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ARTIST 이왈종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학교수직을 버리고 아무 연고도 없는 제주도로 홀연히 내려간 지 어언 27년. 특히 서귀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의미를 지닌 곳이 되었다.
<제주생활의 중도(中道)와 연기(緣起)>라는 일관 된 제목의 이왈종 작품은 ‘도대체 인간의 행복과 불행한 삶은 어디서 오는가?’라는 화두에서 출발됐다. 5월 17일부터 6월 12일까지 현대화랑에서 열리는 개인전을 계기로 작가 이왈종의 예술세계를 되돌아본다.
세속에서 찾는 중도(中道), 평형(平衡)의 기운
전은자 이중섭미술관 큐레이터
‘일상’이란 평범한 사람들이 그리 특별하지 않게 사는 ‘곳곳의 생활, 생활의 곳곳’을 말한다. 그래서 사람들에겐 일상을 살아가는 것 이상 중요한 것이 없다. 인간은 오래전부터 살아가는 법을 가장 잘 터득한 종(種)이었고, 그들의 삶의 모습이 오늘날 일상이라고 하는 우리의 생활상인 것이다. 그렇지만 흔히 일상은 인간이면 누구나 다 누리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일상을 그리 신통하다고도, 그리 범상하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웃의 삶에 대해 별다른 관심도 갖지 않는다. 일상은 모든 삶의 근원이고 결과이며, 도덕의 기원이 된다. 삶이 시작되고 마감되는 시공(時空)이고, 온갖 내러티브가 등장하는 문화 생산 장소인데도 말이다.
이 일상의 소중함을 알리기 위해 일생을 바쳐온 화가가 있다. 일상을 흔하디흔한 무관심 영역에서 한 차원 높여 일상을 주목하게 만든 그가 바로 ‘서귀포 왈종’이다. 그는 이런 자호(自號)로 제주의 일상에 향기를 더했다. 2016년은 이왈종이 서귀포에 정착한 지 27년이 되는 해이다. 27년간 그의 그림에는 ‘서귀포 왈종’이란 서명이 일관되게 들어갔다. 일상을 생활의 중도로 풀어서 어느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예술의 주제로 택했던 사람, 일상을 마치 보물처럼 여기는 이왈종은 서귀포의 휘파람새가 되어 제주 전역을 자신의 정원인 양 훨훨 날아다닌다. 그는 제주 자연의 요소요소를 끄집어내어 생활에 접목하여 실재(實在)보다 더욱 풍요로운 제주를 재구성한다. 그의 그림 안에서 제주는 실제(實際)보다 더 아름답게 완성된다. 그가 완성해낸 이 새로운 제주 안에 들어오면 사람들은 늘 행복해 한다. 인생이란 즐거운 것, 그의 그림을 대하면 사람들은 마치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한다.
서귀포와 하나가 된 삶
1990년, 이왈종은 삶과 예술 사이의 방황을 끝내고 제주에 정착한다. 몸은 제주에 내려왔지만 마음 정리라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심란한 마음 정리를 위해 붓과 종이를 없애버리고 2~3년 동안 릴리프 작업에 몰두했다. 붙이고 또 붙이는 작업은 몸을 지치게 했지만 정신적으로 큰 기쁨을 주었다. 인간은 만드는 것에서 존재를 확인하고 희열을 느낀다고 했다. 만드는 행위가 창조의 근원임에 분명했다.
