 작업하고 있다. 아라리오 갤러리 서울에서 3월에 개인전이 열릴 예정이다.
1 <소멸하며 태어나다(Birth from disappearance)>는 2006년 대구 갤러리M에서 열린 작가의 개인전 부제였다
2 그것은 허공 위에 두 마리 새가 뒤엉켜 있는 모습의 사진 옆에 ‘sky, cloud, wind, birds, flying, meeting’ 여섯 단어를 나열해 놓은 작품이었다.
3 최병소는 <한국 현대미술의 단면전>(도쿄 센트럴미술관, 1977)과 <에꼴 드 서울>(국립현대미술관, 1976~79) 등 주요 단색화 전시에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