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진에 관한 새로운 시각 8
납작하고 평평한 공간 사진은 이내 돌진한다, 그래픽으로
전종현 | 디자인·건축 저널리스트⠀⠀⠀⠀⠀⠀⠀⠀⠀
지금은 21세기가 출발한 지 21년째다. 미래 사회를 예측하는 상상의 기준점이던 2020년, 우리는 코로나19라는 팬데믹과 함께 상상의 반강제적 실현과 동시에 후퇴하는 진화를 생생하게 목격 중이다. 코로나19 이후의 인류세에 대해 여러 추측이 난무하는 가운데 사진에 대한 담론은 활발해 보이지 않는다. 이유가 뭘까. 그동안 단단하게 쌓아올린 개념과 틀이 ‘혁신’이란 이름 아래 무너지고 대안적 이야기가 진행된 지 이미 10년이 넘었기 때문이다. 2007년 출시한 애플 ‘아이폰’의 등장으로 개막한 스마트폰 시대와 200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소셜미디어의 보편화가 던진 여러 질문은 특히 공간 사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공간 사진은 평평해지고 납작해지다 이제는 그래픽으로 돌진하는 형국이다.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로 자각한 새로운 이미지 생산자들
2007년 1월 9일 〈맥월드 2007〉 행사에서 故 스티브 잡스는 이렇게 말했다. “오늘, 애플은 전화기를 다시 발명할 것입니다.” 그날 공개된 iOS 기반의 아이폰 1세대는 iPod로 대변되는 음악 재생기기, 휴대전화, 그리고 인터넷 통신기기를 결합한 혁신적인 제품으로 21세기 인류의 삶을 완전히 바꾼 혁명의 시작점이었다. 이후 구글이 안드로이드 OS를 오픈 소스로 뿌리고 아이폰 앞에서 망하게 생긴 휴대전화 브랜드가 모두 안드로이드에 붙으면서 전 지구가 스마트폰으로 가득 차는 장관이 펼쳐졌다. 이런 과정에서 사용자가 단지 기능을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강력한 생산자로 변모하는 현상이 생겼으니 바로 스마트폰에 내장된 카메라라는 하드웨어와 소셜미디어라는 소프트웨어의 합작이었다.
기존 휴대전화에서 카메라는 그 기능이 변변치 않았다. 혹 성능이 좋더라도 개인이 남긴 시각 기록을 내부 저장공간에 보관하는 역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스마트폰이 전 세계 IT 산업의 격전지로 떠오르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마치 작은 컴퓨터처럼 취급되는 스마트폰의 하드웨어는 기술의 집약체로 떠올랐고 그중 스마트폰 카메라의 성능이 큰 이슈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기존 ‘똑딱이 카메라’로 분류되는 보급형 콤팩트 디지털카메라를 대체할 수 있는 기능이 스마트폰에 내장되는지가 소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대두됐다. 수많은 보급형 콤팩트 디지털카메라는 mp3 플레이어처럼 멸종했고, 대신 고급형 모델이 나타나며 스마트폰이 넘볼 수 없는 이점을 제공했지만 소비자에겐 큰 관심거리가 아니었다.
그들에게는 전화 기능, 인터넷 접속, 음악 듣기, 게임, 각종 애플리케이션을 망라한 이 마법의 도구가 동시에 그럴듯한 사진 이미지까지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특히 내부 메모리 속 기억으로 치부되던 사진이 지구상의 수많은 사람과 연결되는 온라인 커뮤니티 플랫폼인 소셜미디어에 노출되기 시작하면서 사용자는 소비 행위에 몰두하던 스스로가 동시에 아주 강력한 생산자가 될 수 있음을 자각했다. 새로운 이미지 생산자의 탄생이라 부를 만하다. 제 모습을 포함해 눈의 망막에 맺히는 모든 것을 스마트폰으로 잡아낸 결과물은 소셜미디어를 움직이는 핵심 동력으로 부상했고 이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 생산자와 생산물은 모든 것을 휩쓸고 바꾸었다. 공간도 그 일부였다.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로 자각한 새로운 이미지 생산자들
2007년 1월 9일 〈맥월드 2007〉 행사에서 故 스티브 잡스는 이렇게 말했다. “오늘, 애플은 전화기를 다시 발명할 것입니다.” 그날 공개된 iOS 기반의 아이폰 1세대는 iPod로 대변되는 음악 재생기기, 휴대전화, 그리고 인터넷 통신기기를 결합한 혁신적인 제품으로 21세기 인류의 삶을 완전히 바꾼 혁명의 시작점이었다. 이후 구글이 안드로이드 OS를 오픈 소스로 뿌리고 아이폰 앞에서 망하게 생긴 휴대전화 브랜드가 모두 안드로이드에 붙으면서 전 지구가 스마트폰으로 가득 차는 장관이 펼쳐졌다. 이런 과정에서 사용자가 단지 기능을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강력한 생산자로 변모하는 현상이 생겼으니 바로 스마트폰에 내장된 카메라라는 하드웨어와 소셜미디어라는 소프트웨어의 합작이었다.
