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Hands across the Water
Hands across the Water
갤러리 노리 7.4~8.4
국적이 각기 다른 작가들의 전시는 늘 공통의 관심사로 묶인다. 가령 아시아 작가나 작품을 식민주의 근대의 역사로 엮는다든지 아랍의 정치적 현실을 지리적 접근성으로 범주화하는 따위가 그렇다. 전자는 일본의 제국주의, 동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의 다른 언어와 역사를 동급으로 여기게 될 테고, 후자는 컨템포러리아트 시장으로 각광받는 사우디아라비아나 아랍에미리트가 팔레스타인이나 이라크와 동급으로 평가되는 오류를 필연으로 범하게 만든다. 이러한 정체성의 범주화는 현대 전시학의 필연적인 오류에도 불구하고 그 가치가 여전히 유효하다. 왜냐하면 정체성은 나를 규정하는 타자의 시선, 타자를 바라보는 내 안의 시선들이 만나고 결국 돌고돌아 예술이 물어야 할 가장 존재론적인 물음이기 때문이다.
“Hands across the Water”는 서구와 일본의 침략을 당하고 아픈 현대사를 겪은 우리나라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작가들로 구성되었다. 전시는 LA에 기반을 둔 백아트(Baik Art) 레지던시 프로그램의 결과물이다. 2013년 가을 제주에서의 짧은 체류기간을 통해 제주의 역사와 풍경, 사람에 대한 토론과 이야기를 자신만의 화법으로 읊은 작품들이다. 전시가 열린 제주 갤러리 노리는 1980년대 초 미술동인회 임술년의 멤버였던 이명복과 그의 부인이 운영한다. 어쩌면 전시의 맥락과도 어울리는 공간이다. 인도네시아의 헤리 도노(Heri Dono), 말레이시아의 자키 안와르(Ahmad Zakii Anwar)와 카우(Kow Leong Kiang), 그리고 한국의 한용진과 최태훈이 참여했다. 1995년, 2006년, 그리고 올해 광주비엔날레 참여 작가인 헤리 도노는 인도네시아의 현대사와 전통 인형극인 와왕(wayang), 민담 등을 제주도 해녀와 바다 풍경, 분단 한국의 풍경 속에 버무렸다. 목탄을 이용한 자키의 작품은 화면 가득한 오징어, 게 등이 제주 해녀들의 표정과 어울려 노동의 힘듦을 밝게 표현해낸다. 붓이 아닌 손의 놀라운 소묘가 돋보인다.
한용진의 미니멀한 조각작품은 제주의 현무암, 작가의 말을 인용하자면 막돌을 발견하여 최소한의 조각질로 만들어냈다. 80이 넘은 고령의 예술가가 삶과 예술을 대하는 태도가 돋보인다. 서울에서 마주쳤던 젊은 여성들의 표정과 패션을 옅고 빠른 붓놀림으로 표현한 카우의 도시인물화는 재현의 방식을 재현의 대상과 일치시키려 노력한 흔적으로 읽힌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눈여겨본 작품은 최태훈의 신작이다. 숟가락을 구부리고 눌러 만든 배의 형상은 세월호를 상징한다. 구체적 삶으로서 숟가락 하나하나는 아우성치는 배의 형상으로 완성되는데 하얀 벽면에 검은 배의 형상이 너무 아프다. 플라스마 기법의 숲과 우주 이미지로 유명한 그의 작품은 최근 일상과 사회적 존재, 그리고 정치적 맥락으로 옮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레지던시의 가장 큰 목적은 교류, 즉 만남에 있다. 얼굴과 얼굴, 사람과 풍경의 일대일 만남은 인터넷상의 접속과 차단 같은 차가운 만남이 아니다. 어느 정도의 불편함, 당혹스러움을 감내해야 하는 것이 만남이다. 한 시인이 말했듯, 한 사람과의 만남은 우주와의 만남이다. 그것은 늘 신비롭고 당혹스러운 자아에 대한 발견 혹은 여행이다. 레지던시의 필요성인 것이다.
정형탁・예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