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HIBITION TOPIC Magnum Contact Sheets
한미사진미술관에서 1월 16일부터 4월 16일까지 세계적인 보도사진가 단체인 매그넘 포토스의 속살을 파해치는 전시, 〈매그넘 컨택트 시트(Magnum Contact Sheets)〉가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2011년 전 세계 동시 출간된 동명의 사진집이 계기가 되었으며 전시로 컨택트 시트를 공개하는 것은 처음이다. 컨택트 시트는 최종 결정된 사진 이전의 과정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로 특히 주목된다. 컨택트 시트의 의미는 무엇인지, 더 나아가 매그넘 포토스 사진가들이 들여다 본 시대의 거울에는 어떤 이야기가 숨겨져 있는지 그 속살을 들여다보자.
훔쳐보는 즐거움
정주하 백제예술대 교수
2016년 새해 벽두에 한미사진미술관에서 매그넘 작가들의 밀착인화전시가 개최됐다. 전시 소식을 듣고 바로 든 생각은 “매우 ‘의아한/희귀한’전시가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사실 ‘매그넘’ 하면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사진집단이다. 그 멤버 중 몇몇은 사진역사에 매우 뚜렷한 족적을 남겼을 뿐만 아니라, 전 세계 독자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기도 하다. 이미 유명한 사진가들의 ‘사진적 속살’을 드러내는 전시이니, 한편으로는 희귀한 일일 것이요, 다른 한편으로는 의아한 전시라 생각했다. 동시에 고맙기도 하다.
2016년은 사진이 탄생한 지 명실공히 190년이 되는 해이다. 1839년 8월 19일 다게르가 프랑스 국가로부터 자신의 기술을 공인받기 13년 전 그의 동업자였던 발명가 조셉 니세포르 니엡스(Joseph Nicephore Niepce, 1765~1833)는 이미 인류 최초의 사진술(헬리오그래프(L’heliographs), 니엡스가 ‘태양이 써놓은 문자’라는 뜻으로 붙인 이름)을 어느 정도 성공시킨 바 있다. 안타깝게도 이 사진술은 촬영된 상(Image)이 완벽하게 정착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직도 그 원본이 존재하는 것을 보면 그의 사진술이 인류 최초의 것임이 분명하다. 언뜻 이 두 개의 사건은 전혀 관계 없을 듯하지만, 이번 한미사진미술관 전시의 근간이 ‘밀착’이기에 내게는 매우 흥미롭게 다가왔다. 니엡스가 처음으로 촬영하며 느꼈을 터이지만, 사진을 만드는 일은 대상에 밀착하는 일이다. 더욱이, 현상된 네거티브 필름을 인화지 위에 포개놓고 확대기로 빛을 주어 대상의 본모습을 재현하는 일 역시 밀착해서 만드는 것이니 말이다.
사진은 어쩔 수 없이, 아주 특별한 경우를 빼고는, 그 대상 앞에 서는 것이다. 대상이 지닌 사회적 기호성이나 조형성은 그 앞에 선 작가의 카메라가 구획하는 대로 형성된다. 어떤 이들은 그래서 회화가 비어있는 타블로에 ‘더하는 작업’이라면, 사진은 세상으로부터 자신의 생각을 ‘빼내는 작업’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면 이 판단은 맞다. 이미 구성된 세계 속에서 자신이 쥐고 있는 카메라의 파인더에 들어오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축소 복제해내는 사진술의 신묘함은 그 이론을 뒷받침할 것이다. 이러한 사진 구성의 기초적인 문제를 잘 아는 사진가는 그래서 자신이 구성할 화면의 안과 밖을 깊이 이해하고 있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한 컷의 사진 안에서 작가에 의해 재구성될 세계에는 그 작가의 의식세계가 그대로 반영된다. 이러한 우리의 사진에 대한 근원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컨택트 시트(Contact Sheets)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밀착인화의 폭로
사진에 밀착인화(contact print)라는 개념은 매우 전-디지털리아(pre-digitalia)적이다. 이는 네거티브 필름(negative film)을 사용하여 촬영하는 방식에서 시작했다. 사진가들이 그동안 밀착인화를 하게 된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밀착인화를 해야 바르게 볼 수 있어서인데, 19세기 중반부터 사용되어 온 유리건판 혹은 네거티브 필름 방식의 이미지는 대상이 가진 밝은 면은 어둡게 기록하고, 어두운 면은 밝게 기록했다. 따라서 보통의 시선으로는 그 네거티브필름을 보고 찍힌 사물이 어떠한 것인지를 확인하기가 매우 까다롭다. 따라서 이 네거티브한 이미지를 다시 포지티브한 이미지로, 다시 말해 본래 사물이 가지고 있는 모습의 밝기로 전환하는 장치가 바로 인화(印畵, print)다. 우리가 보통 사용해 온 필름이 네거티브 재현 방식이기에 이를 다시금 네거티브 재현 방식을 가진 인화지에 옮겨 놓고 빛을 주면 그 이미지가 포지티브(positive)로 변환되는 까닭이다.
