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Artist] 손동현
전통의 현대적 계승!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이렇게 낡고 철 지난 슬로건을 들먹이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작가 손동현의 작품에선 자의건 타의건 여전히 이 화두가 유효하다. 작가는 지극히 전통적인 제작방식을 고수하며 동시대 대중문화의 아이콘을 다룬다. 그의 작품은 일견 가벼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다각도로 진지하게 해석되는 매우 흥미로운 작업이다. 10월 24일부터 11월 13일까지 스페이스 윌링앤딜링에서 <소나무>라는 타이틀로 그의 개인전이 열린다. 이번 전시를 계기로 손동현의 작품세계를 살펴본다.
손동현과 그의 ‘동양화 친구들’
함영준 커먼센터 멤버
손동현은 크게 두 개의 키워드를 가진 미술가다. 동양화와 대중문화. 손동현은 이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그러나 너무 뻔하게 곡해될 소지가 다분한 만남을 거의 10년 동안 밀어붙였다. 일견 단순한 작업 논리로 인해 손동현의 작업은 꽤 접근하기 쉬운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이는 동양화가 가진 특유의 공예적 성격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가 재현의 대상으로 선택하는 소재가 접근하기 수월한 것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1980년생인 그가 또래보다 빠른 시기인 2006년에 첫 번째 개인전을 열고, 미술계 호황의 끝자락에 잠시나마 걸터앉을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이후 미술이 대중과의 만남을 자처하는 제스처를 취할 때 주로 이용하는 많은 기획에 참여하게 되었다. 현대미술은 난해한 것이고 동양화는 고고한 정신세계를 담은 것이라는 대중의 추측과는 반대로 슈렉이나 맥도날드 아저씨 같은, 아이들이나 반길 캐릭터를 장지에 옮겼기 때문이다. 만화와 미술의 만남이랄지, 본래의 발랄한 느낌이 많이 퇴색한 한국의 ‘팝아트’ 기획에서 주요 작가로 그림을 걸었다. ‘젊음’이나 ‘상상력’ 같은 단어에 어울릴 법한 행보였다.
이는 소위 ‘포스트-모던’한 행보로 독해되곤 했다. 1990년대를 전후해서 ‘포스트-모던’이 한국으로 유입되면서 문화의 다원주의라는 맥락은 문자 그대로 당대의 문화를 이해하는 키워드가 되었다. 만화라는 맥락을 화이트 큐브에 거는 ‘작품’으로 승격시킨 서구의 많은 작가가 주로 1960년대를 전후해서 탄생한 것과 비교해보면, 한국에서 ‘팝아트’란 1980년대의 3고(高) 호황에 따라 해외의 문화를 마치 제 것인양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세대를 통해 가능했고, 그것을 설명하기 위한 용어로 채택된 셈이다. 더 이상 현대미술의 재료는 진지하고 심각한 정치적, 사회적 혹은 개인의 도 닦기식 미학적 전통이 아니었다. 그것은 당연한 결과였는데, 주변의 모든 사물이 대중자본주의로부터 발췌된 문화의 산물이었기 때문이다.
손동현이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낼 당시는 아마도 일본 만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이해했던 소위 ‘오타쿠 문화’가 상륙한 시절이었을 것이다. 하드코어하게 망가와 아니메에 미쳐있지 않더라도 한국에서 자란 소년 소녀들에게 ‘만화영화’는 또래끼리 이해하고 즐기는 문화의 한 종류가 된 시점. 5시30분에 오후 방송을 시작하던 공중파 티브이는 7시 언저리까지 계속해서 일본 만화영화를 방영했고, 일요일 아침마다 방송국은 오래된 미국 만화영화를 틀었다. 이는 주로 원산지가 불분명하게 번안되어 권선징악의 간단한 스토리를 반복했다. 대부분이 톤이 선명한 원색의 유니폼을 입은 소년 소녀가 회색톤의 유니폼을 챙겨 입고 기괴한 체격을 한 악당을 물리치는 이야기였으므로, 나중에는 착용한 옷의 색깔과 주인공의 외양만 보더라도 그가 어떤 행동을 일삼을 지 쉽게 추측할 수 있었다.
