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TIC 노상익 {blog: surgical diary}
스페이스 22 2014.12.22~1.22
노상익은 사진가이기 전에 외과전문의다. 그의 신분을 밝혀야만 하는 이유는 이 대목이 그의 최근 전시 <블로그: 수술일지>에서 중요한 관전 포인트가 되기 때문이다. 1인 2역의 모노드라마처럼 의사와 사진가의 시선이 교차하는데 두 시선의 팽팽한 짜임새는 노상익의 특수성을 돋보이게 한다.
작업은 한해 200여 차례의 암수술을 집도하는 외과의로서 그가 자신의 홈페이지에 일기 형식으로 기록해 나간 임상 일지에 뿌리를 두고 있다. 수기로 써내려간 진단서를 비롯 환자의 심장박동 그래프, 수술 장면 및 몸에서 떼어낸 암세포 등 치료 과정부터 사망시까지의 도큐먼트가 공개된다. 이것들은 환자 대부분의 환자의 치료와 연구를 위해 의사 노상익이 수집한 데이터들이다. 사람의 장기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사진도 그가 찍은 것이 아니라 수술 당시 기록 조수나 수술대 위의 카메라가 자동으로 촬영한 것들이다. 비전문가에게는 해독 불가능한 암호코드나 불편할 만큼 적나라한 해부도처럼 보이는 이 자료들은 언뜻 암의 불가해함과 맞서는 실험실에 들어선 기분이 들게도 한다.
이 의학적이고 차가운 기호의 씨줄 위에 다시 두 갈래의 날줄이 얽히는데, 하나는 환자 개개인에 관한 아카이브이고, 다른 하나는 사진기를 든 노상익이 기록한 환자들의 모습이다. 환자와 가족들이 작가에게 제공한 앨범 사진 등에서는 암의 발병 요인을 유추해볼 수 있는 직업, 사는 곳 등의 사회학적 지표는 물론이고 암을 겪은 개인의 삶의 궤적이 담긴다. 특히 그가 근무하는 보훈병원의 특성상 환자의 상당수는 전쟁터에서 외상을 당한 이들이기도 하다. 노상익은 그런 그들의 병실에서의 모습, 퇴원 후 집에서의 일상 등을 스스럼없이 사진으로 기록한다. 대개는 치료 과정에서 더 많은 이야기와 정서적 교감을 나눈 환우들이다. 어느 환우의 집에서 찍은 듯한 물고기와 부엉이, 햇살 아래 잡풀 더미에서 걸어 나오는 중년 사내 등의 사진은 우리로 하여금 암이라는 묵직한 질병 너머 존재의 한순간을 바라보게 만든다. 따뜻하면서도 슬픈, 한껏 서정적인 이 사진들은 각자의 죽음의 경험과 맞물린 푼크툼이 되기도 하고, 의사가 아닌 인간 노상익이 겪은 상실감의 징표처럼 보이기도 한다.
암도, 이미지도, 생도 복잡성을 벗어날 수 없듯, 암을 둘러싼 다양한 층위의 사진들은 노상익의 전시에서 낯설게 충돌하면서도 정교하게 맞물린다. 사망자의 3분의 1이 암으로 세상을 등지는 시대, 암은 정복하고 싶은 질병이자 한편으로 그것은 생에 대한 욕망과 죽음의 공포를 경험케 하는 복잡한 감정의 지표다. 노상익의 전시는 건조하고 의학적인 이미지 사이를 헤집고 이미 세상을 떠난 이의 과거 한 때로 우리들의 마음을 잡아끈다.
송수정 사진비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