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TIC 강운 Play : Pray
사비나미술관 4.6~5.6
황록주 경기도미술관 학예연구사
‘구름’ 하면 누가 뭐래도 작가 강운이었다. 가뜩이나 남보다 한 자 짧은 이름에 단호히 ‘구름 운(雲)’ 자 하나를 각인하고 태어난 이답게 그의 그림은 일생의 숙명처럼 오랜 시간 구름을 담아냈다. 그가 태어나 지금도 살고 있는 남도의 맑은 하늘은 그런 그에게 단 하루도 똑같지 않은 모습을 펼쳐 보이며, 무한히 건져 올릴 이미지를 선사했다. 덕분에 우리도 그의 그림을 보면 여간해서 잘 올려다보지 않는 하늘을 가만히 선 채로 만끽할 수 있는 호사를 누렸다. 디지털 미디어가 실제의 삶을 속속 대체하는 세상에서 작가 강운이 보여주는 구름의 모습은 여전히 회화라는 오랜 인간의 활동이 존재하는 이유이자, 그 자체로 그림의 존재를 증명해내는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강운의 구름이 변했다. 10여 년 전부터 그는 한 순간의 형상을 숭고하게 드러내는 구름을 더 이상 그리지 않는다. 아름답게 정지된 순간의 이미지를 포착하여 이를 극명하게 드러내면서 물과 공기와 자연의 거대한 힘이 강력하게 살아있다는 것을 당당히 보여주었던 이전의 회화는 사라졌다. 그의 구름은 더 이상 커다란 화폭 가득 시시각각 모양을 달리하는 형상에 머물지 않는다. 그때 보았던 그 구름이 아니라, 눈과 마음을 사로잡았던 그 하늘이 아니라, 사이사이로 바람이 넘나들고 한 겹 한 겹 시간의 흐름이 쌓여 있는 추상화된 공간으로, 그의 작업은 어느새 옮겨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한지를 작품의 재료로 사용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오래도록 그의 손을 떠나지 않았던 오일 페인팅을 과감히 멈추고, 화면에 드러내고자 하는 대상인 구름만큼이나 자연스러운 고향의 한지를 평면 위로 불러들였을 때, 눈과 마음이 기억하는 것을 따라 붓을 옮기던 화가에게 구름과 하늘은 이제 더 이상 정지된 이미지이거나 기어이 도달해야 하는 어떤 형상이 아니라, 차분히 순리에 따라 호흡과 숨결을 함께하는 동반자가 되어 주었다. 작가는 화면 안에 이미지를 가두는 붓질을 넘어서서, 잘게 조각낸 한지를 한 장 한 장 붙여가며 구름과 하늘, 바람과 시간을 스스로 드러나게 만든다. 이미 존재하던 모습이 아니라 작품을 만드는 과정을 통해 조금씩 그 모습이 구체화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강운이 그리는 구름은 수증기가 덩어리로 응결되어 있는 구체적인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물질을 주어진 조건에 따라 무한히 변화하게 만드는 자연의 이치에 가 닿을 수 있게 하는 매체다. 매일 오전 한결같이 반복하는 수행적 작업의 결과물인 <물 위를 긋다> 연작 또한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해볼 수 있다. 그날그날의 온도와 습도, 몸과 마음의 상태에 따라 달라지는 단 한 줄의 넓은 붓질은 변화의 한가운데서 질서를 찾고 그 이치를 넘어서 생동하는 삶의 무한한 가능성을 동시에 담지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 강운은 그가 온 인생을 통해 짊어지고 사는 한 없이 가벼운 구름을 통해 서서히 하나의 경지에 다다르고 있다.
위 강운 <공기와 꿈>(왼쪽) 캔버스에 염색한지 위에 한지 2015 위 강운 <물 위를 긋다> 종이에 담채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