작업을 끝내고 산책길에서 마주친 나무와 야생초들은 신기할 정도로 서로가 다치지 않게 질서 있게 서로의 영역을 지키며 자라고 있었다. 그는 야생초의 삶에서 상생과 질서로 이루어진 생명의 힘을 보았다. 우주의 조화는 작은 생명에도 상생과 질서의 철리(哲理)가 있음을 새삼 깨달았다. 야생초를 통하여 비로소 생명의 습성과 자연의 이치대로 살아가는 만물의 도를 배울 수 있었다. 세상살이의 조화를 위해 서로가 공생하는 질서를 취하는 것이 중도라는 것을 생각하니 만물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중도(中道)는 평형(平衡)의 기운이었다. 어느 쪽에 치우친 차별이 아닌 부족하게 보이는 만족이었다. 이런 눈으로 만물을 보니 새나 짐승, 풀이나 꽃들도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교감의 관계였다. 예술 또한 고정된 장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상황 속에서 형태와 색채의 균형과 조화를 찾는 것이라면 오히려 장르의 벽을 허물어야만 자유롭게 된다. 자유가 없는 권위는 억압적이기 때문에 자신과 예술을 융합시키지 못한다. 서귀포에서 마음의 평정을 찾은 지 10년이 됐을 때, 제주에서 시도한 릴리프 작업으로 개인전을 열어 적지 않은 반향을 일으켰다. 제주에서는 회화라는 개념을 고수하지 않고 오히려 그 경계를 넘어 자유로운 형식을 취하면서 생활 속으로 한층 더 다가섰다.
이왈종이 제주에 정착한 27년의 시간을 되돌려 보면, 그는 처음으로 정착했던 남원에서 서귀포로 화실을 옮겨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화실 근처에 철공소가 들어서자 서귀포 시내의 삼일빌딩으로 화실을 옮겼다. 165~198m2 의 새로운 화실은 300호 5점을 동시에 놓을 수 있을 정도로 넓은 곳이었다. 그는 그곳에서 후회 없이 많은 작품을 제작했다.
1997년경, 마지막으로 풍광 좋은 정방폭포 가까운 곳에 작업실을 마련했다. 몇 년이 흘렀을까 그동안 살던 집을 헐어 큰 작업실을 마련하고 싶다는 생각에 도자기를 빚어 자연과 빛과 바람이 잘 전달되도록 건물 모형을 만들고, 건축설계사와 의논해 전시실과 어린이 미술교육실까지 마련해 2013년 지금의 ‘왈종미술관’을 건립했다. 커피숍을 겸한 아트숍도 마련했다. 새들의 놀이터를 위해 예전 집 뜰에 있던 나무들을 그대로 옮겨 심는 작업도 잊지 않았다. 미술관을 개관하게 된 동기는 예술의 사회적 환원이라는 생각을 염두에 둔 때문이다. 이로써 이왈종은 1990년 이후 줄곧 살아온 제주 서귀포에 값진 선물을 한 셈이다.
생활 미학의 높은 경지
이왈종의 1980년대 <생활 속에서>는 1990년대 이후 <제주 생활의 중도(中道)>의 모티프에 해당한다. <생활 속에서>는 기법으로 볼 때 수묵과 채색의 혼합이면서 기하학적 형태의적용이 두드러지고, 내용적으로는 도시의 파편적인 일상과 도시의 정경들이 대세를 이룬다. 1990년대 제주에 정착하면서 그의 그림은 자연 제주의 싱그러움과 제주 일상의 즐거움을 반영하고 있다.
1990년대 이왈종 그림의 두드러진 특징은 1994년 조선일보의 <노래하는 역사> 시리즈에 연재한 삽화에서 찾을 수 있다. 비록 삽화라는 형식의 작은 그림이었지만 양각과 평면의 혼성, 역사 해석의 다양한 기법, 신명과 상징의 세계 등 상당한 실험성이 돋보인다. 또 탐라와 한국미의 절충, 단색과 컬러의 배분, 선과 면의 융합, 전통과 현대의 동시성 등 시간과 공간의 내레이션을 맘껏 음미하게 한다.
