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이원철-Time
이원철 __ Time
스페이스22 4.3-29
1970년대 초, 전설적인 록그룹 비틀스와 핑크 플로이드의 앨범 제작에 참여했던 세션 연주자들이 있었다. 앨런 파슨스와 에릭 울프슨인데, 그들이 1975년에 결성한 그룹이 앨런 파슨스 프로젝트(The Alan Parsons Project)이다. 30년이 넘는 시간이 흐른 지금도 진보적인 음악성과 세련된 사운드로 오래도록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사진작가 이원철과의 인연은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미술관에서 공원을 주제로 사진전을 개최하였는데, 작가의 <The Starlight>시리즈 작품을 대면하는 계기가 되었다. 야간 촬영이지만, 생경하고 몽환적인 풍경을 연출하는 작품은 매우 특별한 느낌을 주었다. 그때부터, 이원철의 작품을 관심 있게 보았다. 그 보다 먼저 제작된<unfinished…>시리즈는 호주 유학시절에 묘지를 작품의 소재로 삼았는데, 역설적으로 삶의 마지막 의식을 치른 묘지를 ‘완결되지 않은’, 좀 더 의미를 부여하자면, 또 다른 시작을 의미하는 제목의 전시로 만들었다. 귀국 후에 전국의 고분을 소재로 <The Starlight> 때처럼, 야간 촬영 노출 정도에 맞춰서 생과 사가 공존하는 생경한 풍경을 특화된 감각과 공간적인 표현으로 연출하였다. <The Starlight>가 낮과 밤, 빛과 어두움, 시간성의 숨은 현상에 관한 이야기였다면, <unfinished…>는 삶과 죽음, 인간의 실존과 부재에 관한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두 가지 시리즈의 미덕은, 가볍지 않은 주제를 담고 있으면서도 동화 같은 시각적 볼거리와 서정적인 감각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원철이<Time>으로 전시회를 개최했다. 이번 전시로 작품의 변화와 작가가 나아가려는 방향이 명확하게 보이는 듯하다. 우선, 좋았던 점부터 말하자면, 작가가 10여 년 전부터 일관되게 탐구하고 진행해온 주제의식을 엿볼 수 있다.
이번 주제는 <unfinished…>, <The Starlight>의 연장선상에서 결론에 가까울 정도로 정답이 없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질문할 수밖에 없는 시간과 영원성에 관한 내용이다. 화면 안에 움직이는 사물들은 장(長)노출기법에 의해 사라지듯 표현되고, 영원한 것은 시간밖에 없음을 간접적으로 시사한다. 시곗 바늘도 영원으로 인도하는 도구로서 존재할 뿐이므로 그것이 제거됨 또한 이런 맥락으로 읽힌다.
<London United Kingdom> 시리즈 중에 실내 기차역 같은 장면과 이름 모를 현대식 건물사이의 휴식 공간, HSBC은행 건물이 있는 담벼락 작품을 보면서 영국 출신의 앨런 파슨스 프로젝트가 1980년 발표한 <Time>이란 노래가 떠오른 것은 우연일까, 필연일까? 30년이라는 시간의 간극, 사진과 음악이라는 장르를 관통하며 다가오는 감흥(感興)은 분명히 우연이 아닐 것이다. 예술이 지니는 확장성인 경계를 허물고 넘나드는 최상의 단계에 이르렀음이 통했다고 하겠다.
이제, 아쉬운 점을 이야기하고 싶다. 작품의 배경으로 나오는 8개국 도시의 풍경들을 되돌아보아야 한다. 이번 전시의 중요한 개념이 시간성에 있다. 바꾸어 말하면, 장소성에 큰 비중이 없다는 것이다. 나머지 작품들에 등장하는 이국적인 문화와 건축양식의 장소성이 주제의식을 약화시키는 변수로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차라리 장소를 짐작하기 어려운 넓은 실내 공간의 시계들을 소재로 선택했으면 어땠을까? 이국적인 풍경과 화려한 건축양식에 주제의식이 희석되지 않고, 움직이는 모든 사물이 실루엣의 잔상으로 존재와 부재를 넘나드는 여운을 보여주었을 때, 시간의 영속성(永續性)과 미학적인 깊이는 배가(倍加)되었을 것이다. 이런, 나의 판단이 오판이라는 가정도 해보았다. <The Starlight>, <unfinished…>에서 보여준 시각적인 볼거리를 위해 건축적인 장식미를 도입했다는 가정을 해보아도 주제의식을 약화시키는 선택이라서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이원철 사진의 시각적인 볼거리는 인간들이 구축해놓은 인공물이 아니라, 빛과 어두움인 자연현상에 적절한 사물과 결합된 개념 있는 노출의 미학에 의해 성립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작가의 작업은, 도록에 쓴 필자의 말을 인용하여 ‘현상 너머의 실재에 대한 탐구’임을 인정하고 좋은 방향으로 접근해도, 이번 ‘Time’이라는 주제의 무게와 깊이를 담기엔 뭔가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사진작가 이원철에게서 받았던 첫인상, 즉 현실에서 보기 힘든 동화 같은 풍경(Atopia)이나 낯선 장소(Unfamiliar place)에 대한 갈증을 해소해준 데 대한 만족과 그에 따른 기대가 커서 그럴 거라는 생각도 든다. 시간성이란 주제는 절대 만만하지 않다. 작가로서 평생을 매달려도 해결하지 못할 수 있다. 앨런 파슨스 프로젝트의 <Time>에 반복되는 가사에 이런 내용이 있다.
“Who knows when we Shall meet again, But time keeps flowing like a river to the sea”(우리가 언제 다시 만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시간은 강이 바다가 되듯 계속 흐르고 있다.), Till it’s gone forever…(영원히 끝날 때까지…)Gone forever…(영원의 끝…) Gone forevermore(언제나의 끝…)
세월의 무상함과 시간의 영속성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는 가사 내용이다. 끝.
손성진・소마미술관 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