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ATOR’S VOICE 현실활용가
두산갤러리 1.13~2.27
이설희, 장혜정, 최희승 ‘2015 두산 큐레이터 워크숍’ 참여자
미술과 그 외 모든 것에 각자 다른 관심사와 취향을 가진 우리(이설희, 장혜정, 최희승)는 서로를 알아가는 방식으로 “왜”라는 질문을 많다. 어떻게 들으면 너무 원론적이거나 이상적이어서 낯부끄럽기도 한데, 우리는 정말 궁금했다. 왜 미술판에 있는지, 왜 기획을 하는지…. 여러 날 동안 이유를 찾기 위한 질문들을 던지면서 명쾌한 답을 찾지는 못했지만, 공통적 정서는 있었다. 바로 (비슷하거나 다른 이유로) ‘미술 생태계에 속한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현실이 쉽지 않음을 실감하는 시기를 거치는 중’이라는 것이다. 각자의 경험과 생각을 나누며 우리가 느끼는 미술계에는 열악한 제반 환경과 그 외의 것으로부터 파생되는 ‘현실’ 속에 정확히 무엇이라 규정할 수 없는 어려움이 부유하고 있었고, 아쉽게도 이러한 현실이 개선되고 있지 않다는 잠정적인 결론을 내렸다. 우리가 대면하는 이 어려움은 경제적 문제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며, 함께 호흡하는 태도의 부재로 인한 요소들이 삶의 결핍으로 녹아든 현상일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그렇게 “왜”라는 질문을 던진 이유는 아마도 이 불명확함에서 오는 불안한 마음 때문이었을 것 같다.
그래서 질문을 바꾸어 보았다. “어떻게”로. 스스로를 포함하여 이러한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미술계에서 호흡하는 사람들은 꾸준히 존재하는데, 이곳을 ‘떠나는 것도 용기가 필요하다’는 어느 작가의 말에 공감하며, 이 생태계에 속한 개개인의 활동을 지지해주는 원동력, 즉 ‘주어진 현실의 조건들 속에서 예술가로서 존재하는 그들만의 방식’이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결국 ‘존재하는’ 방식에 대한 의문은 ‘살아가는’ 생존의 문제와 연결될 수도 있겠지만, 자본과 직결된 경제적인 상황을 배제하고 현실의 상태와 요소들을 활용하는 작가 개인의 작업과 태도에 집중하고자 했다. 이는 그들의 작업에 집중하는 것이 작가를 위한 가장 큰 지지이며, 이러한 우리의 태도가 함께 호흡할 수 있는 하나의 원동력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의 방식에 대한 탐구로, 우리 또한 우리만의 현실활용법을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집중한 4명의 작가는 현실을 인식하고 관계 맺으며 그것을 활용하는 방식에서 독자적인 태도를 취한다. 재치 있는 언어로 주어진 조건들을 활용하는 박보나는 제도 혹은 구조에 가려진 예술 이면의 이야기를 끄집어내어 고착화한 삶의 현실에 금을 낸다. 삶과 예술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취사선택하는 현실 속에서 그는 배후에서 지켜보는 인물로 변용되기도 한다. 유목연은 ‘실생활 속의 경험’이 곧 ‘작업’이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작가로서 생존해나가는 방식을 결과물을 통해 솔직하게 제시한다. 그가 ‘미술계’에서 실질적으로 마주한 상황들이 보는 이로 하여금 애처로운 감정을 불러일으키지만, 정작 작가는 작품에서 자신을 타자화하고 그 상황을 제시할 뿐이다. 우리가 윤지영의 방식에 주목한 이유는 작가로서 가지는 에고(ego)를 통해 표현되는 결과물의 섬세한 언어 때문이었다. 그가 이야기하는 현실은 내·외부의 자극과 의미 작용, 저항 및 공존 등이 심리·물리적으로 균형을 이룰 때 작업으로 구현되는데, 이는 아주 개인적인 것 같지만 동료 예술가들로부터 공감하는 지점을 양산하는 점에서 상징적이다. 마지막으로 시선의 객관성 유지가 중요한 의미를 갖는 윤지원이 다루는 현실은 가장 광범위하면서도 동시대적이다. 그의 탐구는 시공간을 넘나들지만, 지금 발생하는 현상과 사건들 그리고 우리와의 인과관계에 집중하며, 그의 태도는 현실에 무뎌지지 않기 위한 경계이기도 하다.
위 박보나 <코타키나 블루 #1>(위 벽면) 10채널 영상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