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HIBITION TOPIC Reinstatement of Realism
예술에서 리얼리즘은 단순히 현실을 재현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 사람들의 삶의 진정한 면모를 담아내기 위해 현실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한다. 198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한국적 상황을 드러낸 작가 권순철, 고영훈, 신학철, 황재형, 민정기, 이종구, 임옥상, 오치균이 참여한 전시가 열려 눈길을 끌고 있다. 가나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린 <한국 현대미술의 눈과 정신 Ⅱ- 리얼리즘의 복권전>(1.28~2.28)이 그것이다. 2016년 지금 우리에게 이 전시가 가지는 의미는 무엇인지 주목해보자.
리얼리즘의 복권? 시장의 호출과 시대 요구의 틈새
김미정 미술사
가나아트가 기획한 <리얼리즘의 복권전>이 2016년 벽두에 미술계의 관심을 끌고 있었다. “한국 현대미술의 눈과 정신” 이라는 부제를 단 이 대규모 전람회는 철저하게 작가 중심으로 기획된 단체전으로 1980년대 한국 리얼리즘을 복권시키기 위해 권순철, 고영훈, 신학철, 황재형, 민정기, 이종구, 임옥상, 오치균, 8명의 미술가를 초대해 대형 회화와 부조, 조각 등 100여 작품을 선보였다.
가나인사아트센터 1층부터 5층까지 거의 전관에 펼쳐진 100호 이상의 대형 캔버스는 저마다 비상한 작가정신과 능숙한 완결성으로, 이전의 어떤 리얼리즘 미술전시보다 회화적 광채를 내고 있었다. 신학철의 <한국근대사> 연작은 파편화된 일상을 가볍게 사는 이들에게 거대 서사의 욕구를 충족시키고, 광부화가 황재형이 삶의 거처로 삼았던 광산촌 풍경은 근대화의 이면으로 추방된 것이 뿜어내는 처연한 아름다움의 세계를 보여준다. 임옥상의 초현실적 풍경화는 1980년대 청년작가의 예민했던 시대감각을 보여주는가 하면, 이종구가 곡물 포대에 그린 기념비적인 농부의 얼굴은 새삼 묵직한 삶의 무게로 육박해 다가온다. 시대와 세대를 초월하는 동시대적인 울림이었다. 또한 권순철이 거친 질감으로 해체해대는 인체와 개발시대에 유린당한 땅을 인문 지리적으로 복원하려는 민정기의 고지도 풍경화는 1980년대 현실주의 미술 운동의 지평이 넓고 깊었음을 보여준다. 이제 육순을 넘겨 완연한 거장의 풍모를 보이는 화가들이 농익은 물감과 붓, 종이, 목탄으로 노련하게 구현한 대작들의 뛰어난 회화적 완성도는 관람자의 눈과 마음의 갈증을 풀어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리얼리즘의 복권>과 같은 대규모 리얼리즘 전시가 2016년 벽두를 장식한 것이 단색화 이후 또 다른 성장 동력을 찾으려는 한국 미술시장의 요구에서 기획된 것임을 모르는 이는 없다. 2015년은 그야말로 한국 현대미술사에 큰 획을 그을만한 의미 있는 해였다. 뉴욕 블룸 앤 포, 파리 페로탱 갤러리 기획전과 뉴욕 크리스티 옥션의 내부 세일전시 그리고 지난 11월 홍콩에서 있었던 ‘서울’과 ‘K’ 양대 옥션의 성공적인 판매에 이르기까지, 1970~1980년대 한국 단색조 추상화에 대한 국제적 관심에 힘입어 박서보, 정상화, 하종현, 윤형근의 그림 값은 크게 올랐다. 이쯤 되자 단색화 이후 새로운 트렌드의 한국미술이 필요하다는 것은 시장의 문제를 넘어 한국 미술계의 역량을 가늠하는 문제가 되었다. 현 정부가 주도하는 산업으로서의 미술 정책 역시 이러한 고민에 당위성을 실어주었다. 한국 미술시장이 이제 다음 주자로 민중미술을 무대에 올릴 거라는 것은 예견된 일이었다. 1994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민중미술 15년전>으로 미술사적 자리매김을 일찍 해버린 이후, 본격적인 1980년대 현실주의 미술전이 거의 없었다는 것도 시의 적절했다. 1980년대 현장미술로서의 민중미술을 개인적으로 수집하고 후원했던 가나가 다음 목표를 리얼리즘 미술로 잡은 것은, 모노크롬 추상화를 그리는 젊은 미술가들을 끼워 넣어 단색화 특수를 연장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정직한 방향이었다.
