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TIC 이강욱 역설적 공간: 신세계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1.7~3.6
이선영 미술비평
이강욱의 <paradoxical space; the new world전>은 ‘para-’라는 접두사에 암시되어 있듯이, 두 방향으로 나아가는 기이한 논리를 표현한다. 이 같은 역설과 달리, 단선적 논리는 한 방향으로 명확히 나아가는 가운데 다양한 것을 배제하고 억압하곤 한다. 담론-권력의 장에서 벌어지는 것은 임의적인 것을 필연적으로 만들기 위한, 상식적인 것을 보편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한 책략들이다. 부자연스러운 것을 자연화하는 것은 허위의식이나 이데올로기가 행하는 일이다. 그러나 예술은 의식적으로 그러나 대부분은 무의식적으로, 다양한 것을 하나로 몰고 가려는 지배적 체계에 저항한다. 저항은 반드시 하나의 깃발 아래에서 동일한 논리와 대오로 정렬되는 문제가 아니다. 지배적 논리를 복제할 뿐인 전형적인 저항의 논리는 이항대립처럼 기존 질서를 더욱 강화할 뿐이다. 그러나 예술의 역설적인 논리는 정-반-합이라는 화해 지향적 방식을 해체하면서, 더 은밀하고 위험한 방식으로 저항한다. 이강욱의 ‘paradoxical space’, 즉 양 방향으로 뻗어가는 공간은 소우주와 대우주의 교차를 말한다. 전시작품의 한 그룹을 이루는 ‘geometrical form’은 원자나 별, 또는 그것들의 궤도를 떠올리는 형태이다. 여러 크기의 원, 또는 타원형이 사방팔방으로 무한 증식하면서 앞으로 다가오거나 또는 멀어지는 형태들은 현기증을 자아낼 만큼 압도적이다. 그러나 그러한 현란하고 강렬한 느낌은 무겁고 둔중한 방식이 아니라, 비눗방울처럼 가볍고 투명한 요소들로 야기된다. 크기, 농담, 밀도가 서로 다른 (타)원들은 잠재적인 운동감을 가지면서 여러 방향에서 교차된다. 그것들이 예기치 못한 시공간에서 한 번씩 겹쳐질 때 마다 지상에서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천계의 음악들이 팅팅 들려올 것 같다. ‘geometrical form’ 시리즈에는 숫자로 이루어진 기하학적 우주에서 울려 퍼지는, 피타고라스학파가 상상했던 우주 음악 이미지가 있다.
또한 그것은 원자나 우주뿐 아니라, 신경계나 네트워크에서 발견되는 그물망의 형식으로 많은 접면을 생성한다. 추상적이면서도 원근감이 있는 화면들은 주어진 캔버스를 확장한다. 하나의 선으로 완결된 원과 타원형들은 단자들을 떠올린다. 아서 러브조이의 《존재의 대연쇄》에 의하면, 라이프니츠의 단자론은 자연이 어디에나 생명으로 꽉 차 있음을 말한다. 《단자론》에 의하면, 자연이 추구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양성의 극대화이며, 논리적 가능성의 한도에 이르기까지 종(種)과 아종(亞種)과 상이한 개체를 증식시키는 것이다. 독실한 라이프니츠는 무신론을 암시하는 텅 빈 공간을 부정했지만, 이강욱의 화면에는 원자라고 할 만한 기본 입자들이 움직일 수 있는 허공 또한 존재한다. 장 살렘은 《고대원자론》에서, 만일 모든 것이 꽉 차 있다면 운동은 불가능할 것이라는 원자론자들의 주장을 소개한 바 있다. 섬세하고 투명한 느낌의 구성요소들은 무엇인가로 가득 차 있으면서도 텅 비어 있는 공간을 동시에 제시한다. 닫힌 (타)원이 상징하는 충만함, 그리고 허공이 상징하는 변화가능성이라는, 상충될 수도 있는 두 요소가 역설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것이다. 또 하나의 시리즈인 ‘the gesture’의 엔트로피는 더 높다. 씨앗이나 입자들이 공간에 흩뿌려져 있는 형상들은 생겨난 것들이 소멸하는 이미지다. 새로운 세계의 생성에 필요한 것은 이전의 대상이나 의미들이 분해된 잔해들이다. 공간 전체에 흩뿌려진 점들과 그 흔적들은 산종(散種)의 양상을 띤다. 기원을 추적할 수 없는 분포, 또는 중심이 없는 구조는 여러 작품에서 색만 달리하면서 반복과 차이의 유희로 펼쳐진다. 번진 점과 얼룩들은 시간성을 암시한다. 시간적 차이가 흔적화한 화면은 질감을 강조한다. ‘the gesture’ 시리즈는 무엇을 재현하는 광학적 공간이 아니라 그 자체를 지시하는 촉각적 공간으로, 투명한 광학적 공간이 지시하는 대상 및 의미와 차이가 있다. 광학성과 촉각성의 공존 역시 그가 이 전시에서 추구하는 역설에 속한다.
위 이강욱 <무제-12050(Untitled-12050)>(왼쪽) 캔버스에 혼합재료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