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hibition Topic] Donald Judd
20세기 미술의 거장 도날드 저드(Donald Judd)의 개인전이 10월 30일부터 11월 30일까지 국제갤러리에서 열렸다. 도날드 저드는 1960년대 초부터 1994년 타계할 때까지 전통적인 미술사의 흐름을 바꾸는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구축했다. 그는 재료 및 기술, 형태, 반복과 색채 등을 엄격하게 탐구해 회화도 조각도 아닌 오브제를 제작하고 ‘특정한 사물’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냈다. 이번 전시에서는 <무제>(1991)를 비롯해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작가의 입체작품 총 13점을 만날 수 있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특수하다
정은영 한국교원대 교수
도날드 저드(Donald Judd)의 국내 개인전이 열렸다. 1991년 이후 20여 년 만이다. 전시의 첫인상은 ‘저드의 미니멀아트가 바야흐로 ‘클래식 모던’이 되었구나’로 요약된다. 이는 단지 도날드 저드라는 이름이 역사의 한 부분이 되었다는 점에서뿐만 아니라 (올해는 그가 작고한 지 정확히 20년이 되는 해다), 그의 작업이 지닌 ‘클래식한’ 원리가 현재의 동시대미술을 배경으로 하여 비로소 확실하게 부각된다는 점에서 그렇다. 기본 단위인 모듈을 정확하게 반복하고 리듬감 있게 변주하는 단순한 구성, 재료의 본래적인 재질과 속성에 어떠한 자의적 표현이나 사적인 감정도 더하지 않은 절제된 태도에서 우리는 고전적인 모더니즘의 진면목을 확인한다.
그러나 ‘클래식 모던’을 단순히 세련되고 편안한 조형미 정도로 받아들인다면 저드뿐 아니라 미니멀리즘의 핵심을 간과하는 것이다. 1960년대 초 뉴욕에서 등장한 미니멀아트는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여전히 ‘예술작품이란 무엇인가’라는 고래(古來)의 질문과 갈수록 첨예해지는 현대미술의 난제(難題)를 강력하게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또한 ‘예술의 종말’이나 ‘역사의 종언’과 같은 이른바 ‘끝내기’ 담론이 이미 수십 년 전에 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니 어쩌면 바로 그로 인하여, ‘지금 여기 우리 앞에 있는 이것은 우리에게 무슨 말을 건네고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이 더욱 중요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클래식 모던’의 표면을 지탱하고 있는 저드의 이면(裏面), 미니멀리즘의 중핵(中核)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미니멀리즘이 겪은 역사적인 부침(浮沈)은 1960년대 이후 현대미술의 이론과 현장에서 드러난 아이러니한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처음 등장했을 당시 미니멀아트는 마이클 프리드와 같은 모더니즘 이론가들로부터 그 단순한 사물성이 모더니즘의 순수성을 파괴한다는 비판을 받았고, 1980년대 포스트모더니즘을 앞세운 신표현주의 회화가 유행했을 때에는 그 단순한 형식성이 억압적인 모더니즘의 온상이라는 공격을 받았다. 미니멀 작업에서 출발한 젊은 작가들이 개념미술이나 프로세스아트 혹은 대지미술로 외연을 확장하여 그 내적인 유연성을 실험할 때, 페미니즘 미술가와 이론가들에게 금속 박스와 강철판은 자본주의와 가부장제가 결합된 차가운 권력의 상징으로 고착되어 파괴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이러한 모순적인 반응은 미니멀리즘 자체의 복합적인 위상에 기인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미니멀리즘은 형식주의 모더니즘의 정점에서 그 형식을 사용하여 그것에 도전하고 그것을 내파(內破)한 역사적인 접점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회고하건대 모더니즘의 형식 속에 탈(脫)모더니즘의 맹아를 품고 있던 미니멀아트는 모더니즘과 탈모더니즘을 잇는 통로에서 상황에 따라 어느 쪽으로도 열릴 수 있는 문과 흡사한 것이었다.
따라서 저드의 사물들, 예컨대 매끈하게 처리된 알루미늄 판이나 맑은 순색의 플랙시글라스, 아연 도금한 강철 박스나 대형 합판으로 만들어진 입방체에서 전통적인 조각도, 그것이 해체된 설치도 아닌, ‘명료하지만 알 수 없는’ 이율배반적인 구조물을 발견하게 되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명료하지만 알 수 없는’ 구조물들은 상이한 방향으로 열릴 수 있는 하나의 문이다. 단순한 구조와 절제된 구성에 방점을 찍는 이는 ‘적을수록 많다’는 모더니즘의 격률을 되새길 것이고, 회화도 조각도 아닌 입방체가 벽에 걸려 있는 상황에 방점을 찍는 이는 그 사물들의 ‘기이한 위상(位相)’에 주목할 것이다. 30여 년에 걸친 저드 작업의 핵심적인 작품들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이번 전시에서 당신은 어느 쪽으로 문을 열 것인가.
