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Face 2014] 이병수
극지에서 예술가는 무엇을 하는가?
작가 이병수는 2011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진행하는 노마딕 레지던스의 남극 방문 프로그램에 지원할 계획이었다. 프로그램이 무산되면서 그는 결국 남극에 가지 못했다. 지난 2년여간 그는 실제 장소이지만 상상의 공간으로 남겨진 남극에 대한 다양한 질문을 작업으로 풀어냈고, 최근 개인전을 선보였다. 서울 부암동 ‘공간291’ 에서 개최한 <메이드인 안타티카(Made in Antarctica)> (10.30~ 11.30)가 그것이다.
퍼포먼스 그룹 ‘관악무브’와 협업한 <스쿠아의 공격을 예술적으로 대처하는 7가지 방법>은 남극에서는 우리말로 도둑갈매기라 불리는 스쿠아가 사람들의 머리를 자주 공격하는데, 이를 피하기 위한 방법을 유쾌하게 그려낸 작업이다. <해피캠퍼>는 머리에 하얀 통을 쓰고 외 줄에 의지해 이동하는 다소 엉뚱해 보이는 퍼포먼스이지만 척박한 땅, 남극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실제로 이와 유사한 방식의 훈련을 통해 시행착오를 경험해야 한다.
작가는 남극이 가기 힘든 곳으로 알려져 있지만 검색을 통해서 실제 남극 관련 관광 상품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돈만 있으면 남극기지까지 도달하는 데에 어려움이 없는 것이다. 남극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의문을 던지는 설치작업 <빙산의 일각>은 ‘exploration(탐험, 탐사)’의 도전적인 측면이 필연적으로 ‘exploitation(개발, 착취)’의 문제로 연결되는 지점을 두 개의 영어 단어가 굉장히 비슷하다는 점에 착안해 시작했다.
그렇다면 예술가가 남극에 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작가는 이러한 의문이 필연적으로 ‘예술가의 역할은 무엇인가’,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남극을 ‘극지’, ‘가장자리’ 개념과 연결시켰다. “지난해부터 예술가들의 생존 문제가 화두가 되면서 예술가야말로 자의에 의해 혹은 타의에 밀려서 사회의 끝자락에 서 있는 사람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러한 고민은 지하 전시장에 다이어그램으로 표현된 <폐쇄된 위계>에서 잘 드러난다. 각자의 미션이 기재된 남극 연구원의 조직도가 한 사회 구성원의 역할을 연상시킨다면 예술가는 어떤 특별한 미션 없이 가장자리에 밀려있다. 그렇다면 예술가는 무엇을 하는 사람이란 말인가?
이병수는 지금까지 미학적 감수성을 드러내기보다는 비현실적 상상을 현실로 끌어들여 진지하게 수행해내고 이를 하나의 경험적 사건으로 기록하여 남기는 방식으로 작업을 풀어내왔다. <관악산 호랑이>, <희망을 찾아서> 등 프로젝트 개념의 기존 작업 역시 기교보다는 자신을 둘러싼 예술과 사회의 관계와 동시대예술의 실천적인 측면을 우직하게 모색해온 결과다. 이병수는 “예술은 결국 극도로 물질화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유일하게 역행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예술가의 역할도 남극처럼 통제되고 척박한 오늘날의 상황에서 새로운 틈을 만드는 행위에 있다”고 덧붙였다.
이슬비 기자
이병수는 198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서양화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2010년 서울대 우석홀에서 열린 <에피소드>를 시작으로 4회의 개인전을 열었고 <언어놀이>(성곡미술관), <미래가 끝났을 때>(하이트컬렉션) 등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금천예술공장 레지던스에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