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저온화상 – 홍콩과 서울을 잇는 낮은 목소리
저온화상 __ 홍콩과 서울을 잇는 낮은 목소리
아트 스페이스 풀 11.6~12.7
실제 수신자가 많든 적든 매스미디어는 이름값하듯 다수를 향한다. 귀 기울이는 이가 많든 적든 길거리의 시위는 세상을 향한 외침이다. 그러나 그 둘의 목소리는 전혀 다르다. 특히 후자가 예술가에 의한 것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아트 스페이스 풀의 전시 <저온화상: 홍콩과 서울을 잇는 낮은 목소리>는 그 목소리의 차이를 서울의 작가 김동규와 홍콩의 수산 챈, 씨앤지를 통해 또렷하게 들려준다.
민주화 시위가 한창인 홍콩의 듀오 작가 씨앤지(클라라&검)는 끊임없이 거리로 나선다. 홍콩의 중국반환기념일에 길거리 약혼식을 올리고, 두 딸을 데리고 “우산 시위”에 참여한다. 그리고 그들의 행동이 미디어에 포착되면, 검이 그 장면을 유화 드로잉으로 그린다. 그 그림은 이미 미디어를 통해 확산된 사진과 기사를 옮긴 것이지만, 거친 필치는 매스미디어가 표방하는 신속하고 객관적이며 사실적인 성격을 흐려버린다. 수산 챈은 민주화 시위의 장면들을 덤덤하고 소박한 드로잉과 글을 통해 자신이 직접 발행하는 신문이나 포스터 등의 인쇄물을 만들어 배포함으로써 자신만의 마이크로미디어를 만든다. 또 검은색 천으로 얼굴을 가린 범죄자들의 모습을 드로잉에 담아 미디어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장치가 미디어를 통해 무차별적 불온함의 이미지를 덧씌우는 상황을 짚어낸다.
이렇게 홍콩 작가들이 미디어의 속성을 거스르며 미디어에 개입하는 것을 보면서, 김동규는 그들 움직임의 특징을 언어 안에, 정확히 말하면 언어의 빈 틈 안에 오롯이 녹여 넣는다. 매스미디어가 재빨리, 또렷하게, 종종 정신을 어지럽힐 정도로 시끄러운 목소리로 다수의 귀를 사로잡는 것과 달리, 이들은 느리고, 때로는 잘 들리지 않는 낮은 목소리로 세상에 대해 읊조린다. 다수를 위한 세상의 큰 마디들을 비켜가는 이들의 표현방식을 김동규는 매끈하게 분절되지 않은 언어로 번역한다. 그는 <구순 협주곡>에서 광둥어로 된 문장을 읽고, 또 홍콩 작가들에게는 한국어로 발음하기 쉽지 않은 문장을 읽게 한다. 상대방의 언어로 읽은 문장은 느리고 부자연스럽고 때로는 우스꽝스럽고 잘 전달되지 않지만, 바로 그 비규범적인 언어의 사용이 울림을 만들고, 작위적이지 않은 연대를 엮어낸다.
사실 홍콩과 서울 두 도시의 시위대가 이 예술가들이 주목하는 마디 없는 연대를 이미 읽어내고 있었다는 것은 그들이 공유한 노란 리본에서 드러난다. 거대 국가에 반환된 민주주의는 세월호 참사로 무너져내린 마음들만큼이나 되돌리기 어렵다는 것을 직감한 이들은 작은 표지를 공유하여 길고 지루한 서로의 저항을 위로하려 한다. 김동규가 홍콩의 작가들을 만나기 전 세월호 유족들의 시위 현장에서 벌인 퍼포먼스의 흔적인 <개나리부터 은행나무까지>는 종이가 찢어질만큼 격하게 그어놓은 볼펜 자국들로, 걸러지지 않은 격함이 자못 생경하다. 그러나 그 격함에 대한 영상 하나쯤 남겼을 법한 상황에서 별다른 기록도 없이, 스카치테이프로 조심조심 연결되어 모로 걸린 종이들은 건넛방에서 들려오는 이상한 발음들을 타고 울렁거린다.
낡은 LP판 튀는 소리처럼 이들의 낮은 목소리는 정해진 마디를 따르지 않지만 매끈한 소리들보다 더 큰 울림을 만든다. 다만 이들의 목소리를 듣는 이들도 가볍고 일시적인 빈티지 취향(요즘 “아시아”는 일부러 공장에서 만들어낸 빈티지 같다)에 머물지 않기를, 다른 누구보다 나 자신에게 다그치게 된다.
안소현·백남준아트센터 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