모든 것은 존재하는 것들의 편이다.
저드는 이 ‘알 수 없는’ 구조물들을 ‘특수한 사물들(specific objects)’이라 불렀다. 미니멀리즘의 필독서라 여겨지는 저드의 비평문 <특수한 사물들>(1965)은 바로 이 “회화도 조각도 아닌 것(neither painting nor sculpture)”을 상찬하는 문장으로 시작된다.1 한때 사람들은 이 ‘알 수 없는’ 구조물들을 지칭하는 데에 ‘알 수 있는’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초기 저드를 대표하는 밝은 선홍색(cadmium red light)의 목제 구조물을 ‘신발 걸이(shoe rack)’라고 부르거나 내부가 드러난 코르텐 강철 박스가 층층이 쌓인 연속 구조물을 ‘스택(stack)’이라 칭하는 등, ‘알 수 없는’ 것들에 익숙한 명칭을 붙여 대상을 규정하는 일종의 ‘개념적인 길들이기’를 시도한 것이다.
‘특수한 사물’은 ‘예술작품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저드의 대답이다. 어찌 보면 그는 ‘예술작품’이라는 용어를 ‘특수한 사물’이라는 구문으로 바꾸어 놓았다고 할 수 있는데, 말하자면 예술이라는 ‘추상적이고 모호한’ 관념을 ‘구체적이고 분명한’ 형용사로 대체하고, ‘작품’이라는 위계적인 존재를 ‘사물’이라는 비위계적인 차원으로 환치한 것이다.
특수한 것은 특정하고(particular) 분명하며(distinct) 개별적(singular)이다. 특수와 개별, 이것은 모든 존재하는 것의 일차적인 존재방식이며, 따라서 ‘특수한 사물들’은 사실상 모든 존재자를 일컫는 말과 다름없다. 우리는 이 특수와 개별을 주어진 범주에 따라 분류하고 일정한 개념에 적용하여 보편과 일반에 귀속시킨다. 보편과 일반이 관념의 영역이라면 특수와 개별은 존재의 영역이다. 하지만 보편 관념은 추상될 뿐 오직 개별 존재만이 살아지고(lived) 체험된다. 저드가 개별을 보편 속에 포섭하는 일체의 개념을 거부하는 이유다.2
“존재하는 것들[만]이 존재하며, 모든 것은 존재하는 것들의 편이다. 여기에 그것들이 있다는 것, 그것은 참으로 수수께끼 같은 일이다.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하여 우리는 아무것도 이야기할 수 없다… 모든 것은 동등하고 단지 존재할 뿐, 가치나 관심은 우연한 것에 불과하다.” 3
‘예술작품이란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다루는 저드의 화법은 단도직입적인 ‘직설법’이다. 어떠한 은유나 상징에도 의존하지 않는 즉물적인 사태(事態) 속에서 저드의 ‘특수한 사물들’이 무엇인가 말을 건네고 있다면 그것은 바로 ‘존재하는 모든 것은 특수하다’는 것이리라. 저드의 말대로, 여기에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그 어떤 추론이나 연역도 필요치 않은, 그 자체로 놀라운 일이다.●
주
1 Donald Judd, , 《Arts Yearbook 8》, 1965, pp.74~84. 수많은 작품을 거론한 이 글에서 저드는 정작 자신의 작업은 언급하지 않았고 비평문 끝에 “내가 아니라 편집자가 내 작품의 사진을 삽입하였다”라고 첨언하며 비평가 저드와 미술가 저드 사이에 일정한 거리를 두었지만, 그가 자신의 작품을 회화도 조각도 아닌 ‘특수한 사물’로 보았음은 확실하다.
2 저드가 미니멀아트라는 용어를 거부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그 이유는 용어의 부적절함에 있었던 것이 아니다. 한때 유행했던 것처럼 미니멀리즘 대신 ‘맥시멀리즘(Maximalism)’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고 해서 그의 작업이 더 효과적으로 설명되는 것은 아니다. 그가 거부한 것은 개별 작가들의 차이를 무효화하는 단체 명칭, 즉 특수한 것을 보편적인 것으로 대체해버리는 개념적인 용어였다는 뜻이다.