한편, 대학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손동현은 동양화에서 이야기하는 ‘진경’이라는 형이상학적 개념을 두고 고심했던 것으로 보인다. 겸재를 비롯 무수한 한국의 동양화가에게 영감을 준 혁명적인 아이디어.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것을 그림으로 옮기면서도, 동시에 그리는 이의 정신성을 반영한다는 수도사적 면모를 겸비해야 한다는 교육을 받게 된 것이다. 이러한 교육에 대해 의구심을 품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행보였을 것이다. 현대라는 환경, 어쩔 수 없이 서구화가 진행되어 온 세계의 도시들이 엇비슷한 모양을 갖췄을 때, 과연 풍경화란 무엇인가. 영웅이나 스타로 추앙받는 인물이 부재했을 때 초상화의 소재가 될 수 있는 모습을 갖춘 대상은 무엇인가. 이런 질문에 청년의 특권인 반항심이 결합되면서 손동현의 동양화는 동양화과라는 특이한 미술학제를 유지하고 있는 한국의 미술교육 제도, 혹은 여전히 철옹성을 자랑하며 변화를 거부하는 전통이라는 이름과 현대미술 작가로서의 개인이 어떻게 조응하는가에 대한 문제의식을 품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손동현은 가장 가까운 곳부터 해결하고자 했다. 우선 자신의 유년을 살피고, 그리고 계속 유예되어 온 청춘을 대표하는 이미지를 장지에 옮겼는데, 그것은 바로 대중문화에서 즐기던 이미지였던 셈이다. 그것은 초상이라는 소위, ‘전신사조’라는 철옹성 같은 방법론을 스스로에게 맞춰버린 결과였다. 첫 번째 개인전에서 그는 특히 3D 애니메이션 캐릭터에 주목하는데, 이는 순전히 눈에 보이는 형체를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산술적 데이터의 산물이었으므로, 유독 대상의 정신성을 드러내야 한다고 믿어지던 동양화의 초상에 가장 잘 어울리는 대상이기도 했다. 게다가 무의미한 한자어로 음차해서 작품 제목을 정한 것은 단순한 언어유희를 넘어서 대중문화가 가진 ‘껍데기뿐인’ 혐의를 역이용하는 재기발랄한 시도였다.
그의 시도가 대중문화의 맥락을 좀더 세심하게 이용한 것은 현재까지 대표작으로 불리는 마이클 잭슨 연작이다. 총 40점으로 구성된 호기로운 초상화 시리즈인데, 마이클 잭슨이 팝이라는 대중문화의 큰 부분을 좌지우지했던 시절을 초상으로 점검함으로써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초상화라는 인터페이스를 연구함과 동시에, 현재를 아우르는 대중문화의 작은 역사를 작품의 흐름 속에서 포착할 수 있게 해두었다. 그리고 이후에 작업했던 <빌란(Villian)> 시리즈 역시 007이라는 대중 영화의 아이콘에서 묘사된 악당을 시대 순으로 감상할 수 있게 해서, 할리우드로 대표되는 미국 중심의 대중문화가 과연 어떤 존재를 악당으로 설정해왔는지 살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이후 약 3년간의 공백을 마무리하면서 이번에 윌링앤딜링에서 열린 전시는 <PINE TREE>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그런데 기존과는 꽤 많이 달라진 모양이다. 마치 이전까지의 작업세계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작업으로 도약하려는 듯, 강한 의지가 엿보이는 호기로운 전시다. 총 8점의 작품이 걸려 있고, 전시마다 그렸던 문자도 1점과 드로잉처럼 작게 그린 족자 3점을 부록이라고 치면 전시장 정면에 걸린 커다란 초상 4점이 이 전시의 전부다. 이 초상들은 동양화에서 소나무를 이용하는 방식을 네 가지로 정리한 뒤에 각각의 방식의 대표성을 딘 것이다. <Pine the Great>는 창덕궁 옥좌 뒤에 있었던 <일월오봉도>(작가 미상)를 레퍼런스 삼아 군주의 위엄과 권위를 상징하는 소나무다. 그리고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에 등장하는 화법과 소나무는 <Mister High Fidelity>라는 이름으로 표현되었다. <Shaman the Evergreen>은 악귀를 쫓는 주술적 의미로 그려지던 ‘까치호랑이’ 민화에서 차용한 작품이고, <Master Knotty Needles>라는 작품에서는 ‘십장생도’에서 장수의 상징으로 표현되어온 소나무를 참고했다.
21세기 초상화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작품에 등장하는 캐릭터다. 기존의 손동현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지만 마치 실제로 존재하는 것처럼 여겨지던 대상이나, 혹은 마치 이 시대의 영웅으로 추앙했던 ‘팝 아이콘’을 동양화의 화풍으로 옮기는 작업을 해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역으로 접근해, 대중문화에서 차용한 이미지가 아니라, 유명한 작품으로 전해져 오는 동양화의 대표적인 작품과 스타일을 차용해서 유사 대중문화의 캐릭터를 창조했다.
