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석성석 – Fare・Well Noise
석성석 – Fare・Well Noise
트렁크갤러리 8.7~31
소격동 트렁크갤러리 2층의 큰 테이블 위에는 각양각색의 LCD 모니터, 구형 포터블 브라운관 TV들이 길가의 돌탑들처럼 쌓여 있다. 그 사이로 증폭기와 분배기들이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고 각각 연결된 장치들의 화면에는 동일한 이미지들이 떠있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동일하지 않다. 원본 이미지를 내보내는 UHF 전파로 송신장치는 수신장치들 아래, 위에 샌드위치처럼 끼어 있다. 언뜻 과거 청계천 세운상가 주변에 즐비하던 TV가게 내부를 떠올리게 하는 작은 방송국을 여기에 구현해놓았다. 2012년 말 지상파 방송이 디지털 방송으로 대전환한 이후 더는 구경하기도 힘든 아날로그 방송 시대의 한 장면이다.
이 장치들은 모두 1번부터 26번까지 일련의 번호 순서가 매겨진 잡음기계라 부른다. 그리고 벽면을 향해서 비스듬히 놓인 프로젝터가 뿌리는, 길쭉하게 늘어진 의미를 알 수 없는 영상 역시 같은 정보원으로부터 수신된 또 하나의 변주이다. 작가가 이미 송신 과정에 개입할 때 교란된 원본은 송신장치의 전파를 타고 각 수신장치에 입력되어 이미지와 함께, 그것을 잠식해가는 백색잡음을 재생한다. 거기에 재생 화면을 피드백하는 8밀리 비디오카메라가 마치 거울 속의 거울처럼 다른 송신장치로 입력한 화면을 다시 유선 전송하고 있다. 이 일련의 과정을 통해 노이즈는 점점 증가하고 브라운관 주사선의 신호를 휘어지게 하여 원래 정보의 데이터를 교란시키고 있다. 우리는 이 작은 방을 가득 메운 혼잡한 아날로그와 초기 디지털 기술이 혼재된 시스템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나는 전파 생태계 내지는, 백색잡음 생태계로 부르려고 한다.
모든 통신에는 필연적으로 잡음이 발생한다. 정보 엔트로피가 증가한다는 것이다. 정보이론의 창시자 클로드 섀넌은 이미 전송 과정의 신호가 변하거나 왜곡시키는 노이즈를 지적하고 있다. 그는 컴퓨터 개발이 한창이던 1940년대에 ‘잉여성’과 ‘노이즈’, 그리고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개념을 통해 정보를 다시 물질과 연결하였다. 그는 이미 관념이나 추상이 아닌 구체적인 정보와 공학적으로 대면하고 있었다.
석성석은 섀넌의 선구적인 정보이론, 정보의 엔트로피, 신호간섭효과를 설명하는 샘플링이론을 매체예술의 관점에서 적절하게 설명해주는 좋은 표본처럼 보인다. 수적 재현에 관한 설명은 여기서는 건너뛰자. 하지만 여전히 아날로그 방식의 기술이 훨씬 풍부한 데이터를 저장한다고 믿는 사람이라면, 디지털 기술의 초창기 시절에 다음 단계로 넘어오면서 필연적으로 분절되는 데이터의 간격 사이에서 소실된, 섀넌이 ‘잉여성’라고 부르는 나머지에 대해 애석해 한다. 석성석 역시 디지털 기술로 이행하면서 아날로그 신호의 선적 파형은 작은 점들로 분절된 점에 착안하고 있다. 분절된 신호 사이의 간극이 노이즈가 되었다는 그의 언급은 기계, 기술 발전의 과도적 단계에서 과거와 현재의 단절을 강요하는 매체를 비판하고 과잉 시스템을 탈맥락화함을써 키틀러와 같은 기술결정론의 환원적 입장에 대한 저항 내지는 비판적인 태도로 읽힌다.
최흥철・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