3 Donald Judd, <Black, White, and Gray>, 《Arts Magazine》, Vol.38, No.6 , March 1964, pp.3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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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저드의 철학이 그대로 녹아있다”
도날드 저드 재단 공동대표 플래빈 저드(Flavin Judd)
도날드 저드의 개인전을 맞아 그의 아들이자 도날드 저드 재단 공동대표인 플래빈 저드가 내한했다. 한국 교원대 정은영 교수는 지난 10월 30일 국제갤러리에서 플래빈 저드와 인터뷰를 진행하며 저드의 삶과 작업세계에 관해 폭넓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 20여 년 만에 한국에서 도날드 저드의 개인전이 개최되었습니다. 저드 재단(Donald Judd Foundation) 공동대표로서 소감이 어떠신지요.
플래빈 저드(이하 ‘FJ’) 1991년 한국에서 처음 저드 개인전을 개최한 이후 두 번째 개인전을 열기까지 너무 오래 걸리지 않았나 생각합니다만, 이번 기회를 통해 아버지의 주요 작품들을 선보이게 된 것을 감사드립니다.
정 도날드 저드는 1946~1947년에 주한미군으로 한국에서 복무했습니다. 부친아버지께서 살아 계셨다면 이번 개인전을 굉장히 자랑스럽게 여기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FJ 네,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1991년 전시를 위해 방한하셨을 때 매우 기뻐하시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아버지가 주한미군으로 복무할 당시 한국은 그가 겪은 서양 문화와 많이 달랐지만 40여 년 후 다시 방문한 한국은 크게 발전했기 때문이죠. 1980년대에 조부모님 댁을 방문했을 때 할머니께서 박스 하나를 보여주셨는데, 그 안에 엄청난 액수의 한국 돈이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말씀하시길, 미군부대에서 용광로 만드는 작업을 하며 받은 추가 수고비였는데, 당시 작업을 도와주셨던 한국 노동자 두 분에게 전달하고 싶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그 돈을 모두 미국에 들고 오셨다는 겁니다. 그 돈을 그들에게 주지 못한 것에 대해 안타까워 하셨습니다.
정 이번 전시를 즐겁게 참관했습니다. 특히 작품이 설치된 방식이 굉장히 흥미로웠습니다. 이 전시에서 특별히 중점을 둔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FJ 전시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공간 내에서 작품이 조화를 이루는가’하는 점입니다. 20여 년 만에 한국에서 개최되는 개인전이기 때문에 (일반) 전시보다도 관람객의 동선을 많이 고려했습니다. K3 전시관의 경우 공간의 특징에 따라 작품과 작품 사이를 비교적 여유있게 배치하였습니다. 가끔 연작 시리즈를 병렬 배치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러면 작품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그래서 어떤 작품들이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 상호관계를 고려해 전시를 구성했습니다. 저는 특히 K3 전시관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좋은 전시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에서는 전반적으로 작품들이 서로 마주보는 식으로 배치되어, 함께 공간을 보여주기도 하고 각각의 작품이 작품 안의 공간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이런 식으로 공간과 작품이 잘 어우러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 어떤 이들은 저드를 컬러리스트라고 부르기도 하는데요. 특히 밝은 선홍색(cadmium red light)은 저드의 초기 작품을 대표하는 색채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초기 작품을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어서 매우 좋았습니다.
FJ 그는 색채에 관심이 매우 많았습니다. 사람들은 저드가 “차가운 느낌의 작품을 많이 만든다”라고 하는데 핫핑크나 선홍색은 결코 차가운 색채가 아닙니다. 이런 평판은 편견이 만든 오해라고 생각합니다. 저드는 이 빨간색을 굉장히 좋아했는데 색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의심의 여지없이 분명한 색깔이죠. 특히 초기에는 이런 색을 자주 사용했습니다.
정 저드의 작품은 역사적인 맥락보다는 공간적인 상황이 매우 중요한데요. 하지만 이제는 그 자체로 매우 역사적인 미술이 되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FJ 저드는 사실 역사적인 배경을 중시하지 않았습니다. 역사적인 맥락, 곧 미술사적인 측면을 작품에 연관시키는 상황을 원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드가 작품 활동을 시작했을 당시에는 작품에 특별히 역사적인 의미를 부여하거나 그렇게 보이려는 의도가 전혀 없었습니다. 30년이 지나서야 이 작품들이 역사적인 측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에 저드는 당시 사람들이 깊이 탐구하지 않은 매우 새로운 요소를 탐구했고, 저드 이후에 많은 작가가 비슷한 요소를 탐구하면서 이제는 저드가 개척한 영역이 문화적으로 익숙해지고 나아가 하나의 장르로 인식되는 것 같습니다.
