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작가 재조명 – 긴호흡
작가 재조명 __ 긴호흡
소마미술관 5.30~7.27
스키타이 황금뿔잔, 클래식 카, 지모신과 옹관묘. 마치 미술관이 박물관으로 변신한 듯하다. 소마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3인의 작가전은 한국 현대미술의 궤적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김차섭은 1975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우연히 본 고대 스키타이인이 만든 황금뿔잔과 한국 골동품상에서 구입한 은잔의 둘레가 7.2cm로 같다는 데 놀랐고, 그것이 야구공의 둘레와 같다는 데 또다시 놀랐다고 한다. 그는 그 은잔을 들 때마다 고대 스키타이인이 달리던 푸른 대지와 현대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장의 함성이 교차된다고 한다. 고대와 현대가 하나가 되고, 동양과 서양이 교차하고, 신화가 과학을 만나는 것이 바로 미술이라는 생각을 김차섭은 버린 적이 없다.
김차섭과 마찬가지로 전수천에게도 고대와 현대, 동양과 서양의 문제는 언제나 그의 작품세계의 중심에 있었다. 그러나 전수천에게 양축은 언제나 현실이라는 현재적 시간 프레임 안에서 벌어진다. 김차섭의 경우 두 개의 상충하는 세계가 수학과 과학이라는 이성적 사고를 통해 이어졌고 그것은 다각형 같은 기하학적 기호로 그의 작품 속에 깊숙이 각인된다. 반면 전수천은 현대 자본주의라는 현실적 틀 속에서 과거와 현재, 동과 서의 문제가 충돌하면서 동시에 자본생산의 메커니즘으로 작용하는 방식을 주목하고 있다.
특히 전수천은 이번 전시에서 발터 벤야민이 1936년에 쓴 논고에서 주장한 ‘아우라’의 개념을 전면에 내세웠다. 미술품이 대대손손 누려왔던 복제불가능성이 오늘날의 복제 기술력에 의해 해체되기보다는 도리어 신비화되는 현상을 냉철히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2008년 <바코드를 넘어서전>에서 모든 문명적 가치를 상품화해내는 현대 자본주의의 괴력을 검은색 바코드로 압축해 보여준 바 있다. 그러나 이제는 상품의 물신화를 비판하기보다는 그것이 가지는 인간 본연의 가치를 창조성의 한 축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는 ‘인간의 정서적 아우라’를 말하면서 이것은 ‘무형의 환상을 꿈꾸는 우리에게 미래 지향적으로는 충전작용을 하는 창의적 생산의 원칙’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전수천은 이번 전시에 발터 벤야민 시대에 만들어졌을 법한 클래식 자동차 앞에 벤야민이 현대 인류의 예술적 구원의 매체로 주목한 영화 스크린을 걸어 놓고, 아우라를 설명하는 벤야민의 문구를 통과시켰다. 실제로 1929년산 고풍스러운 스포츠카의 늘씬한 보닛을 보면 산업문명의 총아가 가지는 사용가치가 예술의 아우라를 충분히 위협하고도 남을 것 같다.
벤야민은 촉각적 가치가 결국 인류를 구원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시각적 감상으로는 현실을 변화시킬 수 없고, 일상적 사용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촉각적 체험만이 우리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스크린 문화가 자극일변도로 흐르는 것은 시각적 매체가 촉각성을 끌어내려는 노력에서 나온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방향을 잃은 충격요법은 정서적 피로감만을 가져오는 듯하다.
오늘날의 스크린 문화의 속도와 충격에 피로감과 식상함이 느껴진다면 한애규의 작품은 그것의 좋은 치유가 된다. 한애규는 일상에서 얻어지는 촉각성의 회복 없이는 현대 시각문화의 성과는 물거품일 뿐이라고 말한다. 한애규의 테라코타 작품은 점토질의 따스한 감촉과 함께 긴장감 넘치게 부풀어 오른 둥근 양감으로 우리의 시각을 이완시킨다. 특히 <기둥들>은 크기와 주제에서 관객을 압도한다. 진시황릉의 토용들이 죽은 황제의 보위를 위해 서있다면, 돌장승처럼 무뚝뚝해 보이는 한애규의 인체 기둥은 보이지 않는 뭔가를 머리에 지고 묵묵히 버티고 있다. 최근 들어 인류 선사시대의 몰락한 문명이 한애규의 손을 통해 계속해서 새롭게 재해석되고 있는데, 석기시대의 여인상, 삼한의 옹관묘, 키클라데스 원시조각이 그것이다. 과거의 신비로운 조형세계가 한애규의 밀도 높은 감각을 통해 생생하게 다시 태어나고 있는데, 이들을 놓고 보면 그의 <기둥들> 위에는 역사의식이라는 보이지 않지만 우리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역사적 체험이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김차섭, 전수천, 한애규 세 작가의 작품세계를 묶어낸 이번 전시는 소마미술관이 개관 이래로 꾸준히 기획해 온 작가 재조명전의 일환으로 기획되었다. 이번 전시는 5년 만에 다시 열린 전시이지만, 선정 작가의 무게감이나 전시의 충실도에서 한동안 중단되었던 아쉬움을 다 갚아버리고 있다. 전시장 규모에 비해 작품이 좀 많은 듯하다는 느낌도 받지만, 작가 재조명이라는 기획의도를 고려한다면 납득이 간다. 작가마다 출품 작품의 시간적 폭이 제각각 다르다는 것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전수천의 <아우라의 시간여행>에 출품한 1929년산 자동차가 실제로 달리는 자동차로 전시장 문턱을 넘을 때 큰 굉음을 냈다고 한다. 한애규의 작품을 위해 전시장 바닥면까지 바꾸고, 김차섭의 작품세계를 위해 작업노트와 드로잉 북을 대여하는 등 기획자의 노고도 전시명처럼 ‘긴 호흡’을 보여주었다.
양정무・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