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HIBITION TOPIC 프로젝트대전 2014: 더 브레인
예술은 인간의 마음작용 중 가장 복잡한 과정을 거친 산물이다. 대전시립미술관에서 주최하는 격년제 미술행사 <프로젝트대전 2014>(2014.11.22~2.8)의 주제는 ‘더 브레인’이다. 대전시립미술관, 카이스트 KI빌딩, 대전시립미술관 창작센터 등에서 열리는 이번 행사는 인간의 의식과 무의식, 감각과 인지, 물질과 파동 등 뇌에 관한 다양한 예술적 실천을 펼쳐 보인다.
뇌로 바라보는 자아와 세계
유현주 미학
‘뇌’를 통해 인간과 세계를 이해하려는 전시가 있다. 바로 대전시립미술관과 카이스트가 주관한 이 그것이다. 2012년 처음 ‘에네르기’란 주제로 과학예술의 포문을 연 데 이어, 이번 전시는 뇌과학 기반의 기술과 예술을 접목한 미디어아트라고 부를 만하다. 전시의 전체 구조는 ‘뇌’에 대한 큰 주제 아래, 미술관을 비롯해 네 개의 장소에서 세분화된 소주제들과 그 아래 하위 섹션들로 나뉜다. 미술관에서는 ‘인간의 뇌, 제2의 자연’을 주제로 뇌와 신경의 세계를 시각화하고, 카이스트에서는 ‘인공의 뇌, 로봇은 진화한다’는 제목으로 인공지능을 비롯한 인간-로봇의 철학을 이야기한다. 대전창작센터에서는 카이스트 및 대덕연구개발특구의 과학자들과 작가들이 융합한 <아티스트프로젝트(ArtiST: Art in Science and Technology)>를 선보이며, 원도심에 위치한 대전스카이로드에서는 ‘미디어스카이’라는 제목으로 거대한 영상패널을 통해 거리의 시민들에게 말을 건넨다.
미술관에서의 주제는 뇌과학의 의제들을 예술과 융합시키려는 기획 의도를 잘 보여준다. 먼저 뇌 존재 자체의 정체성을 묻는 작업들을 ‘뇌라는 물질’, ‘파동으로서의 뇌’라는 섹션에서 선보인다. 말하자면 뇌를 신경생리학적 메커니즘을 갖는 하나의 물질적 ‘자연’으로 보고자 하는 작업이다. 예를 들면, 뇌의 단백질 세포 구조를 시각화한 <단백질 초상>(마르타 데 메네제스), 난독증을 앓는 작가 자신의 뇌 촬영을 시도한 <나의 영혼>(캐서린 도슨), 인간 뇌의 해부 이미지를 QR코드로 전달하는 <스캔>(니나 셀러스), 뇌신경세포체인 뉴런의 성장과 활동을 마치 숲의 공간과 유사한 이미지로 비유한 <마술 숲>(앤드루 카니>에서 우리는 물질로 환원된 뇌를 만난다. 그러나 물질로 환원된 뇌만으로 인간의 자율적인 사유작용을 설명하기엔 미흡하다. 따라서 이어지는 전시는 ‘파동으로서의 뇌’를 통해 사유와 감정을 파동으로 풀어내는 작품들을 펼쳐보인다. 에마뉘엘 페랑의 작품 <인사이드 브레인, 아웃사이드 브레인>은 뇌를 뉴런과 시냅스로 구성된 기계로 환원하고자 하는 오랜 인류역사를 보여준다면, 리사 박의 <좋은 생각>과 샘슨 영의 <음악가의 해부학>은 각각 감정의 작용을 뇌파로 시각화한다거나, 연주자의 뇌파를 데이터로 삼고 그 데이터를 다시 전자음으로 바꾸는 퍼포먼스를 통해 감정과 사유과정의 비밀을 뇌의 물리적 과정으로 환원시킨다.
