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설원기 – 흑(黑).백(白)
설원기 – 흑(黑).백(白)
통인옥션갤러리 3.5 – 3.30
단순화해서 말하자면 드로잉은 하나의 선으로 그린 그림이며, 데생은 여러 개의 선을 겹쳐서 그린 그림일 수 있다. 얼추 선으로 그린 그림과 음영으로 그린 그림으로 환원해서 이해해도 무방하겠다. 단박에 대상을 포획한 그림과 대상을 더듬어 찾아가는 그림의 경우를 비교해봐도 되겠다. 이처럼 드로잉은 적어도 그림을 그리는 순간에는 머뭇거림 없이, 최소한 머뭇거린 흔적이 없이 사물대상을 단번에 포착해야 하는 까닭에 어렵다.
대개 드로잉이 페인팅에 비해 번잡하지가 않고 단출한 인상을 주는 것도, 적당히 심심하면서 꽉 찬 느낌을 주는 것도 알고 보면 이처럼 하나의 선으로 대상을 압축해 들인 형태 감각과 군더더기 없는 화면에 연유한다. 평소 사물을 관찰하면서 골격 내지 구조와 같은 형태적 특징을 캐치하는 과정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평소 몸에 밴 과정이 밀어올린 드로잉은 한정된 화면에 대한 공간운영과 같은 작가의 감각 정도가 즉각적으로 드러나 보이는 솔직한 그림이랄 수 있겠다. 감각에 관한 한, 가릴 데도 숨을 곳도 없는 그림이랄까.
설원기는 평소 페인팅과 함께 드로잉 작업을 한다. 페인팅이 작정하고 그린 그림이라면 드로잉은 그저 생활의 일부처럼, 일상의 기록처럼 부담이 없고 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그림이다. 그래서 무슨 거창한 예술혼보다는 작가의 평소 인성이며 인격에, 생활감정이며 생활철학에 더 밀착된 그림이다.
소재도 산과 같은 스케일이 있는 그림이 없지 않지만, 대개는 탁자 위에 놓인 화병과 같은 생활의 주변머리에서 취한 것들이어서 마치 작가의 일상을 들여다보듯 친근한 느낌이다. 여기(餘技)로 그린 그림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여기로 그린 그림이 주는 편안한 느낌이다. 여기로 그린 그림은 문법에 맞출 필요가 없다. 그러면서도 여기로 그린 그림만이 줄 수 있는 완성도가 있다. 아마도 드로잉이 독립된 장르로 인정받는 이유일 것이다. 그렇게 그림은 작가의 말마따나 서재에 오랫동안 걸어 놓고 보아도 질리지 않을, 있는 듯 없는 듯한 그림이고, 없는 듯한 방심 속에 존재감을 숨겨놓은, 그런 그림이다. 흑과 백과 중간계조로 이루어진 그림이 삶의 계조를 닮았다고나 할까.
한지에 목탄으로, 한지에 먹으로, 때론 반투명한 폴리필름 위에 잉크로 그린 그림이 선과 면이 대비되고 흑과 백이 대비돼 보이는 목판화 같고, 선이 강조된 그림이란 점에서 전통적인 수묵화 같다. 그린 부분과 그리지 않은 부분의 안배가 안정감을 주면서 소소한 느낌이고, 부드러우면서 터실터실한 목탄 재질 특유의 질감이 감각적이고 우호적인 인상을 준다.
이처럼 목탄그림이 목탄과 한지가 일체를 이룬 물성을 강조하고 있다면, 폴리필름에 잉크로 그린 그림은 어떤 울림을 자아낸다. 폴리필름은 뒤가 막힌 반투명 재질이다. 그래서 그 위에 잉크로 그림을 그리면 잉크가 지나간 자국이 낱낱이 기록된다. 이렇게 기록된, 중첩된 잉크자국이 울림을 자아내는 것. 이렇게 작가의 그림은 생활의 주변머리를 기록하고 있었고, 일상이 자아내는 정서적 울림을 기록하고 있었다.
고충환・미술비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