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홍지연 – 사건의 재구성

홍지연  __  사건의 재구성

가회동60 10.8~26

1990년대 후반 미술사 인형 연작, 가면 연작 등 팝적인 이미지의 설치작업을 발표하며 등장한 홍지연이 이후 민화 이미지를 차용한 회화작업에 매진한 지  10여 년이 되었다. 1990년대 이른바 ‘신세대’ 문화라고 지칭할 만한 현상에서 두각을 보였던 홍지연이 어느덧 설치작업 10년, 회화작업 10년, 총 20년 화력을 회고하는 시점에 이른 것이다.
1990년대는 앞선 시대의 억압적 정치 현실에서 벗어난 한국의 청년세대가 소비사회와 대중문화의 새로운 감각을 가볍고 경쾌하게 즐기기 시작한 ‘신세대문화’ 의 기점으로 언급된다. 대학생 집단 내에서는 학생들의 정치사회적인 개입과 관심이 퇴로하면서 뚜렷한 분기점을 형성하는 지점으로 언급된다. 1990년대 전반 홍익대에서 미술을 전공한 홍지연은 진중한 민족의식과 사회적 부채의식에서 벗어난 첫 세대의 작가였던 셈이다.
1990년대의 신세대는 가볍고 경쾌하게 대중문화 시대의 시각이미지를 즐기기 시작했고, 이 시기에 청년기를 보낸 홍지연은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의 구분을 막론하고 팝적인 이미지, 키치적인 혼성에 주목하여 1990년대 후반부터 10여 년간을 설치작업에, 이후 10여 년간을 민화작업에 매진해왔다. 설치와 회화, 입체와 평면을 막론하고 홍지연이 지속적으로 관심을 보이는 지점은 익숙하고 평범한 이미지, 이미 완성되어 무수히 복제되고 흔하게 통용되는 이미지에 있었다. 그것이 서양의 경우라면 미술사의 유명한 걸작 이미지, 대중문화 시대의 폭주하는 시각영상의 이미지일 것이며, 동양의 경우라면 민속미술의 영역에 속하는 민화의 이미지일 것이다. 홍지연은 이미 너무도 익숙하여 하나의 클리셰가 되어버린 이미지에 꾸준히 관심을 보였다.
언뜻 그의 그림은 흔히 보던 민화 이미지의 재연처럼 보인다. 달이 있고, 해가 있고, 모란과 연꽃, 원앙과 기러기, 잉어와 나비, 복숭아와 호랑이, 매화와 곤충들을 볼 수 있다. 그러나 홍지연이 이런 이미지들을 가지고 지난 10여 년간 지속적으로 그림 그리는 재미를 잃지 않았던 것은 그러한 이미지들이 작동되고 구성되는 방식을 스스로 만들어냈기 때문으로 보인다. 평범한 민화의 모티프들은 그가 최근 깊은 인상을 받은 ‘힉스 입자’를 설명하기도 하고, 소셜 네트워크상에서 꼬리를 물고 말이 퍼져나가는 상황을 재연하기도 하며, 일인 주거 시대의 고립된 존재들을 시각화하는 방편이 되기도 한다. 익숙한 레디메이드의 민화 모티프들은 홍지연의 이미지 폴더 속에 차곡차곡 저장됐다가, 그가 소환하는 대로 불려나와 천연덕스럽게 새로운 민화의 시스템으로 재구성된다. 상투적인 이미지들이지만 개인적인 기억을 풀어내는 방식이 되기도 하고 사회적인 코멘트의 통로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21세기 홍지연식 버전으로 재활용된 민화의 모티프들은 민화를 표현의 도구로 삼은 그가 민화의 작동 시스템을 몸에 익혀 자신의 이야기를 능숙하게 풀어내는 도구로 삼기도 하고 흥미진진하게 화면을 구성하는 토대로 삼으면서 제대로 리뉴얼되었다. 농익은 원색의 향연으로 펼쳐지는 홍지연의 정밀한 민화 연작은 이러한 ‘민화의 재구성’이라는 방식으로 구동되고 있으며, 무엇보다 그것이 작가 자신에게 그림 그리는 기쁨을 주었으며 회화적 구성의 기본적인 룰이 되었기에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권영진·미술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