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노세환 – 학습된 예민함

노세환  __  학습된 예민함

표갤러리 사우스 7.3~24

첫째 항(項): 태생적으로 비슷한 형태의 바나나. 둘째 항: 비슷한 형태일 뿐 똑같을 수 없는 바나나. ‘바나나’라는 동일항이 노세환의 뷰파인더 속 관계에선 대립항(對立項)으로 전환된다. 어느 쪽도 거짓은 아니다. 낱개의 사실(fact)과 약간의 차이(difference)가 만들어낸 논리는 꽤 설득력을 지녔다. 부인할 수 없는 자연(바나나, 사과)에서 온 ‘차이’와 ‘사이’라는 명확한 부분을 건드리면서 시작한 사진작가는 좀 더 세련된 논법으로 자신의 다음 생각을 피력한다. 자연의 물을 포장만 한 생수 브랜드, 철저히 인공적인 콜라. 모두 ‘차이’와 ‘사이’가 존재하지만 시각적 구분은 매우 힘들다.
오늘의 시각예술가에게 필요한 덕목은 대상의 미세한 ‘차이’를 먼저 발견하거나 진리의 미묘한 ‘사이’에 대한 물음을 먼저 감행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만큼 동시대(contemporary)라 지칭되는 오늘은 매우 복잡하고 다양하며 변수 또한 상당하다. 그 많은 사변-思辨: 경험에 의하지 않고 순수한 생각만으로 인식에 도달하는 일-을 한 줄로 정리해서 수반되었을 유사하고 반복적인 사유와 실험이 결과론적 사진 한 장에 담긴다.
그러나 노세환의 사진은 철학적이지도 무겁지도 않다. 오히려 밝고 유쾌하다. 규칙을 가진 형태들이 규칙에 위배되지 않는 색감을 띠고 화면에 안착되어 있다. 이러한 화면이 지루하게 보이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모두 너무나 인위적(혹은 인공적)이어서 자연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사진(사실)을 바라보면서 미니어처(가짜)를 찍은 느낌이 드는 것. 화이트 큐브에 입장하며 가졌던 기대심리를 한번에 무너뜨리는 너무나 정직한 작품 제목들. 날카롭지 않지만 무언가 한 방 맞은 듯한 심정이 되는 이유는 바로 현대미술이라는 장치가 우월하게 제대로 작용했다는 반증일 터. 노세환의 노림수. 자신의 시각논리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경계심을 낮추는 작품을 진행해 나간다. 학습된 선험에 대항하는 것 보다 현명한 미술인의 자세다. 굳이 바나나와 사과를 만들고, 물감을 붓고, 자신만의 잣대로 허용된 1mm의 규칙을 정한 후 오차 없이 찰나의 순간에 셔터 타이밍을 포착하는 일. 구구절절한 사연을 시각예술가가 정리하는 방식이다.
사진이라는 매체가 주는 탁월한 사실에 대한 기대감과 사실이라고 배운 학습에 대한 막연한 근원적 물음을 철학자가 아닌 시각예술가가 현대인의 심리를 대변하여 물어보고 있다. 진리의 기원 따위를 캐묻고 싶지는 않지만 오늘 자아(自我)라 불리는 ‘나’의 정체성 속에 ‘나’만의 사유가 얼마만큼 포진해 있는지, 그것은 과연 믿을 만한 것인지에 대해 단 한 장의 사진으로 되짚어주고 있다.

김최은영・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