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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보는 2016년 주요 전시
임승현 기자
2015년 국내 미술계는 이제는 공식처럼 자리 잡은 ‘비엔날레 쉬는 해’를 어느 해보다 활발하게 보냈다. 우선 ‘광복 70주년’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이슈가 비엔날레의 공백을 채우는 대규모 전시의 중추 역할을 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만 3개의 동일 주제 전시가 열렸으며 광복, 통일, 북한 등의 역사적 키워드가 대두했다. 또 다른 전시 흐름으로 ‘비미술의 미술관 유입’을 들 수 있다. K-pop 아이돌 스타 지-드래곤이 참여한 〈피스마이너스원: 무대를 넘어서〉(서울시립미술관, 2015.6.9~2015.8.23)은 대중문화와 미술관의 만남으로 주목을 받았다. 포스트 뮤지엄을 지향하며 미술관의 문턱을 낮춘다는 새로운 시도라는 긍정적인 평가와 부조화된 전시 구성, 아이돌의 성급한 예술가 만들기 프로모션이라는 비판이 엇갈리는 가운데 대중문화와 예술의 관계에 대한 공론장이 펼쳐지기도 했다. 국내 패션 전시의 질적 향상으로 평가받은 〈디올 에스프리〉(DDP, 2015.06.20~2015.8.25) 역시 범시각문화의 미술관 진입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전시다. 허영만의 만화를 조명한 대규모 개인전, 스탠리 큐브릭, 필립 가렐 등의 영화도 줄줄이 전시장으로 들어왔다. 이 밖에도 건축가 조민석이 감독해 〈2014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 황금사자상 수상으로 주목받은 〈한반도 오감도전〉(아르코미술관, 2015.3.12~2015.5.10) 부터 한국 전통 건축의 아름다움을 조명한 〈한국건축예찬: 땅의 깨달음전〉(삼성미술관 리움, 2015.11.19~2.6) 등 건축 관련 전시가 지속적으로 이어진 점도 주목할 만한 흐름이었다. 이러한 미술관의 장르 확대는 ‘전시’라는 매개체가 미술계 내부에서 통용되는 문법에 국한되지 않고 범문화 장르를 표현하는 도구로서 적극적으로 쓰였다는 점에서 ‘전시 활용 및 구성’의 변화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전시만큼이나 떠오른 이슈는 ‘미술시장’이었다. 〈KIAF〉의 경우 차별화된 VIP 관람방식, 페어 속 공공미술전 등 홍콩 아트바젤을 벤치마킹함으로써 국제적인 트렌드를 따르려는 시도가 있었다. 또한 국내외 시장에서 단색화가 미술시장의 키워드로 굳건히 자리매김했다. 반면 새로운 시장의 등장도 눈에 띈다. 신생 공간을 중심으로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굿즈 2015〉(2015.10.14~18)는 지난해 가장 주목받은 미술 행사 중 하나였다. 기존 미술시장의 형태를 탈피하고 작업과 상품의 중간지대에서 작가들이 부스를 차리고 소비자를 직접 만났다. 이 행사는 관객-소비자, 예술가-생산자의 관계를 재정의하는 기회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로써 시장에 새로운 층이 형성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부풀었다.
새로 개관한 거대한 몸집의 국립기관도 있다.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2004년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추진단이 꾸려진 지 10년 만에 공식 개관했다. 오랜 기간 속 끓이던 문제에 종지부를 찍은 국립기관도 있다. 1년 반 이상 공석이었던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직에 최초로 외국인 관장인 바르토메우 마리가 취임한 것이다. 마리 관장은 지난해 3월 바로셀로나 현대미술관장 재직 시 스페인 군주제를 풍자한 전시를 검열한 사실이 알려져, 그의 관장 취임을 반대하는 미술인들이 서명운동(국선즈)을 벌이기도 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 자체검열에 따른 전시작품 철거 등으로 불거진 ‘검열’논란은 미술계에서도 뜨거운 감자다. 2016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30주년을 맞이하는만큼 지난해 홍역을 치른 국립현대미술관이 한국현대미술을 대표하는 기관으로서 역할을 충실히 하길 바란다.