그렇지만 1980년대 리얼리즘 미술의 호출이 시대의 요구가 아닌 시장의 필요였다는 사실은 양날의 검처럼 위험해 보인다. 예상된 위험은 이번 전시의 제목과 선정 작가의 구성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이 전시를 공동 기획한 미술사학자 유홍준은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전시의 의도가 민중미술이 아닌 포괄적 리얼리즘 미술의 재조명에 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전시에 초대된 작품 하나 하나가 수준 높은 회화작품임을 거듭 언급하였다. 이는 1980년대 현실주의 미술운동은 예술이기보다는 정치적 프로파간다이며, 그 수준이 형편없다는 모더니즘 미술진영의 비판에 대한 선방어 전략처럼 들린다. 단색 추상화 이후 새로운 주력 상품이 필요하다는 미술시장의 고려가 기획자로 하여금 ‘민중’이라는 불온한(?) 용어를 스스로 지우고 맥락보다는 회화의 물질성에 이목을 집결시키는 방식을 선택하게 한 것이다. “민중” 이라는 논쟁점을 은폐하고 리얼리즘이라는 헐거운 그물로 시대정신을 빌미 삼아 새로운 미술 패키지를 꾸리려는 것인데, 이는 서구의 미니멀리즘과 달리 한국 고유의 미학을 담고 있어서 굳이 “단색화(Dansaekwha)”라는 고유 표기법을 고집했던 것과도 사뭇 다른 전략이다.
“민중”이라는 용어는 1960년 4·19혁명 이후에 다시 점화된 역사 변혁의 의지를 담아, 미술가들로 하여금 계급과 노동같은 사회 갈등의 진원에 에두르지 바로 않고 진입하게 했던 핵심어였다. 현실주의 미술가들은 ‘민중’ 이라는 언어를 거울 삼아 역사적 주체로서의 자신을 되돌아봤으며, 자본주의로부터 뒷걸음쳐 결국에는 다가올 소비사회를 잠시나마 통찰하고자 했다. 당시에 “민중”이라는 단어가 풍기는 살벌함은 냉전 콤플렉스라는 전후 한국사회의 집단 무의식의 금기를 건드렸다. 당대에 현실운동의 일원이었던 미술비평가 성완경은 비평가 엄혁과 함께 1988년 뉴욕 아티스트 스페이스에 <민중미술전>을 올려 당대 한국 정치미술을 소개한 바가 있었다. 이후 독일 프랑크푸르트 쿤스트 할레에서 열린 <시각의 전쟁전>과 1993년 뉴욕 퀸스미술관에서 개최된 <태평양을 건너서전>에 이르기까지 한국 현대사의 정치적 논쟁과 미술계가 진영으로 나뉘어 격돌했던 비평적 파열은 민중미술의 프리즘을 통해 소개되었다.