두 번째는, 이번 전시에서 보여주는 것과 같이 한 필름에 여러 장이 촬영되는 경우 그중 잘된 것을 고르는 일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매그넘 출신 사진가들이 주로 사용한 카메라는 라이카이다. 이는 독일인 기계공학자 오스카 바르낙(Oskar Barnac, 1879~1936)에 의해 설계되어 1925년부터 시판되었다. 라이카 (라이카라는 이름에 이미 카메라라는 뜻이 들어있다. 라이카(Leica)는 ‘Ernst Leitz’와 ‘Camera’의 합성어다)는 당시에 사용되던 세로가 70mm인 영화용 필름을 반으로 잘라서 35mm 크기의 필름을 만들고 그 안에 24mm×36mm 크기의 촬영사이즈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이 필름을 돌돌 말아 쇠로 된 통에 넣어 36번을 찍을 수 있도록 했다. 이것이 최근까지 우리가 사용하던 소형(35mm) 카메라 필름이다. 이러한 형식의 필름이기에 이제 사진가들은 마치 전장(戰場)에서 기관총을 다루듯이, 카메라에 필름을 장전하고 동일한 대상을 향해 여러 번 셔터를 누를 수 있게 허락받은 것이다. 이것을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사진은 단지 공간을 구획하며 시간의 단면을 고착하던 틀에서, 흐르는 시간의 차이를 함께 기록하는 가능성을 얻게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지금이야 1초에 수 컷 혹은 수십 컷을 찍는 디지털카메라가 있지만 말이다. 심지어 1초에 일 조 번을 촬영하는 카메라가 최근에 발명되기도 했다. 이렇게 촬영된 필름에서 자신이 원하는 한 컷의 장면을 얻는 일은 그간 사진가가 사물을 보며 추측했던 의미와는 사뭇 다른 일이 될 수도 있다. 소위 셀렉트(select)라는 의미로 작가의 밀착인화에서 잡지 혹은 신문에 게재할 한 컷을 선택하는 과정은 때로는 커다란 갈등을 가져오기도 한다. 사진가의 의도와 달리 전혀 다른 장면의 사진을 선택하는 편집자를 만나는 경우 신경전은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사실 프랑스 사진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Henri Cartier-Bresson, 1908~2004)이 한 말로 유명해진 “결정적 순간(Images a la sauvette)”이라는 표현이 한편으로는 사진 작업에 매우 소중한 방식이면서, 동시에 이루어지기 힘든 형식인 이유도 이 때문이다. 즉, 여러 컷의 사진과 매우 많은 수의 필름을 사용한 사진가가 그것을 재확인하여 골라내는 작업을 할 때 촬영 당시의 역할보다 편집하는 능력에 기대는 경우가 많다. 매그넘에서 카르티에 브레송의 역할도 그러했다. 르네 뷔리(Rene Burri, 1933~2014)의 회상에 의해 알려진 것처럼 매그넘 사무실에 있던 그의 책상 위에는 늘 다른 사진가들이 촬영한 밀착인화 더미가 놓여있었다. 그가 다른 사진가들의 밀착인화를 마음껏 살펴보는 특권을 누렸으며, 동시에 그는 다른 사진가의 “결정적 순간”을 ‘결정’하는 역할도 한 것이다. 바로 밀착을 통해서 말이다.
또한, 밀착인화는 폭로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적어도 한 롤의 필름에 찍힌 것을 모두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찍힌 시간의 흐름을 감지할 수 있으며, 작가가 한 대상에 어떻게 접근해 들어갔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 얼마나 집요한지 알 수 있으며, 어떠한 성격의 사진가인지도 대략 알아챌 수 있다. 나아가 사진가가 무슨 필름을 썼는지, 그 필름의 현상을 제대로 했는지까지 알 수 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이번 전시가 필자에게는 매우 희귀하며 의아하게 느껴진 것이다. ‘다 보여주겠다’고 하니 그렇다. 대체로 유명 작가의 경우 자신의 촬영방식이 노출되는 것을 꺼려한다. 사진가 강운구의 말을 빌리면, 그것은 “기업비밀”이다. 기업비밀은 한번 노출되면 따라 하기가 너무도 쉽기에 가능한 한 자신만의 것으로 숨기고 싶어 한다. 나아가 어떤 작가들은 아예 촬영한 필름을 현상하여 네거티브 상태에서 자신이 원하는 컷만 남기고 나머지는 폐기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 선택된 몇몇 필름을 모아 밀착인화를 만들어 마치 자신의 촬영이 매우 철저한 통제 속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포장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모든 비밀이 들어있는 곳이 바로 컨택트 시트이기에 전시를 살펴보는 내내 즐거웠다. ‘훔쳐보는 즐거움’이야 따로 설명이 필요 없을 터. 벌써 수십 년이 지난 사건 혹은 사물들이기는 하지만 그 앞에서 흥분에 떨려 집념을 불살랐을 사진가들의 내밀한 면을 엿보는 일이 어찌 야릇한 즐거움이 아닐까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