2016년 전시 키워드
그렇다면 2016년에는 어떤 전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현재까지 주요 미술관 및 갤러리에서 발표한 전시일정을 살펴보면 몇 가지 키워드가 눈에 띈다. 첫 번째는 ‘故 백남준’이다. 그가 우리 곁을 떠난 지 어느덧 10년이 흘렀다. 작고 10주기를 맞아 그를 추모하는 다양한 형태의 전시가 국내외를 막론하고 계속 될 전망이다. 국내에서 열린 첫 추모전은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열린 〈백남준 그루브_흥〉(2015.11.13~1.29)이다. 이어서 갤러리 현대에서는 아카이브 형태로 백남준을 추모하는 전시를 연다. 백남준이 요제프 보이스를 추모하며 갤러리 현대 뒷마당에서 펼친 진혼굿 퍼포먼스 〈늑대 걸음으로〉와 관련된 기록을 중심으로 전시한다. 퍼포먼스라는 현장성과 역사화된 자료를 같은 공간에서 보여줌으로써 백남준 작업의 의미를 되새긴다. 비슷한 기간 백남준아트센터에서는 인문, 과학, 미학자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기획자로 참여하여 백남준과 그의 작업을 다각도로 살펴보는 전시도 열릴 예정이다. 이 외에도 서울미술관에서 열리는 〈비디오 신디사이저전〉, 백남준아트센터와 간송문화재단이 만나 고미술과 백남준을 연결하는 전시가 이어진다. 회고전은 새로운 담론 제시보다는 작품이나 자료 나열에 그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올해 열리는 백남준의 추모전이 백남준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나 자료를 제시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또 다른 키워드는 ‘한불수교 130주년’이다. 한국과 프랑스는 수교 130주년을 기념해 2015~2016년을 ‘한불상호교류의 해’로 지정했다. 지난해 9월부터 프랑스 전역에서 우리나라 문화예술 행사가 펼쳐진 데 이어 다가올 3월부터는 우리나라에서 프랑스 출신 작가의 전시가 다수 열려 관객을 맞이한다. 우선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에서 열리는 〈도시괴담〉(4.5~5.29)을 들 수 있다. 이 전시는 팔레 드 도쿄 국제 레지던시 파비옹과 서울시립미술관 난지창작스튜디오 협업으로 진행한다. 김아영을 포함한 6명의 젊은 작가가 서울과 파리를 오가며 공동 워크숍을 진행한 후 그 결과물을 발표하는 형태다. 의례적인 각국 작가 프로모션을 떠나, 함께 양국의 문화를 경험하면서 만들어가는 과정이 주목된다. 서울시립미술관은 이 밖에도 같은 기간, 롤랑바르트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그의 저서 《카메라 루시다》에 담긴 사진론에 기반을 둔 현대 사진전을 서소문 본관과 일우스페이스에서 연다. 프랑스의 공공기관 CNAP와 FRAC의 주요 사진 컬렉션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기관의 협조를 받아 열리는 또 다른 전시로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과 프랑스 프리시 라 벨드 데 현대미술센터가 공공 주최하는 질 바비에 개인전, 프랑스 국립음악창작센터 GRAME의 전시를 초청해 토탈미술관에서 열리는 〈한-불 상호교류의 해 초청전〉이 있다. 이외에도 에르메스 아뜰리에에서 〈Quoi ?-L’Eternite〉(5.10~7.10)란 타이틀로 열릴 사단 아피프의 개인전, 독특한 유리구슬 모양으로 국내 관객에게도 익숙한 장 미셸 오토니엘 개인전(국제갤러리, 2.2~3.27) 등 프랑스 출신 작가의 개인전이 다수 열릴 예정이다.
