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TIC 박혜수 Now Here Is Nowhere
송은아트스페이스 2.23~4.9
이수정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박혜수의 개인전 <지금 여기는 어디에도 없다>는 작가가 2년 가까이 네덜란드와 영국 두 군데의 레지던시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와서 오랜만에 연 전시다. 기나긴 시간의 흐름을 자연물(나무 둥치)에 남기는 초기작을 선보인 <시간의 깊이전>이나 <깊이에의 시간전>을 통해 우리가 삶 속에서 체험하기 어려운 시간을 자연을 소재로 하여 표현한 작가는 각종 전시, 레지던시, 공모전 등을 겪어가면서 작업 영역을 확장해왔다. 그는 경쟁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의 삶의 조건을 파고들면서 연구와 실험을 병행한다. <Meet the Lost>나 <잃어버린 꿈> 등은 경쟁적인 현대 사회에서 고유의 꿈이나 희망을 버리거나 포기당한 상태에서 사회에 무난히 적응하여 살아가는 우리의 우울한 자화상을 대면하도록 권유하고 자각을 일깨우는 작품이었다. 소중한 것들을 다 잃어버린 채, 대체 무엇을 위해서 이리 바쁘게 살아가는 거냐고 묻는 목소리가 기저에 깔려 있었다.
이번 전시 역시 우리가 모두 집착하듯 매달리는 ‘보통’의 삶에 대한 이중적인 태도를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주제적으로는 이전 작업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남들처럼 살기 위해서’라지만, 사실상은 나 자신이나 내 가족이 ‘남보다 낫게’ 살기를 바라며, 한편으로 ‘남보다 못하게’ 살게 될까봐 전전긍긍하는 우리의 복합적인 모습이 반영되어 있다. 한국과 영국 신문에서 보도된 우울한 기사에 펀칭을 하여 소리가 나도록 만든 오르골 <Gloomy Monday>에 위험한 사건사고에 휘말리지 않고 제발 ‘평범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반영돼 있다면, 기러기 아빠의 수집품에는 자녀만큼은 제발 남들보다 낫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에 남보다 못한 삶을 선택하는 쓸쓸한 모습이 담겨 있다.
메차닌 공간의 대형 설치작품 <World’s Best>에는 무조건 달성해야 할 목표처럼 세계 최고를 추구하는 방향 없는 욕망이 그려져 있다. 꼭 그래야 할 이유가 없는데도 최고, 일등이 되기를 요구하고, ‘세계 최고’라는 사실상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불필요한 목표가 절대적인 목표로 제시되는 우리 사회의 기형적인 모습이 풍자되어 있다. 맨 아래칸의 사람은 위의 풍경이 보이지 않고, 맨 위칸에서는 아래가 보이지 않는다. 서로가 서로에게 소외되고 단절되어 있다. 전시실에는 책으로 걸려 있지만 이번 전시의 중요한 배경은 작가가 일반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보통’의 의미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시인 겸 미술가인 태이 요헤가 쓴 시집 <통섬> 이다. ‘평균’과 달리 ‘보통’은 중간치라는 의미 외에도 ‘정상’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기 때문에 사실상 정의 내리기가 어려운 단어이다. 작가는 언제나처럼 ‘보통의 삶’이라는 게 대체 무엇이냐고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관객을 맞이하지만, 질문을 던지는 태도는 과거와는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작가가 생각하는 정답 혹은 모범 답안이 있음직했지만,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그러한 선-판단을 제시하지 않는 것 같다. 이는 ‘보통’이라는 단어가 가진 복합성도 원인이 되겠지만, 여러 가지 이야기를 서로 다른 층위에서 던지고 있다는 데서도 그렇다. 하나의 명징한 내러티브로 정리되는 것이 아니라, 불가지론에 가까워진 셈이랄까. 그 변화의 이유가 무엇일지는 다음 행보를 통해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작가가 질문을 하는 태도는 여전히 치열하지만, 명쾌히 이해하거나 판단할 수 없는 다양한 삶의 양상을 더 많이 보고 지금 여기, 여러모로 피로한 한국 사회로 귀환한 작가는 쉽게 정리할 수 없는 삶의 조건들을 글로, 사진으로, 오브제로 보여준다.
위 박혜수 <가변적 평균대> 금속 구조물, 레이저 수평계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