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TIC 보고ㆍ10ㆍ다
3.21~4.16 SeMA 창고
정수경 | 미학
전시가 열린 SeMA 창고는 불광역에서 걸어서 5분이면 닿을 은평구 혁신파크 한편에 자리하고 있다. ‘창고’와 ‘혁신’이라… 그 기묘한 조합의 울림이 만들어낸 다소의 상념들을 헤아리다보니 어느덧 창고 앞이다.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창고의 생김새. 한눈에도 수십 년의 세월을 짐작게 하는 붉은 벽돌 단층건물의 흰 방범창살과 연한 청회색 페인트로 덧칠된 커다란 나무문은 산뜻한 산수유색 전시 현수막을 크게 내걸고 활짝 열려 있음에도 발걸음을 잠시 주춤하게 한다. 대안공간의 역사도 20년이 다 되어가고 미술관들마저 대안공간을 운영하는 마당에 이 무슨 새삼스러운 구태인가 싶겠지만, 대안적 공간들은 여전히 기대 어린 긴장감을 일으키곤 한다. 공간이 도전하기 때문이다. 보존해야 하고 보존하기로 결정된 낡고 오래된, 그리고 애초에 전시를 위한 것이 아니었던 공간을 어떻게 미술 전시 공간으로 살려낼 것인가. 낡은 시약창고 공간이 그렇게 던진 도전에 난지 10기 작가들은 어떻게 응했을까?
궁금증을 안고 들어서는 이를 처음 맞는 것은 회색 가벽에 걸린 임현정과 허수영의 커다란 회화들이다. 무덤덤한 회색은 낡은 창고의 거칠고 붉은 골조를 부분적으로 감싸 안으며 긴장을 살짝 누그러뜨린다. 그러나 이 가벽에는 급변하는 전시공간의 성격과 충돌하는 회화의 시각성에 관한 깊고 오랜 고민이 녹아들어 있을 터. 여기서 회색은 협상의 색상으로 와 닿는다.
그 왼편으로 난 통로를 따라가면 몇 개의 스크린이 하얀 가벽을 따라 설치된 공간이 나타난다. 영상작품들이 맞이하는 이 공간은 너무 환해서 생경할 지경이다. 긴장하지 말라 말이라도 걸 듯, 권용주와 박보나의 작품은 압도하기보다 차분히 다가오는 크기로 설치되었다. 이곳이 낡고 오래된 창고였음은 유난히 환한 빛이 의아해 고개를 들어 천장을 보았을 때 비로소 각성된다. 당연히 있을 것 같던 슬레이트 지붕 대신 엉성하게 얹힌 목재들 사이로 봄 햇살이 눈부시다. 후면의 문 뒤에 감추어진 ‘ㄷ’자 모양의 좁은 공간에는 권혜원의 영상이 삼 면의 틈새 없이 가득 채웠다. 3채널의 비수평적 배치는 공간의 특정한 생김새를 살려내는 동시에 ‘버려지는 장소들’이라는 영상의 테마와도 공명을 이루며 시각적 울림을 한층 키워낸다. 이에 뒤질세라, 신형섭의 모기 세레나데가 기묘하게 치고 들어온다. 협상에 이은 진입의 면모가 엿보인다.
다시 돌아 나와 중앙에서 오른쪽 후면에 있는 좁은 통로로 들어가면 시약창고의 진면모를 보여주는 선반들이 유난히 높은 천장까지 가득 차 있는 공간이 나타난다. 드디어 도전하는 공간이다. 박윤경과 옥정호, 도로시엠윤, 염지혜의 작품이 맞이한다.
좁고 길고 높고 선반으로 가득한, 못조차 박지 못하는 공간. 무엇보다 강한 입체감으로 다가오는 선반들의 공간 속에서 평면작업들은 어떻게 공간에 밀리지 않고 상호작용할 수 있을까? 고민의 흔적들이 드러난다. 박윤경이 이 다소 산만하고 복잡한 공간을 반투명한 자기 작품이 창발하는 공간체험유희를 극대화하는 요소로 끌어들였다면, 도로시엠윤은 선반이 만들어내는 어둠을 물리적으로나 주제적으로나 ‘Myself 네온시리즈’의 최적화된 배경으로 활용해냈다.
