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김기라 – The Last Leaf
김기라 – The Last Leaf
페리지갤러리 5.30~7.31
후기자본주의에 대한 비판과 이데올로기에서 비롯되는 갈등 등 현대사회가 지니고 있는 문제를 다양한 예술적 표현양식으로 다루는 김기라 작가의 개인전 <마지막 잎새>가 페리지갤러리에서 열렸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우리에게 공동선이라는 것이 존재하는가?” 그리고 “우리는 이 사회를 어떻게 바라보고 행동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작가는 현대사회에 대해 치밀하게 조사하고 연구하며, 때로는 인류학적으로 다양한 문명권과 종교에서 만들어낸 방대한 이미지를 수집하는 등 현재 일어나는 사건과 삶의 관계에 대한 고민을 풀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이번 전시의 두 가지 질문에는 현대사회라는 거대 담론을 바탕으로 하면서, 현재 우리나라가 겪고 있는 분단 현실의 문제를 풀고자 하는 의지가 담겨 있다. 따라서 이산가족이나 북한, 강정마을이나 노조의 투쟁 등 우리나라가 당면한 현실과 실제로 일어나는 구체적인 사건을 다루고 있다.
전시장이 있는 건물의 로비는 온통 붉은색이다. 유리로 마감된 건물 외벽을 붉은색으로 처리하여 밖에서 보면 안이 그렇고, 안에서 보면 밖이 그렇다. 색 중에서 붉음은 맥락에 따라 특별한 의미를 지니지만,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라는 두 축의 이데올로기로 인해 분단 상황에 처한 우리나라에서는 그 의미가 더 강하다. 작가는 붉은 필터를 통해 우리 사회가 주입한 이념과 사상으로 인해 상대를 편견을 갖고 바라볼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말하고 있다. 하나의 주장이 선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반대편을 악으로 표현해야 한다. 우리는 붉게 처리한 유리벽으로 인해 자본주의가 배척하는 붉음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이를 인지할수록 상대편만을 붉게 보려는 심리가 작동하게 된다. 따라서 작품 제목에 사용된 ‘검열’은 단지 사회만이 아니라 개별자가 자신의 사회에서 배척되지 않기 위해 스스로 자행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로비에 설치된 <ON-NO_양면의 대립>도 같은 의미에서 볼 수 있다. 허용하고 금지하는 기준은 사실 관점에 따라 오락가락한다. ‘O’와 ‘N’의 단조로운 조합은 메시지가 명확함에도 관객의 심리에 혼동을 가져온다. 사회에서 일어나는 갈등은 관점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지 객관적 기준에 기반을 둔 것은 아니다. 엄청난 폭력으로 귀결되는 대립이나 갈등은 단지 어디에 서있고, 어떻게 보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맹신하는 기준은 사실 실체없는 ‘망령(specter)’이고, 우리나라로 치면 북한을 적대시하는 이데올로기이다. 냉면을 먹으면서 갑자기 생각난 평양이라는 단어의 가벼움, 그래서 그는 그곳에 편지를 보낸다. “밥 잘 챙겨 먹으라”는 그의 독백은 이념을 넘어 인간적인 관심을 담고 있다. 서로에게 숨을 불어넣고, 눈을 가리고 헤매기도 하며, 다른 색의 끈으로 이어진 두 사람의 움직임 등 영상에서 보여주는 갈등과 화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이념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의지하고, 그 안에서 상대를 바라보려는 것인가. <이념의 무게_마지막 잎새>는 이산가족의 상봉을 재현하고 있다. 검은 배경에 그들의 대화만이 흐른다. 이념을 넘은 인간관계의 회복은 개별자가 자신의 기준과 의지를 갖고서 서로를 만나고자 할 때 가능한 것이다. 이것이 이번 전시에 작가가 강조하고 싶은 메시지라는 생각을 해본다.
박순영・서울시립미술관 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