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선을 치다
선을 치다
우민아트센터 2.13-4.19
선을 ‘긋다’ 혹은 ‘그리다’가 아닌 ‘치다’라고 명명한 제목은 드로잉의 확장을 함축적으로 선언한다. 드로잉(drawing)이 단지 작품의 밑그림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도 하나의 중요한 장르라는 아이디어에 근거한 전시는 많이 있었지만 대개는 그리기 기법에 충실한 작품을 집중적으로 소개하는 데에 머물러 있었다. 이번 전시는 2차원의 평범한 드로잉을 넘어서 입체, 설치, 영상 등 다양하게 변주하는 드로잉 형식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기존의 전시들과 차별성을 지닌다.
전시장 입구에서 관객을 맞이하는 송진수의 작품은 마치 펜으로 빠르게 그려나간 스케치처럼 보이지만 실은 굵은 철사를 연결하여 만든 속이 텅 빈 입체 조형물로 착시효과를 일으킨다. 3차원의 공간에 그려진 선이라는 점에서 드로잉의 고정관념을 깰 뿐 아니라 동시에 조각이란 본디 양감을 표현하는 것이라는 개념도 뛰어넘고 있다. 곧이어 만나게 되는 김보민의 동양화는 선 하나에도 작가의 정신성이 깃들어 있다고 보는 동양화의 전통을 꼬집기라도 하듯 라인테이프를 들여와 과장되게 선을 강조하고 있다.
이어지는 김철유의 펜 드로잉은 컴퓨터로 그린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치밀하고 반복적인 패턴을 보여주고 있는데 가까이에서 화면을 관찰하면 펜의 세밀한 번짐과 자연스러운 육필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이어지는 작품들도 각기 다른 방식으로 드로잉이라는 특성을 공유하면서도 기존 관념의 해체를 통해 드로잉의 새 관점을 제시한다. 전시 동선과 상관없이 8명의 작가가 각각 송진수 김병주의 공간 입체 조각, 양연화 이정민의 애니메이션, 김보민 이승현이 보여주는 선의 확장과 재해석, 김정주 김철유의 세밀한 펜화 등으로 짝을 이루며 상호 소통하는 점도 흥미롭다.
본 전시는 개관 3년 만에 심도 있는 전시 기획으로 ‘이동석미술상’을 수상하는 등 중부권의 주요 미술관으로 자리 잡은 우민아트센터의 2014년 첫 기획전으로, 외부 큐레이터를 초청하여 확장된 시선을 보여주려는 시도에서 기획되었다. 전시를 맡은 큐레이터는 사회적 이슈를 진지하게 다루는 기존의 전시기획과 맥을 이으면서도 현대미술의 다양한 시각적 실험을 선보이기 위해 ‘드로잉’을 주제로 선택했다고 한다. 꾸준하게 젊은 한국 작가들을 관찰하고 그들을 ‘선’이라는 공통점으로 묶어낸 기획력이 돋보이며, 우민아트센터의 넓은 공간을 조화롭게 채워 시각적인 즐거움도 충만하다.
김영애・이안아트컨설팅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