모든 사유작용이 과연 뇌의 의식작용으로 증명될 수 있을까? 무의식은 어떨까? ‘의식과 무의식’ 섹션에서 오윤석의 작품 <감춰진 기억-꽃> 등은 바로 그러한 뇌과학의 담론 가운데 하나인, 즉 무의식을 의식으로 전환하려는 시도와 일치한다. 일정기간 해온 운동을 오래 쉬었다가 재개했을 때, 의외로 몸은 쉽게 이전의 방법을 기억하는데, 이는 무의식에서 온 것이 아니라 의식작용이라는 이론이 있다. 이러한 ‘머슬메모리’ 이론을 적용해, 작가가 감춰진 기억과 공포의 결과물을 극복하고자 그린 그림들이 결국은 무의식이 아닌 ‘의식작용’이라는 해석을 내놓는다. ‘기억의 층위’와 ‘뇌화한 마음’ 섹션에서 전개된 다른 작품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개인의 비연속적이고 비선형적 기억이란 현실과 연결된 개인의 내러티브(뮌, <오디토리움>)이며, 사회의 특정 조건에 따라 의미망을 만드는 의식작용(전승일, <트라우마는 인간의 뇌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김기라 변영돈, <이념의 무게_한낮의 어둠>)으로 설명된다. 흥미로운 것은 미술관 전시의 모든 방향이 인간의 뇌를 자연의 뇌로 설명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진다는 점이다.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가 모호할 뿐 아니라 그러한 것의 증거를 찾는, 어두운 ‘밤의 과학’을 언급하는 과학자도 여전히 많은데, 이러한 뇌과학적 인식이 얼마만큼 관객의 공감을 끌어낼 수 있느냐는 미지수이다. 그러나 예술이 앞장서서 이러한 뇌과학의 과제들을 풀어내고 해석한다는 점은 놀라운 시도가 아닐 수 없다.
마음의 실체, 명쾌하게 이해할 수 있는가
카이스트에서의 전시 <인공의 뇌, 로봇은 진화한다>는 실제적인 과학자들의 과제와 연계되면서도 창조적인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시각예술작업에 다가서고 있다. ‘로봇’을 ‘움직이다 느끼다 생각하다 표현하다’의 동사에서 접근하여 인간이 만든 로봇, 마치 ‘인간’ 자신의 재현과 같은 ‘휴머노이드’를 꿈꾸는 작업 등을 소개한다. 컴퓨터가 인식한 얼굴 구름(신승백 김용훈, <클라우드 페이스>)과 단어를 창조하는 로봇(전병삼, <전병삼룡이>)은 신기함을 넘어, 실제 인공지능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묻게 한다. 한편 강현욱의 작품 <아픈 강아지>는 바이러스가 주입된 로봇인형을 통해 통제 시스템하에 놓인 인간 자아와 사회를 통찰한다. 이는 2013년 4월 19일 인공위성을 개인이 혼자 쏘아 올리는 작업을 했던 송호준의 <인공위성 메들리>에서 엿보이는, 기존의 과학자들에게만 허용된 과학실험 등 국가 권력과 분리되지 못하는 현재의 시스템에 대한 비판적 언급과 맞닿는 부분이 있다. 창작센터의 <아티스트프로젝트>는 과학자와의 융합적인 작업이 아니었다면 생각하기 어려운 성과들을 내놓았다. 원동민의 <하이데거>는 과학자들의 협력 끝에 그들과 했던 인터뷰의 단편들을 모스부호로 치환한 후 그것을 음악으로 구현한 매력적인 사운드아트이다. 한편 <미디어스카이>에서 작가들은 신체 어딘가에 있을 ‘영혼’의 영역을 탐색하기도 하고(박형준, <떠다니는 신체>), 적, 청, 록을 연속으로 바라볼 때, 눈과 뇌의 협업으로 인한 잔상효과로 결국 흰색을 바라보는 인식의 불완전성(석성석, <뇌.색>)을 들추기도 한다.
대전발 과학예술프로젝트의 두 번째 활시위는 첫 번째보다 한결 힘 있게 당겨졌다. ‘눈’이 아니라 ‘뇌’로, 감각작용 및 모든 인식을 ‘뇌’의 작용으로 보는 시대가 온 것일까? 자아와 세계를 ‘뇌’로 해명하는 것은 곧 우리 삶을 물리적인 현상과 체계로 명쾌하게 이해하자는 것인데, 거기에서 예술은 과학 너머의 것을 노래하기도 한다. 마치 인간이 끝내 포기하고 싶어하지 않는 형이상학적 요구가 있는 것처럼, 매우 아이러니하게도 말이다. ●
사진 박홍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