길쭉한 공간의 동선을 따라가다 보면 사위가 온통 선반으로 둘러싸인 가장 거칠고 산만한 공간이 관람자를 맞이한다. 그에 맞장이라도 뜨듯, 강렬한 외관의 작품 몇이 거기 자리 잡았다. 임흥순, 배윤환, 성유삼 그리고 이정형의 작품들은 맞춤옷이라도 입은 양 공간과 어우러진다. 성유삼과 배윤환의 검고 어둡고 강렬한 작품들이 창고의 드센 느낌을 더욱 강화한다. 이정형의 작품은 너무 녹아들어, 원래 작품이 지녔던 파열의 힘이 좀 약화되는 느낌이다. 역설적이게도 이 공간에서 도드라지는 것은 홍승희와 신현정의 작품이다. 홍승희의 백색 오브제들은 마치 오래 비울 집의 가구에 흰 천을 씌워 놓은 듯한 모습, 그래서 잊힌 어떤 사물들의 세월을 화석화한 듯한 인상으로 새롭게 다가온다. 화이트큐브는 줄 수 없었던 시간과 공간의 관계에 대한 상념을 오래된 창고 공간이 비로소 그녀의 작품에 제대로 가져다준 듯하다. 신현정의 작품은 아주 독특한 방식으로 공간에 개입한다. 그 여린 천들이 길게 늘어져 미약하게 흔들리는 모양이 강한 공간과 강한 작품들의 대결 속에서 공간을 진정시키고 달래는 듯하다. 동시에, 잘 들여다봐야만 보이는 곳곳의 빛바랜 자국들은 SeMA 창고의 세월에 대한 은유 같다.
다시 돌아 나오는 길에, 아차! 놓쳤던 무엇인가가 새롭게 눈길을 잡아끈다. 마치 처음부터 그 공간에 속한 것인 양 너무도 자연스레 칸칸이 놓여 있어 무심히 지나쳤던 푸른 화분들. 허태원의 〈염리동 블루스〉다. 작가의 고민과 재치가 동시에 느껴져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샌다. 순간, 작가들이 공간과 밀당하며 보냈을 설치의 시간들이 눈앞에 선연하게 펼쳐진다.
신진작가들을 위한 레지던시의 운명이란 한결같다. 시내 중심부로 진입하지 못하고 주변부에서 둘레둘레 서성대야 하는 운명. 그러나 때론 그 운명이 아직 길들지 않은 신진작가만의 도전정신에 합당한 공간들을 선물하기도 한다. 주변부인 까닭에 재개발의 논리를 비켜갈 수 있었던, 삶의 오랜 시간의 흔적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SeMA 창고 같은 공간들이 난지 10기와 같이 패기 찬 젊은 작가들의 작품들과 만났을 때, 작가는 응전 가운데 성장하고 공간은 젊은 작품들을 통해 새로운 생기와 활력을 얻는다. 이런 것도 하나의 혁신, 그것도 꽤나 괜찮은 혁신 아닐까?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이 공존하고, 어두움과 밝음이 함께 있고, 공격과 달램이 밀당하는 곳, 그곳은 더 이상 창고도 아니거니와, 전시장에 불과하지도 않다. 그곳은 작품을 매개로 삶의 에너지가 피어나고 확산하는 공간이다.
난지 10기 리뷰전 〈보고ㆍ10ㆍ다〉는 디스플레이에서 아카이빙으로, 아카이빙에서 에디토리얼로 이행하는 전시형태의 진화과정을 한 번에 보여주었다. 그 모든 과정이 아티스트 큐레이팅에 의한 것이며, 심지어 작품 설명글 작성도 작가들이 직접 했다는 점은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의 다변화된 프로그램들이 얼마만큼의 성과를 내고 있는지를 방증한다. 이제 난지 10기 작가들은 각자의 길로 흩어졌지만, 전시장에서 본 그 찬란한 햇빛이 비껴드는 어느 봄날이면 SeMA 창고에서 만났던 그들의 그 에너지가, 그 작품들이 다시 보고ㆍ10ㆍ을 것 같다.
위 성유삼 〈파도〉(왼쪽) 스폰지 폼 200×200×85cm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