이왈종의 철학적 사유는 그림의 제목이자 주제가 되는 ‘제주생활의 중도(中道)’와 삶의 이치인 ‘연기(緣起)’설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인간의 행복과 불행의 원천인 마음상태에 주목하며 하루하루 끊임없이 이어지는 ‘마음 비우기’는 곧 그의 ‘그림’으로 전환된다. 가장 참다운 예술이란 작가 자신을 진솔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그림은 마음이 가는 대로, 생각대로, 느끼는 대로, 마음 따라서 편안하게 그리면 되는 것”이 이왈종의 화론이다. 골프그림의 등장도 이와 맥락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시대마다 삶의 내용은 다양하고 예술취미와 취향이 다르므로 생활 속의 모든 내용은 예술의 소재가 된다. 우리가 일상을 세속이라고 하는 것은 세속을 통해서만 높은 단계의 예술 세계를 그려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이왈종이 추구하는 행복론 역시 그의 그림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의 그림 안에서는 자연과 인간이 하나가 되고, 모든 사물의 작용이 화평한 세계로 이어진다. 그의 그림은 날로 험악해져가는 오늘날의 사회에서 오아시스와 같은 존재다. 세속은 공자의 말대로, 강의 하류와 같다. 강의 하류를 인간의 세상에 비유하면 모든 희로애락이 모여들고 섞이고, 요동치는 곳이다. 이왈종은 하류 속에서 건강한 삶을 건져 올렸다.
이왈종의 화력(畵歷)은 변화 그 자체라고 볼 수 있다. 기존의 동양화와는 확연히 다른 기법과 화려한 색상과 그만의 재료를 사용하고, 장르도 부조, 목각, 조각 등 다양한 입체 조형을 통해서 다중적인 시도를 하고 있다. 죽은 친구를 위해 개발한 향로도 이와 맥락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는데 향로에는 특히 그의 인간적인 면모가 잘 드러난다. 인간은 기억에 의해 서로 연결된다. 향로는 자신의 삶의 중심에 머물렀던 소중한 한 지인을 위한영혼의 제기였다.
주변의 삶을 담아내는 이왈종의 작업은 풍류와 잡기, 익살과 에로티시즘을 인생의 보편적인 놀이와 유희로서 보여주는데, 이들은 평범한 일상의 인간들과 가장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이다. 그의 그림 앞에 서면 누구나 주인공이 되는, 그러한 관점의 전환은 하나의 마술처럼 사람들을 매혹시킨다. 그것은 예술의 난해함과 고고함이 주는 부담으로부터의 해방감이 주는 특별한 선물과도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화가 인생에 어리는 서귀포의 봄
이제 칠순에 접어든 이왈종. 그를 대하면 노화가라기 보다는 항상 젊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그의 이런 생각에는 ‘늙으면 죽어야지’라는 식의 패러독스가 배어있고, 이 철학적 코믹성은 삶에 활력을 주는 위트로 돌아온다. 그의 코믹성과 위트는 그의 삶의 미학이자 젊은 삶을 유지하는 은유의 반전(反轉)이기도 하다.
또한 이왈종의 마음에는 인간에 대한 배려가 숨어있는데, 이것은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윤리 의식과 같은 것이다. 그의 나눔에 대한 실천은 서귀포에서 부각되었다. 이왈종은 일찍부터 유니세프와도 깊은 인연을 맺고 있었다. 2011년 서귀포시가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협약도시로 선정되면서 유니세프 서귀포시후원회의 회원으로 위촉된 이후 그는 매년 오프셋 판화전을 개최해 그때마다 3000만 원을 유니세프기금으로 후원함으로써 나눔의 문화를 확산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2016년 바다로부터 봄이 왔다. 한라산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서귀포 정방폭포의 파도소리를 가슴으로 안고 있다. 정방폭포 주변에 북적대는 사람들의 소리도 연례행사처럼 끊임없이 들려온다. 생활의 중도 그 대장정에는 자연과 인간에 대한 포용력을 느낄 수 있는 따뜻한 메시지가 있고, 현실과 비현실의 조화로움이 있다. 마치 우리 마음의 놀이터가 바로 이왈종의 작품인 것처럼 말이다. 미술관 한 켠에 위치한 2평짜리 황토방은 이왈종의 더 없는 안식처다. 아침저녁 황토방에 비치는 그의 얼굴엔 여전히 아이 같은 웃음이 포말처럼 번진다. 이보다 더 행복한 삶이 있으려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