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박진아 – 네온 그레이 터미널
박진아 __ 네온 그레이 터미널
하이트컬렉션 5.30~8.2
한 남자는 검정 백팩을 메고 떠나고 있다. 걷다가 몸을 반쯤 틀어 남겨진 이를 바라본다. 등 뒤로 열린 자동문은 그를 재촉한다. 자동문 너머 길게 뻗은 흰 통로, 그를 어디로 데려가는지 알 수 없다. 공항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박진아의 새 연작 중 <자동문(이쪽으로)>의 한 장면이다. 다른 작품 <활주로가 보이는 창>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는 네 명의 인물은 창문 밖을 바라보며 있다. 유리창 너머 텅 빈 활주로를 응시하는 이들의 뒷모습과 함께 캔버스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것은 공항의 회색 바닥과 그 표면의 광택에 반사되어 비친 네 명의 그림자이다. 창문 안 공항 내부와 창문 밖 활주로, 공항 안 사람들과 바닥에 비친 그들의 그림자, 캔버스 안 등장인물과 캔버스 밖 관람자의 배치를 통해, 작가는 하나의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공항이라는 공간을 개념적으로 시각화한다.
박진아는 자신이 촬영한 공항 사진들에서 그 인테리어 대부분이 회색으로 채워져 있음을 발견했다. 작가가 발견한 무채색의 공항은 “현대의 공항은 ‘아무것도 아닌 공간(non-place)’으로 설계된다”는 인류학자 마크 오제(Marc Augé)의 이야기와 맞닿아 있다. 세계의 어느 공항이든, 공항이라는 공간은 그 장소가 가진 고유한 흔적들은 사라진 채 복제화된 공간으로 존재한다. 장소가 갖는 독특한 관계성이나 역사성, 또는 정체성이 파괴되고 일률적으로 동질화된 공항에서 우리는 만나고 헤어지며 또다시 삶을 살아간다.
박진아는 공항 연작에서 공항의 ‘회색’을 재현하는 것이 과제였다고 한다. 천장의 회색, 벽의 회색, 그리고 바닥의 회색 광택은 그 안에 있는 인물을 에워싼다. 작가는 그 상황을 캔버스에 여러 색을 겹친 붓질로 표현했다. 회색 공간 안에서 인물들은 아래로 길게 늘어진 제 그림자와 함께 고립된 섬들처럼 떠있는 듯하다. 박진아의 캔버스는 켜켜이 고독으로 가득하다.
박진아는 자신이 많은 시간을 보낸 공간과 인물들을 작품의 소재로 삼아왔다. 이전 작업에서는 전시장의 모습과 미술계 인물들의 일상의 순간을 소재로 삼았다면, 이번 신작에서 작가는 최근 많은 시간을 보낸 공항이라는 공간을 소재로 삼는다. 작가는 일기를 쓰듯 자기의 주변을 기록하고자 공항에서 느낀 그 쓸쓸함을 작품에 담는다.
이번 전시에서 또한 박진아는 독일 작곡가 페터 간과 공항을 소재로 회화와 음악을 공감각적으로 감상할 수 있는 협업 작품을 소개한다. 페터 간은 공항에서 채집한 소리들과 자신의 키보드 연주를 편집하여 사운드를 내놓는다. 이 사운드는 노이즈가 되어 박진아가 회색만으로 구축한 추상의 캔버스와 조우한다. 관객은 겹겹이 쌓아 올려 결국은 무채색이 된 회색의 캔버스와 그 노이즈에 둘러싸인다.
양지윤・미메시스 아트 뮤지엄 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