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TIC 데니스 오펜하임
우손갤러리 4.9~6.13
이미애 수성아트피아 전시기획팀 팀장
‘인간에 대한 본질 탐구’를 중심으로 작업세계를 펼쳐온 세계적인 조각가 데니스 오펜하임 (1938~2011)의 전시가 대구 우손갤러리에서 열렸다. 오펜하임은 회화가 지향할 최고의 가치를 평평한 캔버스 표면에 이루어질 수 있는 순수한 아름다움이라고 여기던 시기에 ‘미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개념의 전달을 작업의 축으로 삼아 여러 가지 매체와 형식들을 사용했는데,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이 만나 시간의 흐름과 함께 만들어낸 문명과 지성이 어떤 과정을 거쳐 형성돼 왔는지에 대한 설명을 예술이라는 형식을 빌려 구현했고 이를 통해 예술 너머 인간의 본질에 다가가고자 했다.
자신의 아이디어나 감정을 투영해 대리자 역할을 하는 꼭두각시나 오브제 작품을 제작했던 오펜하임은, 아이디어가 미술로 표현되는 과정을 기계의 작동 과정으로 나타내는 작업을 하기도 했다. 이번 전시에서도 꼭두각시 인형에 기계 전동기를 설치해 움직이게 함으로써 감각적인 인간과 감각이 없는 사물의 관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작품을 보여주었다. <Theme for a Major Hit>(1974)는 기계의 빛과 소리, 움직임 등의 비물질적 요소를 작품세계에 내포시켜 조각의 개념적 영역을 확장하고자 한 작품이며, 오펜하임이 기계의 원리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는 계기가 된다. 이러한 작업은 사고의 흐름을 기계의 작동 과정에 비유함으로써 심리적인 요소를 기계적인 것으로 나타낸 것이다. 이는 미술의 제작과정과 산업생산의 공정을 동일시한 러시아 구축주의 미술의 이념과도 유사하다. 과학기술 (technology)의 요소를 미술에 도입함으로써 미술의 표현 가능성을 넓히고자 한 미술가들과 마찬가지로, 오펜하임은 기계라는 요소를 미술에 접목시켜 개념을 발현하기 위한 매개체로 활용했다.
또한 1990년대까지 이어진, 인간의 의식구조를 기계구조에 빗대어 반복적인 움직임과 작동원리의 공통 속성을 시각적으로 풀어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꼭두각시 인형이 춤을 추는 동안 같은 전시 공간 내에 한 남성의 목소리가 반복해서 울려 퍼진다. “그것은 당신이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그렇게 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영상 속에는 사람의 입모양만이 강조되고 전시 공간 내에 소리가 울려 퍼지는데 바로 오펜하임 생전의 것이다.
이와 같은 기계적 구조물은 오펜하임의 사고를 형상화하여 관람자들이 볼 수 있도록 해주는 또 다른 형태의 ‘대리자’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 보여준 <Splash Building> 연작 조형물은 정신적이고 심리적인 요소를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도록 해 주는 매체일 뿐만 아니라, 관람자의 반응을 일으키고 참여시키는 장치이기도 했다.
오펜하임은 여러 가지 매체나 형식을 동시에 혼용하기보다는 시기별로 특정한 표현 방식에 집중하면서 작품 유형이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이는 그가 단순히 다양한 매체와 형식의 사용을 목적으로 했다기보다는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가장 적절하게 나타내는 방식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했음을 입증한다.
오펜하임은 자신의 아이디어를 표현하기 위해 형식의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는 미술을 삶에 연결시키고 관람자의 참여를 이끌어냄으로써 미술을 사회적, 역사적 맥락에 위치시켜 미술의 본질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 작가가 아닌가 생각된다.
데니스 오펜하임 <Splash Building>(설치작) 혼합재료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