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TIC 강석호

스페이스비엠 3.17~4.17
양지윤 코너아트스페이스 디렉터
강석호는 17년간 정사각형에 가까운 캔버스에 토르소를 반복적으로 그려 왔다. 신문이나 잡지에 실린 사진을 골라 얼굴과 팔다리를 트리밍한 인물들을 캔버스에 담았다. 캔버스 속 정치인과 스포츠맨들은 목걸이나 권투 글러브, 무궁화나 넥타이 같은 액세서리들과 함께 웅변적이거나 서사적인 손동작으로 제 사회적 위치나 정체성을 드러냈다. 연작은 옷의 패턴이나 손의 제스처에 담긴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풍경화였다.
이번 전시에는 그간 작업해 온 40여 점의 토르소 작품과는 다른 회화작품 4점을 선보였다. 작업실의 흰 벽에 걸려있던 돌아가신 아버지의 체크무늬 재킷을 조명과 구도를 약간씩 바꿔가며 반복적으로 그린 작품들이다. 몸은 사라져버린 채 껍데기가 되어 벽에 걸린 옷. 작가는 제 눈앞에 실제로 존재하는 사물들이 시시각각 변화하는 모습을 유심히 관찰하고 각각의 캔버스에 옮겼다. 제 의지와는 상관없이 벽에 붙어있는 재킷은 “본다는 것의 다름을 가능하게 했다”고 작가는 말했다.
사진의 질감과 실재 사물의 질감 사이에는 분명한 간극이 존재한다. 사진을 회화로 옮기는 방식과 실제 사물을 회화로 옮기는 방식은 다를 수밖에 없다. 생명이 없는 사물이라 할 지라도, 사물을 바라보는 행위는 시간이나 빛에 따라 다른 모종의 기억들을 끊임없이 불러일으킨다. 강석호는 아버지의 재킷을 바라보며 이에 대한 변화하는 기억들과 감정들을 4개의 캔버스 안으로 포획한다. 화가는 회화 안에서 사물의 내부에 담긴 실재들을 연다. 화가는 캔버스 위에 남겨진 붓과 물감의 움직임으로 사물에 대한 기억들과 감정들을 불러일으킨다.
내 앞에 존재하는 사물을 옮기는 행위는 무엇인가! 그 행위라는 과정의 결과로 파생되어진 흔적이 이미지라면, 난 그것을 어떻게 인식해야 하는가! 그 이미지가 제시하는 과정 속에서 재료와 혀의 형식에 대한 나의 독백은 감정의 언저리에 걸쳐져 있는 작은 파편들에 대한 새로운 조합의 가능성일지도 모른다.
— 작가 노트 중에서
강석호는 이미지가 범람하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캔버스 속 이미지에 대한 존재론적 질문들로 회귀한다. 사물을 이미지로 옮기는 행위, 옮겨진 이미지와의 관계, 옮기는 행위의 의미들 그리고 그 새로운 조합들의 무한한 가능성에 대한 부단한 질문이다. 결국 캔버스 속 이미지는 언제나 ‘그 무엇’의 이미지일 뿐 ‘그 무엇’ 자체일 수는 없다. 회화 속 이미지가 지닌 숙명에 대한 예술가의 고민이다.
‘반복’은 이런 고민에 대한 강석호의 사유 방식이다. 강석호는 ‘뒷짐 진 남자의 뒷모습’ 을 70점 그리고, ‘벽에 걸린 재킷’을 4점 그린다. 사물의 특정적 시간 상태와 작가의 감성적 상태에 따라 변화하는 인상을 반복적인 이미지들로 포착하는 행위는 강석호가 이미지를 연구하는 방법이다. 하나의 대상을 반복적으로 그리면서 회화 속 이미지와 사물 자체의 차이를 수행하듯이 드러낸다. 그 회화들은 이미지를 감각하는 것과 사유하는 것 사이를 부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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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호 <무제>
캔버스에 유채 2016
위 강석호 <무제>
캔버스에 유채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