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최소한의 최대한
최소한의 최대한
아트센터 화이트 블럭 2.28 – 4.27
‘최소한’이라는 표현은 늘 많은 것을 생각나게 하는 단어다. 미술에 있어 특히 그렇다. 미니멀리즘과 같이 재료의 사용이나 작가의 개입을 최소화함으로써 대상의 본질에 다가가려 했던 움직임이나, 미시세계에 대한 관심을 작품으로 형상화한 동시대 작가들을 떠올릴 수 있다. 헤이리에 위치한 아트센터 화이트 블럭에서 열린 <최소한의 최대한>은 최소한의 표현을 통해 최대한의 의미를 이끌어내는 작가 3인의 작품세계를 조망한 기획전이다.
전시에 소개된 작업들은 기본적으로 회화의 범주 안에서 ‘최소한’이라는 개념을 나름의 조형어법 아래 진지하게 탐구한 결과로 보인다. 우선 이강욱은 세포처럼 작은 입자들이 나름의 질서아래 화면 곳곳에 집적되어 있는 모습을 통해 전체와 부분의 긴밀한 상호관계를 고찰한다.
그의 작업은 언뜻 최소한의 선과 점으로 표현한 그림으로 보인다. 하지만 캔버스의 표면에서 느껴지는 전후의 깊이감과 시간성, 미디엄으로 마감된 표면 아래 자리한 미세한 이미지가 빛의 산란현상으로 인해 무한반복, 확장되는 모습은 그의 작업이 결코 구체적인 대상의 표현에 머물러 있지 않고, 확장된 시공간 안에서 대상화된 세계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의 거시적 문제를 다루고 있음을 확인시킨다.
정승운의 <공제선>은 가늘고 긴 실을 캔버스 삼아 그 위에 수차례 물감을 쌓아올린 후, 벽과 벽 사이를 가로지르도록 설치하여, 전시공간을 가로지르는 여러 개의 현수선을 만들어낸 작업이다. 작가는 최근 몇 년간 <공제선> 연작을 통해 서로 다른 두 개의 대상이 만나 만들어내는 경계면을 다양한 조형어법으로 노련하게 풀어내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얇은 실 위에 얹혀진 물감층으로 최소한의 양감과 적당한 무게감을 만들어, 백색의 공간 안에서 유려한 곡선들이 중력에 의해 자연스럽게 늘어진 풍경을 연출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축적한 공제선의 추상적 이미지는 백색의 공간을 배경삼아 허공에 그린 커다란 색선의 드로잉과 같은 효과를 전달한다. 주어진 공간에 감각적으로 개입하는 그의 감각적인 면모와 회화적 표현에 대한 작가의 오랜 성찰을 다시금 환기시킨 작업이다. 이강욱과 정승운이 회화적 물성을 바탕으로 한 최소한의 표현에 집중했다면, 오윤석은 삶의 기억 속에 자리한 구체적인 형상들을 지워나가면서 결국엔 본래의 이미지를 찾아보기 힘든 단색의 화면을 만들어낸다.
그의 회화에서 보는 이가 얻는 최소한의 정보는 알 수 없는 글자나 표식으로 뒤덮인 화면, 혹은 그 사이로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는 얼룩 같은 이미지의 흔적들이지만, 그가 만든 회화의 표면은 작업과정을 역방향으로 기록한 4분33초의 영상작업에서 보듯이 삶을 성찰하기 위한 일종의 수행처럼 반복되는 행위의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를 획득해 나간다.
최소한 혹은 최대한이라는 표현은 그 범위와 대상을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의미로 전달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 하지만 적어도 이번 전시는 3명의 작가가 경험한 세상의 모습을 각자 나름의 가장 압축되고 정제된 형식으로 시각화하여 성찰하는 방식을 통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현대미술의 추상적 경향의 면모를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겠다.
황정인・독립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