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TIC 김수자 Diary-Existence
금호미술관 4.2~12
이태호 미술비평, 익산문화재단 사무국장
<일기-존재(Diary-Existence)>라는 바느질 작품으로 유명한 김수자의 개인전이 지난 4월 2일부터 금호미술관 전관에서 열렸다. 김수자의 이번 전시가 특히 의미가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작가가 지난 15년 동안 일관되게 지속적으로 관심을 보인 ‘일상성(日常性)을 통한 존재(存在)’에 대한 의미를, 회고전 형식의 전시를 통해 집대성했다는 점에서였다. 마치 수틀에 자수를 한 땀 한 땀 정성들여 놓듯이, 캔버스 위 바느질을 통해 작가가 십수년간 지속적으로 파고든 ‘일상성과 존재’에 대한 물음은 아이러니하게도 오히려 순간적이고 찰나적인 영감(靈感, inspiration)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세탁기에서 옷가지를 꺼내다가 무심코 바라본 구겨진 한 장의 셔츠로부터, 인생의 공허함과 존재의 가벼움을 느꼈다는 것이다. 작가의 대표작 <Diary-Existence>에 대한 영감을 제공하는 의미있는 순간이었다.
김수자의 작품을 접했을 때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여성성’이라는 느낌은 바로 ‘바느질’에서 연유할 것이다. 바느질은 여성성의 상징이자 초기 페미니즘 미술이 등장한 1970년대부터 페미니즘 여성 작가들이 시도했던 제작 방식이었다. 기본적으로 여성과 여성미술이 타자로 인식되던 그 당시의 성차별 문화와 남성중심 화단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시작된 페미니즘 미술은 결국 대표적인 남성양식이었던 모더니즘에 대한 비판과 거부로 귀결되면서 여성의 사회적 정체성이나 사회적 역할과 지위, 여성 개인의 자아문제 등 성적인 편견과 성역할의 고정관념으로부터 탈피를 시도했다. 하지만 김수자 작품의 상징처럼 되어버린 ‘바느질’은 여성성의 상징적인 행위로서 일정 부분 여성성을 내포하고는 있지만 페미니즘 여성 작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사회비판적인 의식이나 여성의 사회적인 역할 등에 주목하는 것이 주요목적은 아닌 듯하다. 오히려 바느질을 통해 드러난 김수자의 작품은 캔버스에 작업하는 행위 자체를 통한 물성(物性)의 발현이자 동시에 자아 발현의 공간, 삶과 인생의 흔적과 일상의 흔적들이 공존하는 공간으로서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김수자의 바느질은 오히려 더 철학적이고 함축적인 작가만의 언어를 내포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냐하면 김수자의 바느질은 일상의 공허함과 존재의 가벼움뿐만이 아니라, ‘옷’이라는 객관적 실체와 ‘존재’라는 주관적 지각에 대한 명상언어와 다름없기 때문이다.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시키는 배경의 붓질과 바느질, 물성과 정신이 공존하는 합일 공간으로서 김수자의 작품에는 작가가 끊임없이 추구해온 내면세계가 ‘옷’과 ‘의자’라는 조형성과 ‘바느질’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표현돼고 있다. 동물과 인간의 동작 변화를 사진으로 찍어 움직임을 체계화했던 에드워드 머이브리지의 로코모션(locomotion) 기법이나 눈속임 회화를 위한 일루전(illusion) 혹은 실루엣을 연상시키는 김수자의 바느질 기법은 촉각적이면서도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넘나드는 행위적 요소로서 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마치 마르셀 뒤샹의 작품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 No 2>를 연상시키는 김수자의 작품들은 캔버스에 등장하는 환각적인 ‘옷’의 움직임을 통해 ‘시간의 동시성’이라는 개념뿐만이 아니라 공간을 다양한 요소들로 구성했던 입체파 화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공간의 동시성 역시 내포하고 있다.
이처럼 김수자에게 바느질을 통한 ‘옷’과 ‘의자’라는 조형은 작가의 내면세계를 가장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주요 수단이자 작품의 독창성과 정체성을 대변하는 주제이며 정신성의 발현과 다름없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김수자의 <Diary-Existence>에 나타난 셔츠 한 장에서 일상의 공허함과 존재의 가벼움, 부재의 무거움이 존재와 부재 사이에 있음을 인식하게 된다. 존재와 부재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존재는 부재의 그림자이고 부재 역시 존재의 거울에 비친 불완전한 자아(自我)이자 동시에 영원한 타자(他者)이기 때문이다. 상반된 개념인 듯 보이지만, 사실은 한쪽이 있어야만 다른 한쪽 역시 존재 가능한 상호보완적인 개념인 것이다.
‘인생(人生)은 존재와 부재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라던 작가 김수자의 말이 자꾸만 귓가를 맴돈다.
위 김수자 <Diary-Existence> 시리즈 혼합재료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