한편 2015년 미술시장뿐 아니라 전시에서도 중심축이었던 단색화 열풍은 올해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정창섭 개인전>(국제갤러리, 2.26~3.27), 갤러리 현대에서 5월 26일부터 7월 10일까지 열릴 <한국 추상 드로잉(가제)전>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단색화의 입지가 흔들릴 만한 논란도 있다. 지난해 12월 K옥션 경매에서 5억여 원에 낙찰된 이우환 작품, <점으로부터 No. 780217>의 감정서가 위조된 사실이 밝혀지며 위작 논란이 점화된 것이다. 위작논란의 대두는 단색화의 미술사적 의미는 물론 시장에서의 위치에도 적색신호등이 켜진 것과 같다. 미술시장에서 작품의 역사성과 가치에 대한 신뢰는 최우선되어야 한다. 앞으로 ‘위작 유통’ 논란이 미술시장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위작 유통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마지막으로 올해 눈여겨볼 만한 전시 흐름으로 한국 근현대미술사에서 저항의 미술, 한국적 리얼리즘으로 평가받는 민중미술을 들 수 있다. 그 첫 테이프는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가 자문한 〈한국 현대미술의 눈과 정신2-리얼리즘의 복권전〉이 끊는다. 가나인사아트센터 전관에서 1월 28일부터 2월 28일까지 열릴 이 전시는 1980년대의 한국적 시대 상황에서 등장한 민중미술의 미술사·역사적 의미를 오늘의 시각으로 재조명하는 전시다. 학고재는 3월에 <주재환>, 10월초에 <민중미술전(가제)>까지 민중미술에 초점을 맞춘 전시를 올해만 2차례 열 예정이다. 한편 주재환은 7월부터는 김동규 작가와 함께 서울시립미술관 북서울미술관에서 김동규와 함께 〈2016타이틀 매치전〉을 선보일 예정이라 상·하반기 그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단색화를 이어 우리만의 고유한 미술사적 흐름으로 민중미술에 대한 평가와 연구가 지속되는 계기가 될 수 있을지 궁금하다.
한국미술사의 흐름을 적립하고자 하는 시도가 잇따라 포착되는 가운데 지난해에 비해 고미술 부문에서는 주목할 만한 전시가 발표되지 않은 상태라 아쉽다. 반면 젊은 작가를 주목하여 소개하는 전시는 각 기관에서 연례행사처럼 이어지고 있다. 이와 별개로 기존의 화이트 큐브를 떠나 2014~2015년에 널리 회자되기 시작한 신생 공간의 전시는 올해도 계속 이어질 예정이다. 그들의 단발성 전시 방식이 올해는 하나의 층으로 자리매김할지 혹은 이들의 전시 방식이 미술관으로 입장하면서 기존 범주에 합류할지도 지켜볼 만한 이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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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날레의 전환점에 서서
바야흐로 ‘비엔날레의 해’다. 짝수 해가 되면 미술계는 비엔날레라는 매가톤급 전시 준비로 분주해진다. 올해 열릴 대표적인 비엔날레 3인방도 마찬가지다. 아직까지 구체적인 주제와 참여 작가 라인업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전시에 대한 기대감은 어느 해 못지않다. 스펙터클한 비엔날레를 지향하던 예년과 달리 올해의 비엔날레는 전반적으로 어깨에 들어간 힘을 빼고 새로운 접근을 모색하는 시도가 눈에 들어온다. 거대담론 제시보다는 소통을 중심으로 한 전시 구조의 매개에 초점이 맞춰진 듯 보인다.
