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TIC 안경수 가는 길
밀리미터 밀리그람_이태원 5.11~31
함성언 갤러리 버튼 대표
풍경을 그리는 작가가 쏟아져 나오는 중에도 안경수는 여전히 풍경을 그린다. 딱히 어느 시점부터라 말하기 어렵지만 (아마도 미술시장의 침체 때문이 아닐까 예측은 해보지만) 정확한 이유나 영향 관계를 찾을 수 없는 풍경 그림이 전시장마다 한 번씩은 걸린다. 대체로 ‘심상의 풍경’ 같은 말로 엮을 수 있는 이 풍경 그림들의 공통점은 같은 풍경이라도 누가 어떤 상태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르게 보이고, 읽히기 때문에 그것은 온전히 한 사람을 위한 풍경이 된다는 설명이 덧붙는다는 것이다. 생의 한 시점을 관조하는 자세가 젊은 작가들에게서 종종 발견된다면 그들이 그만큼 여물었거나, 아니면 반대로 급하게 무엇인가를 흉내 내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안경수는 여전히 풍경을 그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여전한 안경수’가 지금 한국 회화 작가군에서 어떤 포지션을 점하고 있는지를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알려진 바와 같이 동양화를 전공한 안경수는 아크릴을 이용한 회화작업을 꾸준히 선보이고 있는데, 대체로 얇게 발라 올린 것처럼 보이는 그의 작업은 의외의 깊이를 갖고 있다. 특히 밤의 먼 풍경을 그린 작업들에서 자주 발견되는 안경수의 깊이는 작업의 진행 방식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밑작업부터 차곡차곡 색을 올려 전체적인 톤을 만들고 다시 먼 곳부터 가까운 곳으로 오며 눈에 걸리는 모든 구조물과 자연물을 그려 올리는 작업 방식은 비단 안경수만의 것이라 말할 수는 없지만 동양화의 작업 방식이나 철학에 익숙한 그는 얇은 화면에 풍경의 깊이를 충실하게 재현한다. 사진을 찍어 풍경을 재현하는 회화의 작업 방식 역시 새로운 것이 아니지만, 그는 다양한 시간대에 여러 각도로 피사체를 찍고, 각각의 톤을 재현하는 방식으로 평면예술인 회화에 시간성을 덧입히기도 한다. 특히 저녁 어스름이나 한밤중, 먼 곳에서 빛나는 도시의 불빛을 여러 색을 겹쳐 올려 표현한 <Glow the factory>나 <Bright night 1, 2>와 같은 작업들은 앞서 말한 안경수 작업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안경수를 단순히 동양화의 심도가 구현되거나 시간성을 더한 회화작업을 하는 작가로 평하는 것으로는 다른 풍경화 작가들과의 차별점이 구체화되지 않는다. 안경수의 작업을 이해하고 읽어내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은 그가 풍경을 대하는 태도를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가 한 장소 사진을 여러 장 찍고, 가까이 보이는 풍경을 주로 그리는 까닭은 그것이 단순한 관조의 대상이거나 개인의 심정을 투영하기 위한 도구가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인 것으로 보인다. 그의 작업에서 자연 풍경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이유 역시 이와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는데, 그에게 풍경은 먼 데서 바라볼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안으로 들어가 만져볼 수 있어야 하며 인간의 흔적이 남아있는 장소여야 한다는 신념이 있기 때문이다. 그의 SNS 계정에는 종종 그의 작업실 주변과 버스 안에서 바라본 풍경 사진들이 게시되는데, 이 중 몇몇이 작업 대상이 되곤 한다. 그가 들어가 볼 수 있는 풍경이기 때문이다. 또한 풍경들은 질감이 강조되거나 실제처럼 재현되는 경우가 있는데 굳이 질감이 느껴지도록 재현하는 이유 역시 그것이 사람의 흔적이기 때문이고, 그것이야말로 안경수가 오랜 풍경작업을 통해 그려내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관조하고, 자의적으로 해석된 풍경 작업을 ‘심상의 풍경’으로 부를 수 있다면 안경수의 작업은 ‘촉각적 풍경(tangible landscape)’으로 구분하여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한국 현대회화의 흐름에서 자리 잡은 지점은 이것으로 확고해진다.
위 안경수 <Glow of factory>(맨 왼쪽) 캔버스에 아크릴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