정 저는 텍사스 주 마파(Marfa)에 있는 치나티 재단(Chinati Foundation) 미술관과 저드가 지은 집을 방문했을 때, 저드의 작품에서 시간을 초월하면서도 옛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는 무시간적(timeless)과 역사성이 공존하는 매우 특이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FJ 네, 현대적인 느낌도 들고 옛날 느낌도 들었을 겁니다. 어제 만든 작품 같기도 하고 또 수십 년 전에 만든 작품 같기도 합니다. 작품 자체에 변화가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아버지가 해놓은 작품 전체 배치를 그대로 보존했습니다. 단 하나의 변화도 더하지 않았어요.
정 저드의 작품은 역사적인 참조점(reference)이 없기 때문에 작품 자체가 주는 시간을 관객이 그대로 느낀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FJ 시간적 개념이 필요 없이 그 작품 자체가 강렬하게 다가온다면 보는 사람은 시간적인 프레임 자체를 잊어버리는 것 같습니다. 아테네에 있는 파르테논 신전은 부분적으로 무너져 있습니다. 우리는 신전의 허물어진 부분을 보면서 시간의 흐름을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저드의 작품에는 그런 면이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시간적 차이나 흐름도 느끼지 않고 작품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어느 작가의 작품이든지 그 작품이 강렬하다면 시간적인 이해나 인상을 뛰어넘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 저드의 작품을 경험주의나 실용주의와 연관지어 언급하곤 하는데요. 실용주의나 경험주의 철학이 저드의 작품에 어떻게 묻어나는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FJ 적절한 언급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 철학이 플라톤의 철학을 전복했기 때문입니다. 플라톤은 모든 사물에 그 사물의 존재를 결정하는 이데아 혹은 언어가 있다고 보았는데 그전까지는 사물을 존재 자체로 인식했습니다. 저드는 플라톤 이후 2000년 이상 지속된 관념적인 철학을 타파하고 싶어 했고 그래서 그것을 거부하였습니다. 아버지는 검증할 수 모든 것의 정의 또한 하나에 국한되지 않고 확장될 수밖에 없다고 하셨습니다. 만약 모든 것을 범주화할 수 있다면 말이죠. 그는 과학적으로 실재하는 것, 실제로 눈에 보이는 것을 기준으로 형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작업을 했습니다. 실재하는 것을 보이는 그대로, 역사적인 궤적에 의존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리얼리티를 수용하는 작품세계를 추구했습니다.
정 저드가 1920년대의 미국철학에 관심이 있었나요?
FJ 네, 특히 (기호학자) 퍼스(Charles S. Peirce)를 좋아했습니다. 저도 퍼스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 매우 기뻤습니다.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의 수학적인 논리철학으로는 많은 것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수학으로는 문화를 설명할 수 없죠. 문화는 수학의 논리적 범주 그 이상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철학은 언어와 보통사람들이 감당할 수 있는 그 이상의 것을 들여다보는 학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퍼스의 기호학이 매우 흥미로운 것이죠. 또한 그래서 저드의 작품이 계속해서 기본적인 물리학과 과학적인 영역으로 돌아갔다고 생각합니다. 저드는 (수학이 아니라) 오히려 과학이 흥미로운 발견을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드는 세계가 과학적으로 명확하게 표현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철학을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작품의 중심을 보면 물리학적인 측면이 다분합니다.
정 저드의 작품은 비(非)위계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지요.
FJ 아버지는 미국 중서부 농장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중서부에는 독특한 문화가 형성돼 있는데요. 굉장히 실용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하기 싫은 것은 절대 하지 않는 그런 생활방식이랄까요, 아버지는 그런 면에서 중서부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예컨대 미주리 농장에서 별을 본다고 하면 그 별을 보면서 얼마나 고상한 생각을 많이 하겠습니까? ‘신이 별을 만들었구나’, ‘이 세계가 굉장히 흥미롭구나’하는 식으로 생각하겠죠. 아버지는 이런 환경에서 성장했습니다. 아버지는 흥미로운 삶을 살고자 했습니다.
정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저드의 말이 있는데요. ‘존재하는 것들이 존재한다’ 입니다. 이러한 저드의 철학이 이번 전시 작품에 그대로 녹아있는 것 같습니다.
FJ 네, 그게 바로 아버지께서 좋아하고 탐구하셨던 것입니다.
정 제가 특히 좋아하는 것은 저드의 작품이 언어에 저항한다는 점입니다.
FJ 네, 언어에 대항해야만 합니다. 서너 문장으로 축약되는 것은 예술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정 이번 국제갤러리 개인전은 한국 관객들이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도날드 저드의 주요 작품을 전체적으로 관람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전시입니다.
FJ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특히 이 전시는 그의 작품들이 공간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그의 작품이 전체적으로 어떤 흐름을 지니고 있는지를 볼 수 있도록 시대별로 다양한 형식의 작품으로 구성했습니다. 작품 간의 연관성이나 작업 전체의 의미를 더욱 깊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