현실 비판을 담보한 리얼리즘
리얼리즘은 현실에 닻을 내리고 사회 비판적 의지를 갖춰야 생명을 갖는, 우직한 미술 사조이다. 그러니 적어도 리얼리즘 미술 기획이라면, 개인적 완결성의 미학을 추구하는 단색화의 기획과는 다른 형식이었어야 했다. 예민한 정치 비판과 사회 논평, 문화 운동을 이끌었던 1980년대 민중미술의 저항성을 건드리지 않고, “시대의 눈과 정신”의 복권을 말하는 것은 사실 낯간지러운 일이다. 작가 선정도 그렇다. 1970년대 사물과 언어의 문제에 천착하며 단색화와 현실주의 사이에서 다른 행로를 모색했던 고영훈을 시각성을 강화하기 위해 단체전의 곁다리로 초대하는 것은 전시의 진정성뿐만 아니라 독자적 자기 세계를 가진 고영훈 작가에게도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 또한 그간 대중이 좋아하는 풍경화로 경매에서 쉼 없이 거래된 오치균의 풍경화가 새삼스럽게 리얼리즘의 복권이라는 이름으로 포함된 것도 수긍하기 힘든 부분이다. 무엇보다 이 전시가 명품전을 추구하느라 1980~1990년대 민주화 과정과 동반하며 정치적 투쟁의 날을 세웠던 한국 리얼리즘 미술의 미술사적 맥락을 스스로 단절해버린 것은 아쉬운 일이다.
과거가 더 좋았다는 식의 추억을 더듬을 생각은 없지만, 미술시장이 미분화 상태였던 초기 한국 현대미술의 생태계에서 비평과 문화담론은 관제미술에 대항하는 전복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시장이 주도하는 세계적 상황에서 최근의 한국 미술계는 가격 상승과 진위 논란을 둘러싼 가십거리나 만들어내는 진흙탕처럼 취급되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몇몇 단색화 미술가의 성공을 한국 현대미술의 세계화로 자위하는 사이, 윤리성의 부재와 여전히 열악한 시스템으로 내적 추진력이 꺼지고 있는 한국 현대미술의 문제점을 이 전시회에 딴죽 거는 식으로 거론하는 것도 미술사가로서 무책임한 일이다. 돌이켜 보자면 1950년대부터 화상과 시장은 비평과 학술에 앞서 한국 현대미술을 구성하고 ‘기획’해온 미술계의 주축이었다. 시장에 의해 박수근의 미술이 평가되고, 이중섭이 국민화가가 되었으며, 1970년대 근대미술품을 수집, 거래하며 20세기 한국미술사의 첫 길을 놓은 것도 살펴보면 화상들이었다. 그들은 한국 모노크롬 추상화 판매에 성공함으로써 한국 현대미술 태동기부터 오매불망했던 세계 미술로의 진입을 막 이루어낸 주인공들이기도 하다.
사실 상업화랑의 전시가 지나치게 상업적이라는 비판은 순진할뿐더러 형용모순이다. “상인은 자신의 영리를 추구하면서 동시에 사회의 영리도 효과적으로 높인다”고 했던 고전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의 말대로라면 “화상은 그림을 팔아 미술의 공적 가치를 높이는 이다. 그 사회적 영리성이란 결국, 자본의 선순환으로 미술계에 전위 아방가르드 미술의 토대를 깔아주는 일일 것이다. 한국 현대미술이 세계 시장에서 한국미술의 지분을 확보하는 것은 단순히 원로작가들에게 지난 삶에 대한 보상의 배당금을 나누어 주는 일이 아니라, 미래 한국 미술계의 생산력을 확보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단색화에 이어 1980년대 한국 리얼리즘 미술을 중국의 “정치적 팝(Political Pop)” 미술처럼 분명한 세계사적 위상을 가진 현실 비판적 미술로 소개하기 위해서는 그저 ‘명작’의 후광을 씌우기보다는, 이 날선 미술운동을 둘러싼 현대사의 맥락도 복권해야 한다. 어느 때보다도 혁명적인 미술이 필요한 작금에 ‘민중미술’이 지나간 시절을 회고하는 추억의 사조로 다루어져서도 안 될 것이다. 뭐라고 둘러대도 자본에 무방비로 투항한 현실 참여미술은 볼썽사납기 때문이다. 그건 “시대의 눈과 정신의 복권”은 고사하고, 민중 미술을 두 번 죽이는 일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