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TIC 매뉴얼 Part & Lavour
문화공장오산 2014.11.14~2014.12.14
미술가는 작품의 아이디어를 내고, 일반 참여자가 미술가가 작성한 매뉴얼에 따라 제작한 작품으로 이루어진 전시. 종종 볼 수 있는 방식의 프로그램이기도 하지만 미술관에서 특별하게 설정한 의도와 목표를 가지고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경우 역시 드물다.
이번 전시는 “기획자가 동일한 재료들을 제시하고 작가들은 그 제한된 재료 안에서 작품을 구상”하며, “그 구상된 작품은 하나의 지시서(매뉴얼)로 제작되어 작가의 도움 없이 제3자의 손에 의해 제작”된 작품을 전시했다. 이를 위해 오산 시민 60여 명이 참가, 5일간 작업 지시서를 바탕으로 작품을 제작하는 워크숍을 진행했다.
“작가를 작품을 제작하는 창조자의 역할이 아닌 주어진 재료 안에서 작품을 구상하는 연출자의 역할로 제한하고, 작품 제작과정에 실질적으로 참여하는 시민들의 활동을 통해 예술작품 탄생 과정에서 간과되기 쉬운 ‘노동’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보려는” 목적을 표방했다. “현대예술이 담고 있는 의미를 ‘재료’와 ‘노동력’이라는 새로운 측면에서 고찰해 볼 기회를 관람객에게 제공”하려 했다는 것이다.
관람객을 그저 감상자나 향수자로서의 역할로부터 불러내어 완성된 작품의 한 부분이나 작품 완성을 위한 참여자로서 끌어들이는 것은 현대미술의 한 경향 가운데 하나이다. 메일아트 등의 개념적인 미술도 그렇고, 전자기기의 발달에 의해 점차 복잡하고 정교해지는 인터랙티브 아트 형식의 작품 또한 그렇다.
그러나 이번 <매뉴얼전>은 기성예술이나 제도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메일아트나 유희적인 성향이 강한 근자의 인터랙티브 아트와 달리, 작품 아이디어와 제작방식을 미술가가 담당하고 참여자는 그 지침을 벗어나지 않는 한도에서 자율성과 창의력을 발휘하여 실제 작품을 만들어내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많이 다르다. 마치 작곡가의 음악을 자신의 해석을 담아 연주하는 연주자와 유사하다고 할까.
미술가가 제작한 매뉴얼, 그것도 지정된 재료라는 제한 속에서 제작한 매뉴얼은 자연스럽게 미술, 미술행위, 작품 등에 관한 작가의 관점이나 이념이 드러나리라 생각한다. 나아가 이러한 취지(특히 미술(가)와 관람객의 접촉이나 교류 또는 미술교육 등과 관련된)에 대한 평소의 생각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참여한 작가로서도 자신의 미술과 행위가 무엇에 근거하고 있으며 무엇을 의미하는지, 또한 어떤 메커니즘을 통해 자신의 작업이 구체화되는지를 되돌아보고 반성해볼 수 있는 훌륭한 기회라고 생각된다. 관람객으로서도 미술에서 재료와 노동의 의미를 고찰해보도록 한다는 기획의도도 물론 성과가 있겠지만, 미술이나 미적 활동에 대해 평상적인 관람과는 다른 관점과 태도로 접근하도록 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좋지 않은 조건 때문에 참여를 고사한 몇몇 작가가 있었다는 이야기는 아쉽다. 교육을 표방하는 오산시로서도 예술교육이 단지 ‘즐기며 체험하는’ 것에만 있지 않음을 확인하고 숙고와 준비를 거친 전시를 통해 예술의 의미를 깊이 있게 교육하는 미술관을 만들어가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박정구 독립 큐레이터
위 문화공장오산에서 열린 <매뉴얼> 전시광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