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장은의 – 사소한 환상
장은의 __ 사소한 환상
갤러리 조선 11.11~26
주로 영상작업을 해온 작가 장은의는 실재와 허상이 중첩된 공간 속에서 작가-작품-감상자 간의 관계 양상을 모색해왔다.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눈>(2008), <프로젝트 플레이어스(Project PLAYERS)>, <스케치북-손그림(Handzeichnung)>(2009)등은 관람자의 눈이나 작가의 손을 작품 감상과 제작 과정의 전제조건으로 제시했다. 그 과정들은 작가나 미술계의 의도적 장치들에 의해 가려진 계기들을 환기시키며 그 가설적 인과관계를 밝히고 있다.
함부르크 조형예술학교 수석 졸업 후 8년 만에 연 첫 개인전 <진정한 사랑>은 빛과 그림자를 이용한 드로잉으로 실재와 비실재라는 기억과 재현의 문제를 다루었다. 이것이 2009년부터 “나는 그림을 머리로 그리는가, 눈으로 그리는가, 손으로 그리는가” 고심해온 작가가 작품과 재현의 상관관계를 도출하는 가설들을 작품 완성 이전으로 소급하여 현재화했다면, 이번 전시는 회화작업을 통해 일상을 예술로 전환시키는 절차들에 대해 탐색한다. “마음을 움직인 순간”을 작업 변수로 삼고 그 구체적이고 검증적인 절차를 위해, 작가는 일상적 감성의 단편들을 표본 추출한다. 그 일차적 자료는 사진인데, 작가는 오히려 순간을 영원 속으로 저장시키는 그 “편리한 문명”의 도구가 “진정한 나의 시간”을 빼앗았다고 말하면서, 그 잃어버린 시간을 그림을 통해 재-현(re- presentation)하고자 한다. <엄마의 배, 풍요> 등은 엄마의 과거와 사랑을 불러들이고, <푸른산>은 간판 위 구호처럼 ‘셀프’ 넘기를 하던 당시를 회상하며, <청소 1,2,3>은 새로운 출발을 가능하게 했던 순간을 기억한다. 손금 위로 고인 <오아시스>의 물은 마음을 움직인 계기들을 지도 위의 기호처럼 새긴다. ‘사소한’ 일상 속에 내재된 개인적 체험과 정서에 기반을 둔 작품들이다. ‘비물질적’인 시간의 영원함을 “욕망”하며, 작가는 직관에 의해 기록된 일상의 순간을 그렇게 환기시키고 각인시킨다. 그 보여주기 방식은 미술계의 구조와 그것이 작동되는 원리 등에 무심한 듯 보이는데, 이는 자기과시적인 모습 대신 온전히 그림이 되는 계기들을 추적하고자 함이다.
작가는 미학적 위계를 제시하기보다 옛 접착식 앨범을 연상시키고자 노란색 페인팅 칠로 각 작품들의 소소한 내러티브를 엮고 있다. 전시 의도를 구현하려고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나, 노스탤지어 자극을 견인하는 이러한 방식은 그림의 소재가 된 사진 이미지를 담은 프로젝션 장치에 비해 미흡해 보인다. 사진적 재현과 회화적 재현 사이의 간극을 드러냄으로써, 비물질적 계기들을 재-현해낸 공간적 장치가 이미 ‘사소함’에 대한 작가적 통찰의 유의미성을 밝혀내고 있기 때문이다. 비물질적인 광학적 조건들을 통해 큰 공간을 채우던 이전 작업의 충만함과는 달리, 힘을 빼고 초연한 듯 보이는 작업들 속에서 그 사소함이 “생각과 그림을 비워가는 것”에 대한 귀결로 보인다. 재현 매체나 전개 방식에는 큰변화를 보였지만 작가의 ‘그림에 대한 사랑’이 다양한 변인들을 관통한다. 작가와 작품, 일상과 그림 사이의, 결코 사소하지 않은 일련의 가설들이 작가 장은의의 다음 전시를 기대하게 한다.
박윤조·미술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