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이재삼 – 달빛, 물에 비치다
이재삼 __ 달빛, 물에 비치다
갤러리 아트사이드 6.10~7.2
이재삼 개인전 <달빛, 물에 비치다> 연작은 달빛과 물에 비친 사물과 그 흑백의 경계를 검은 톤의 목탄으로 교교하게 표현한다. 교교하다는 것은 희면서 검고 검으면서도 밝은 사물의 어떤 정서적 순간을 지칭한다. 이 사물의 부드러운 드러남, 인간적인 정념, 자연에 대한 직관은 낭만주의를 상기시킨다.
<달빛> 연작에서 이목을 끄는 작품은 거대한 폭포 아래에 흰빛으로 부서지는 물결을 바라보는 뒷모습의 사람형상이다. 작품에서 연상되는 도상은 프리드리히의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를 들 수 있다. 정상에 오른 한 남자가 자욱한 안개 속에서 광활한 자연을 바라보고 있는 프리드리히의 작품은 산 정상에 도착한 남자의 뒷모습과 골짜기에 피어오르는 안개바다, 바위와 산봉우리 산맥들을 광활하게 보여준다. 산을 오르는 인생의 힘든 여정을 이겨내고 인생의 정점에 도달한 그는 안개바다 아래에 지상의 세계를 바라본다. 자연을 충실히 재현하기보다는 자연 속에 있는 인간의 존재와 영혼의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 프리드리히의 작품은 거대한 자연의 광경을 대하는 방랑자의 시선을 통해 자연 앞에 선 인간의 왜소함, 우리의 지각 능력을 벗어나는 두려움과 공포, 즉 감상자에게 숭고의 느낌을 적절하게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낭만주의 회화에서 주요하게 거론되는 작품이다.
이러한 숭고의 의미를 이재삼의 <달빛>에서 생각해 본다면 이재삼의 달빛은 인간을 압도하는 크기나 힘에 의한 두려움과 공포, 충격에 대한 감정, 그것을 알지 못해 느끼는 좌절과 그것을 극복했을 때 느끼는 쾌・ 불쾌의 모순된 감정에 기인하는 숭고와는 다르다. 그것은 정상에 오른 남자의 모습이 아니라 폭포 밑 지상에 발을 디디고 부서지는 폭포를 관조하는 한 인간, 압도적이지만 왜소한 영혼을 느끼게 하지 않는 폭포, 그 자체의 부서짐을 통해 보다 유연한 사물과 인간의 시선, 곧 ‘달빛’의 존재적 특성을 시각화한다. 달빛은 거대하고 단단한 돌과 함께 그 사물성을 빛내고 흐르는 물과 함께 가시적인 변동을 시각화한다. 인간존재의 유한은 이러한 한계 안에서는 왜소하지만 그것이 거대한 무한 앞에서 방향을 잃은 혼돈과 절망은 아니다.
자연과 마주한 인간을 그리면서 이재삼이 취한 것은 자연 그 자체가 취한 사물성이 ‘흑백의 무한’이 되는 세계이다. 흑백의 골격과 주름이 어둠 속에 빛나는 돌의 생명력과 존재감, 사물의 숨김과 은페, 존재의 밀도를 드러내는 것이다가 어느 순간에는 무한 속으로 사라진다. 그러므로 이재삼에게 숭고는 흑백의 세계가 교차되는 사물성의 극단에 대한 어떤 것이 될 것이다. 달빛, 그리고 폭포와 물, 물 위에 피어오르는 안개, 밤바다에 고요히 존재를 드러내는 섬의 연속된 풍경, 수석의 정원에 이르기까지 그것이 달빛과 함께 그려진 존재라면 사물은 희미한 형상을 입고 한편으로는 형상을 오롯이 하고 한편으로는 형상을 지우면서 사물성을 빛내고 있다. 수석의 정원이 표현된 <달빛>은 이것을 극적으로 상징하고 있다. 숲과 정자의 어둠을 배경으로 달빛이 비친 정원의 돌은 표면의 질감과 물체감으로 정원에서 부유하듯 떠오르기도 하고 가라앉기도 하는데 현실적이지도 비현실적이지도 않다.
이재삼의 작품을 말하면서 낭만주의와 프리드리히를 상기한 것은 감성과 직관을 통해 내면에 더욱 귀 기울이고 강력한 주관과 창조를 지향하려 했던 점을 생각하기 위해서다. 프리드리히가 인간의 고독과 자연의 황량한 아름다움 속에서 낭만주의적 숭고를 생각했다면 이재삼은 자연의 세계 자체를 흑백이라는 사물성의 추상 속에 구현함으로써 지극한 형상이기도 하고 형상을 넘어서는 ‘저 너머’ 무한이기도 한 세계를 보여준다. 확실히 달빛은 인간적인 정념과 사물의 부드러움을 촉발시킨다는 점에서 이 감성적 매개의 전제 위에서 흑백의 사물성과 구분되는 주체의 전망, 시공과 흑백의 추상에 대한 보다 전진된 세계상의 제시가 필요하다.
류철하・독립 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