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Face 2014] 전희경
천국보다 낯선, 무릉도원보다 익숙한
전희경 작가의 캔버스는 일견 동양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요소들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 마치 산수화나 탱화를 보는 듯한 경험을 하게 만든다. 단순히 양립할 수 없는 표현적 요소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일까? 최근 겸재정선미술관에서 열린 개인전(<겸재 내일의 작가상 2013 수상자-전희경>, 10.29~11.16) 전시장에서 그를 만났다.
작가의 작품에 등장하는 장소는 대부분 이상향 즉 유토피아,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곳, 현실에서 이루기 힘든 욕망의 배출구 등등으로 규정되어 있다. 그리고 그것을 동양화적인 표현 방식으로 드러낸다. 그렇지만 그는 의도적으로 동양화적인 태도를 유지하느냐는 질문에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러면서 그것은 “자신에 대한 깊은 관찰이 유발한 것”이라고 말한다. “작품에서 보이는 색감이나 관심 분야(동양철학, 불교, 도교 등)를 연상시키는 요소는 제 자신의 정체성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비롯한 것 같습니다. 몇 번의 여행도 그 과정이었죠.” 그래서 그의 작품을 보고 서구의 천국보다는 동양의 무릉도원을 떠올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전 작가의 그간의 행보를 보면 스스로 낯설고 익숙하지 않은 곳에 몰아가는 것 같은 인상이다. “‘자발적 유배’ 를 즐긴다고 할까요? 낯선 곳이 주는 가장 큰 가르침은 저 자신을 보게 된다는 것에 있어요. 익숙한 관계와 환경에서는 자신이 더 견고해지지만, 나아질 수 없는 것 같아요.” 이러한 태도를 바탕으로 작업한 것이 바로 드로잉 연작이란다. 타이완의 외딴 지역인 타이둥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작업했다. 자신의 현재에 대한 반성을 타이완에서 생산되며 불두(佛頭)를 연상시키는 열대과일인 ‘스쟈(釋迦)’ 형상을 통해 드러냈다. 이른바 108번뇌의 결과인 셈이다.
그런데 전 작가의 작업은 완전한 추상적 형태로 들어가는 문고리를 만지작거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지점이라서 그럴겁니다. 구체적 형상의 이미지들은 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현실과 이상의 경계에 처한 삶의 모습을 그렸다면 <산수화> 연작으로 오면서부터 누구나 알고 있는 그 이상향을 그리는 데에 주목했습니다. 이러한 관심의 이동이 정확한 이미지들을 배제하게 하고 점차 붓질과 색감 그리고 구도적 배치 등으로 화면을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풍경을 연상시키는 ‘제3의 공간’을, 구상 혹은 추상에 치우치지 않고 그 경계에 선 작업을 하고 싶다고 한다.
전희경 작가의 작품에선 지속적으로 드러나는 몇 가지 공통된 형상이 있다. 보기에 따라 인체 장기 등을 연상시킨다. “이 이미지들의 시작은 <바디> 드로잉부터였습니다. 몸의 살들이 겹치는 부분을 반복적으로 무의식적으로 그리다보니 머리와 팔다리 형상은 사라지고 살들의 모습만 남게 되었죠. 이 형상은 간극과 틈 사이에서 부유하는 우리의 모습이라고 봅니다.”
전 작가는 최근 노년의 삶과 죽음을 그린 <아무르>라는 영화를 관심있게 봤다고 한다. 지극히 현실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는 말에 그의 캔버스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의 이상향은 단순히 유토피아는 아니기 때문이에요. 우리의 삶은 그렇게 긍정적이지도 않기 때문이고요.”
공간을 압도하는 작업을 하고 싶다는 작가는 ‘버티기’가 삶의 강령이 되어버렸단다. 작업을 지속하기 위한 토대의 중요성을 ‘현실적’으로 깨달았단다. “60줄이 넘으니 이제야 비로소 산이 세모로 보이신다는 어느 노(老) 교수님의 말씀이 생각나네요. 저의 빈 그릇을 채울 수 있는 내공, 내공을 쌓는 일이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황석권 수석기자
전희경은 1981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홍익대 회화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서울, 부산을 비롯 타이베이 등지에서 8회의 개인전을 열었다. 또한 한국과 중국 등지에서 열린 다수의 기획전과 그룹전에 참여했다. 2013겸재정선미술관 ‘내일의 작가’ 대상을 수상했다. 현재 인천에서 작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