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양아치 – 뼈와 살이 타는 밤
양아치 __ 뼈와 살이 타는 밤
학고재갤러리 6.20~8.10
한국의 정치 사회적인 문제를 다루었던 <미들코리아전> 이후, 5년 만에 ‘뼈와 살이 타는 밤’이라는 제목으로 양아치 개인전이 열렸다. 이전의 전시가 구체제를 파괴하고 현재를 비판해서 신세계를 창조한다는 다소 희망적인 결말을 지녔다면, 이번 전시에서는 사회를 바라보는 태도는 유지하고 있다 하더라도 희망적인 메시지는 없는 듯하다. 고통이 사그라지다 여전히 반복되는데도 희망을 갖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30년 전의 부조리한 사회구조가 현재에도 다시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을 목격하면서 작가는 1980년대 중반의 정치적 장려책인 일명 3S(스포츠, 섹스, 스크린) 정책으로 제작된 영화 제목을 불러들였다. ‘뼈와 살이 타는 밤’은 1980년 부흥한 에로영화의 상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나열된 단어들을 있는 그대로 해석한다면 실제로 뼈와 살이 타는 것이니 섬뜩한 공포영화에 대한 표현일 수도 있고, 문맥에 따라 그 당시 일어났던 끔찍한 고문과 살육에 대한 기술일 수도 있다. 여하튼, 1980년대를 어떻게 겪었는가에 따라 제목의 의미는 각기 다르게 받아들여질 것이다.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근대화를 뼈아프게 겪은 나라임에도 현재의 사회 흐름은 그렇게 반듯해 보이지 않는다. 개인 간이든, 계층 간이든, 세대 간이든, 신뢰는 약화되었고 충돌은 강화되었다. 게다가 사회 분위기는 대충 20년 전 군부시대를 끝으로 숨통이 트이나 싶었다가 요즘 들어 다시 갑갑한 기운이 고조되고 있다. 자연 훼손과 가정 파탄, 사이비와 어이없는 사고가 도처에서 재발하는 데도, 당한 자와는 별개로 국가는 침묵을 강요한다. 문제가 있는 건 사실이고 진단이 필요한 건 당연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시가 열렸기에 작가가 전달하려는 내용은 다소 명확해 보인다. 예술가로서 억압과 통제가 한창이던 30년 전의 과거와 현재 상황의 유사함을 당연히 감지할 수밖에 없었을 테고, 반복되지 말아야 할 역사가 되풀이 되는 현실이 동기가 되어 이에 대한 발언을 하는 것이다. 그는 “30년 전에는 (권력의 통제 등이) 시각적으로 드러났지만, 지금은 교묘한 통제에 따라 시스템적으로 작동하면서 눈에 보이지 않아 잘 모를 뿐”이라고 말한다. 전시장에는 30년 전의 분위기와 현재가 혼재된 듯한 이미지와 오브제들이 놓여 있었다. 마치 귀곡산장을 연상케 하는 별장의 요소들로서 샹들리에, 촛불, 유리잔, 박제들, 그리고 마치 산장 주변과도 같은 숲속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이 쓴 늑대의 탈이나 닭대가리 같기도 한 새의 머리(무관심하게 내려다보고 있다), 숲 속에 놓인 시신의 부분 같은 머리카락 뭉치, 앵두나무, 머리를 축 늘어뜨린 입상 등 모든 요소가 에로틱하면서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때로 현재의 사회적인 상황과 맞물려 있는 죽음의 이미지들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현실의 다양한 국면들을 상징하고 있다. 연출된 장면들은 밤에 조명을 사용하여 촬영함으로써 어둠과 빛의 대비가 극명하여 그러한 분위기를 가중시킨다. 이렇듯 성적인 코드와 공포스러움이 혼재하는 상황을 통해 현실과 허구, 죽음과 생명, 절망과 헛된 희망이 뒤섞여서 자아내는 불안한 현실과 이를 지탱하는 현재의 부조리한 사회구조를 작가는 꾸밈없이 보여주려 하고 있다.
작가의 신작 <뼈와 살이 타는 밤>은 6개월 정도 야간 산행을 반복하면서 얻은 결과이다. 어두운 산길을 걷는다는 것은 무서운 일일 수도 있지만, 고독한 시간이자 존재와 만나는 시간이기도 하다. 고독은 시간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이다. 작가는 고독의 수행을 통해 왜 하필 안 좋은 것이 반복하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있다. 그리고 전시를 통해 자신처럼 고독한 시간을 가질 것을 우리에게 제안하는 듯하다.
박순영・서울시립미술관 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