우선 제11회를 맞이한 〈2016 광주비엔날레〉(9.2~11.6)의 경우, 지난해 6월 스웨덴 스톡홀름 텐스타 쿤스트홀(Tensta Konsthall) 디렉터 마리아 린드(Maria Lind)(사진왼쪽)를 예술총감독으로 선정했다. 스웨덴 출신인 그는 그동안 제도권 전시와 차별화된, 예술의 사회적 역할을 반영한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기존에 그가 선보인 전시가 기관의 역할과 교육 프로그램과 전시의 긴밀한 연결을 이뤄내는 등 ‘과정 중심’으로 이뤄져왔기 때문에 이번 광주비엔날레에서도 광주 지역민의 참여를 이끌어낸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움직임은 최종 주제어 선정에서 이미 드러났다. 감독이 임의로 주제를 제시하기보다 키워드를 던진 오픈포럼, 국내외 리서치 등을 통해 주제어를 공개적으로 구체화해가는 과정부터 관객의 참여를 이끌어내고 있다. 2015년 12월 3일에는 오픈포럼을 개최하고 “예술은 무엇인가?”라는 거대한 물음하에 ‘예술에 대한 신뢰 회복’, ‘미래에 대한 상상력’, ‘매개체로서의 예술’이라는 3개의 키워드를 발표한 바 있다. 이와 더불어 보조 기획자 4인(네덜란드 거점 큐레이터인 최빛나를 비롯해 미쉘 웡(Michelle Wong) 홍콩 아시아아트아카이브 연구원, 마르가리다 멘데스(Margarida Mendes) 큐레이터, 아자 마모우디언(Azar Mahmoudian) 아시아시각예술센터 공동 큐레이터)도 선임되어 지역과 연계한 다양한 문화예술 프로젝트를 수행할 계획이다.
한편 2014년 감독 선임 문제로 잡음이 끊이지 않았던 부산비엔날레는 9월 6일부터 11월 30일까지 열리는 〈2016부산비엔날레〉감독을 일찌감치 선정했다. 중국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중국 하우아트뮤지엄 관장 윤재갑(가운데)이 전시감독을 맡았다.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활동하는 큐레이터로서 한·중·일 3국의 자생적 아방가르드를 다루는 내용이 전시에 포함될 예정이다. 윤재갑 전시감독은 “1990년대 이전의 로컬 아방가르드 시스템과 1990년대 이후에 대두한 글로벌 비엔날레 시스템, 이 둘의 관계(연속-불연속-습합)를 집중적으로 거론할 생각이다”라며 전시 얼개를 밝혔다. 특히 이번 전시는 부산시립미술관과 고려제강 수영공장 전체를 활용하여 역대 비엔날레 중 최대 규모가 될 전망이다.
전시장 규모가 넓어진 것은 올해로 9회째를 맞이한 〈SeMA 비엔날레 미디어시티서울 2016〉도 마찬가지다. 백지숙(오른쪽)이 예술감독을 맡아 9월 1일부터 11월 20일까지 열릴 이번 비엔날레는 예년과 달리 전시공간을 대대적으로 확장했다. 기존 전시공간인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을 포함 남서울생활미술관, 북서울미술관,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까지 장소를 넓혔다. 광주비엔날레와 마찬가지로 〈SeMA 비엔날레 미디어시티서울 2016〉 역시 프리비엔날레 행사를 열면서 본 전시 시작 전부터 예열을 가하고 있다. 앞으로 연속적인 워크숍과 학교를 운영하며 총 4번에 걸쳐 비정기 간행물을 제작 및 배포할 예정이다. 지난 11월 27일 열린 출판 회의로 출간할 간행물의 서두를 열기도 했다. 백지숙 감독이 밝힌 이번 비엔날레의 주제는 “떠돌아다니는 지식의 꼴들에 반사되는 미래의 모습들”이다. 다시 말해 〈SeMA 비엔날레 미디어시티서울 2016〉은 동시대 미디어들이 만들어내는 커뮤니티의 다양한 양상에 초점을 맞춰갈 예정이다. 백지숙 감독은 전시를 짚는 주요 내용으로 “아시아 지역에 집중했던 지난 회에 비해 남반구의 주요한 몇 가지 상상력을 견인하며, 여성, 청소년, 장애와 보철, 불확실성과 독창성 등을 토픽으로 한다”고 전했다.
올해 비엔날레는 전체적으로 전시장소를 분산하여 공간마다 전시의 차별성을 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유기적인 관계항을 확장하는 방식을 취해 본 전시의 화려한 개막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전시 과정 자체를 비엔날레 행사로 포함하려는 시도가 보인다. 미술계의 올림픽이라고 불리는 비엔날레의 화려함을 걷어내고, 관객의 적극적인 참여와 개입을 통해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비엔날레의 앞길이 기대된다. 임승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