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TIC 홍경택 Green Green Grass
페리지갤러리 2014.12.5~1.31
삶의 허무를 주제로 한 17세기 네델란드의 ‘바니타스 정물화’에서 보이는 것처럼 성스럽고 속된 것은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존재한다. 홍경택은 그간 성배, 촛대, 연필, 볼펜, 서재, 해골, 화초, 올빼미, 대중문화 스타 등 현대인의 욕망의 대상으로서의 이미지들을 강렬한 색상과 더불어 다양한 패턴과 함께 정물의 형식으로 다뤄왔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큰 변화의 지점은 골프장과 에베레스트 산처럼 풍경을 배경으로 사용했다는 점인데, 이들 풍경은 순수한 자연처럼 보이지만 실은 지극히 짜여있고 계획된 인공적인 공간이다. 가지면 가질수록 커져만 가는 사람의 욕망은 하나로 몰릴 때 큰 문제를 만든다. 특히 한국에서 골프장은 값비싼 비용을 내야 하는 욕망의 공간이고, 심지어 골프장을 바라볼 수 있는 전망을 가진 곳은 같은 단지라 하더라도 그렇지 못한 곳과 시세에 큰 차이가 있다고 한다. 에베레스트 산 역시 신성한 자연이 아닌 올라가 봐야 하고 정복해야 할 욕망의 대상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풍경의 형식을 끌어들였지만 예전에 다루던 일회용 플라스틱 같은 오브제의 정물에서 느껴지는 독특한 질감과 찰나적인 화려함 뒤에 숨은 허무함을 일관되게 보여준다. 또한 신작 <반추>에서는 그의 대표작인 <연필> 시리즈처럼 골프채를 꽃다발처럼 표현하는데, 반복적이고 구심점에서 무수히 많은 선들로 확장하는 구도의 작품이다. 그는 골프채의 조합을 마치 우주 속 행성처럼 아름답게 보이도록 했지만 특이하게도 자세히 보면 골프채의 헤드 부분에 작업실에서의 작가 모습이 담겨 있어 보는 이에 따라서는 거부감이 느껴질 수 있도록 의도했다. 이는 시간성을 도입하려는 시도이자 몰입을 일부러 방해하는 소격효과처럼 변화된 그의 작업에 대한 스스로의 선언이자 성찰처럼 느껴진다. 신작 <연필그림-여섯 개의 하늘>은 여러 개의 하늘들을 중첩시키고 거기에 하늘을 가로지르며 다이빙하는 것 같은 남자의 이미지를 그려놓은 작품이다. 개인전에서 열린 작가와의 대화에서 그는 인간이 죽었을 때 다른 차원의 세계로 이동한다는 교황의 언급에 공감했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앞으로의 그의 창작 방향을 예상할 수 있게 하는 작품이었는데, 동일한 시간과 공간에 거주하지만 각각 다른 차원에서 살고 있거나 여러 차원의 동시적 공존에 대해 표현하고 있다. TV중계에서 보는 다이빙 선수들의 모습은 멀리서는 유려한 몸짓으로 포장돼 있지만 클로즈업된 모습들은 짧은 순간 높은 속도로 도약하고 균형을 잡기 위해 일그러진 표정을 하고 있다. 이처럼 그림 속의 다이빙하는 남자의 이미지는 독자적인 개체성을 가지고 공존하는 하늘을 뚫고 추락하는 다른 체계의 죽음과 유한성을 상징하며, 긴장감 있게 한 화면에 담은 것이다.
홍경택의 작품은 화려하지만 불편한 구석이 있다. 그것은 경계에 있는 그림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평단뿐만 아니라 시장에서도 환영 받는 이유는 눈에 보이는 오브제와 풍경 이면에 감춰진 인간의 욕망에 대해 전하는 메시지를 시간성의 도입, 초현실주의적 접근 등으로 창작의 방향과 사유를 확장하는 그의 균형감각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전동휘 예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