헌데 이러한 접근은 마치 원래의 텍스트를 재료 삼아 만들어지는 ‘동인’ 문화라는 서브컬처를 연상하게 한다.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등장한 이러한 문화는 기준이 되는 원래의 작품을 놓고, 그 작품의 팬들이 캐릭터를 다시 배열하면서 새로운 스토리를 창출하고 서로 공유하는, 소위 ‘2차 창작’ 행위를 그 기본으로 삼는다. 각 캐릭터의 특징 중에 유독 팬들의 지지를 받는 부분을 과장해서 표현해 적극적으로 스토리 요소에 첨가함으로써, 원래의 텍스트는 단지 캐릭터를 제공하는 수준으로 받아들여지고, 특별히 독특한 감상을 불러일으키는 부분을 분리해서 집중적으로 감상하게끔 하는 문화다.
이러한 ‘선택과 집중’의 방법 중에 대표적인 것은 ‘모에 의인화’다. 이는 간단히 설명해, 사물에 캐릭터를 부여해서 마치 인간처럼 보이게끔 묘사하는 것을 의미한다. ‘모에 의인화’의 대상은 단순히 동물이나 주변에 존재하는 사물뿐 아니라, 건축물이나 심지어는 눈에 잡히지 않는 시스템까지 포괄한다. 토끼라는 동물이 있다면 온순하고 겁이 많은 빨간 눈과 긴 귀를 가졌다는 점에 착안해서 비교적 단순하고 알기 쉬운 상징을 섞어 인물을 만들어낸다거나, 아파트라는 주거 시스템이 있다면 편리하고 깨끗하지만 아파트가 상징하는 경제적 의미를 눈치챌 수 있게끔 인체나 의상의 특징을 뒤섞어 인물을 만드는 행위를 예로 들 수 있다.
그러나 손동현의 작품을 순전히 ‘모에 의인화’를 거친 ‘동양화 동인지’라고 단정 짓기에는 여러 가지 부분에서 차이가 있다. 우선 ‘모에 의인화’가 집중하는 부분이 원본이 가진 캐릭터의 특성을 데이터베이스화해서 팬끼리 서로 알아보는 것을 재미로 삼고, 어떤 특이한 부분을 참신하게 선택해서 표현하느냐에 성패를 두고 있다면, 손동현의 <소나무> 시리즈는 오히려 동양화라는 전통적이고 공예적인 매체가 기나긴 역사 동안 집중했던 ‘정신성’, 즉 화폭에 표현되는 모든 사물이 그리는 이의 ‘정신성(혹은 캐릭터)’을 표현해야 한다는 법칙을 대중문화의 방법에 어떻게 적용하느냐에 성패가 달려있다고 볼 수 있다. 즉, 동양화에 실린 소나무가 비단 식물의 한 종류일 뿐만 아니라, 군주의 권위나 잡귀를 쫓는 주술성, 탈속을 꿈꾸는 선비의 고고한 성정, 인간 본연의 욕망인 장수 등의 내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할 때, 손동현은 캐릭터를 등장시켜 초상화를 표현할 때 필수적으로 고려해야 할 표정이나 근육, 포즈를 통해 그러한 의미를 대표하게끔 설계한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부분은 그동안 (맨해튼이 파괴되는 디스토피아를 병풍으로 그린 <섬> 시리즈를 제외하고는) 인물화의 양식적 맥락을 고민해 왔던 작가가 드디어 동양화의 가장 큰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산수화에 대한 대중문화적 언급을 통해 한동안 시도할 수 있는 방법론을 제시했다는 데에 있다. 앞서 간단히 언급한 대로 동양화란 중국의 영향으로 유독 동아시아에만 전해져 내려오는 특별한 공예 양식 중 하나이자 불가피하게 미술대학에 속한 묘한 영역인데, 그동안 동양화가로서 훈련받은 손동현이 가장 염두에 두었을 법한 ‘산수’에 대한 저만의 해석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자신의 작품세계를 점검하기 위해 동양화라는 넓은 바다에 다시 뛰어드는 용기를 드러냄은 물론, 동양화 전체를 아우르는 화려한 준법의 난도 높은 기교를 마음껏 뽐낼 수 있는 계기도 될 터이니, 중견 작가로 접어든 작가의 의미심장한 한 수인 셈. 마치 자신의 앞날을 스스로 점치기라도 하듯이 손동현은 이번 전시에 부록처럼 걸린 (마치 미국 코믹스의 표지를 연상케 하는) 족자에 그려진 다양한 캐릭터를 통해 동양화라는 시스템에 대한 나름의 재해석을 예고하고 있다. ●
손동현은 198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2006년 아트스페이스 휴에서 첫 개인전 <파압아익혼(波狎芽益混)>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7회 개인전을 열었다. <메이드 인 팝랜드>(국립현대미술관), <애니마믹 비엔날레>(대구미술관) 등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쌈지스페이스 레지던시(2006~2007)와 몽인아트스페이스 레지던시(2013~2014)에서 작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