기존 휴대전화에서 카메라는 그 기능이 변변치 않았다. 혹 성능이 좋더라도 개인이 남긴 시각 기록을 내부 저장공간에 보관하는 역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스마트폰이 전 세계 IT 산업의 격전지로 떠오르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마치 작은 컴퓨터처럼 취급되는 스마트폰의 하드웨어는 기술의 집약체로 떠올랐고 그중 스마트폰 카메라의 성능이 큰 이슈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기존 ‘똑딱이 카메라’로 분류되는 보급형 콤팩트 디지털카메라를 대체할 수 있는 기능이 스마트폰에 내장되는지가 소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대두됐다. 수많은 보급형 콤팩트 디지털카메라는 mp3 플레이어처럼 멸종했고, 대신 고급형 모델이 나타나며 스마트폰이 넘볼 수 없는 이점을 제공했지만 소비자에겐 큰 관심거리가 아니었다.
그들에게는 전화 기능, 인터넷 접속, 음악 듣기, 게임, 각종 애플리케이션을 망라한 이 마법의 도구가 동시에 그럴듯한 사진 이미지까지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특히 내부 메모리 속 기억으로 치부되던 사진이 지구상의 수많은 사람과 연결되는 온라인 커뮤니티 플랫폼인 소셜미디어에 노출되기 시작하면서 사용자는 소비 행위에 몰두하던 스스로가 동시에 아주 강력한 생산자가 될 수 있음을 자각했다. 새로운 이미지 생산자의 탄생이라 부를 만하다. 제 모습을 포함해 눈의 망막에 맺히는 모든 것을 스마트폰으로 잡아낸 결과물은 소셜미디어를 움직이는 핵심 동력으로 부상했고 이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 생산자와 생산물은 모든 것을 휩쓸고 바꾸었다. 공간도 그 일부였다.
납작하고 평평한 이미지에 얽힌 사연들
공간은 본디 3차원이다. 이를 2차원으로 기록한 게 공간 사진이다. 3차원의 공간감과 입체감을 2차원 평면으로 옮기려면 단순한 변환이 아니라 ‘구현’이 필요하다. 그 능력을 가진 사람들을 우리는 전문가라 불렀고 그 결과물을 존중했다. 하지만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의 대중화는 이런 전례를 송두리째 무너뜨렸다. 전문적인 결과물은 그 장점이 소실되지 않는 조건에서 비로소 빛을 발한다. 사진의 경우 디테일을 확인할 수 있는 최소한의 크기, 사진가의 의도 혹은 피사체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가로 세로 비례의 담보가 그에 속한다. 하지만 지난 2010년대를 되짚어 보면 이 두 가지 필수 요소가 모두 철저히 부정당했다.
아무리 커도 한 손바닥으로 가릴 수 있는 스크린으로 이미지 소비 행태가 이동하면서 디테일을 전할 수 있는 초기 세팅이 불가능해졌다. 물론 확대를 통해 디테일을 확인할 수 있지만 이는 이미 정해진 스마트폰 스크린의 프레임에 맞춰 잘려나간 후의 이야기다. 게다가 이미지 중심으로 운영되며 가장 영향력 있는 소셜미디어 중 하나가 된 인스타그램은 (지금은 폐지됐지만) 가로 세로 예아네테 헤글룬드(Jeanette Hägglund) 〈Muralla Roja Series〉 비율이 동일한 정사각형 이미지만 업로드가 가능했다. 즉 기존의 대형 모니터에서 소비하던 공간 이미지는 극적으로 작아진 정사각형 창구를 통해 사진의 섬세함과 비례가 거세된 모습으로 납작해졌다. 그리고 피사체가 사라지고 그 자리를 ‘분위기’가 메웠다.
분위기란 무엇인가. 손에 잡히지 않는 그 무엇, 하지만 누구나 알 수 있는 그 무엇 아니던가. 실감 나게 2D로 ‘구현’한 이미지로 공간을 접하던 사람들은 스스로 생산자가 되어 실물의 이면을 직접 맞닥뜨리고 이를 기록하며 이해당사자가 원하는 일방적인 시선에서 벗어나 주체적인 관점을 획득했다. 이는 사진의 진실성에 관한 획기적인 진보였지만 동시에 강력한 환영을 구축하는 아이러니의 시작이었다. 소셜미디어에서의 상품성을 강화하기 위해 원래 공간에 존재하지 않던 물건이 투입되고 기묘한 각도와 톤이 기계적으로 추가되기 시작했다. 각자의 목적에 맞게 이미지를 가공하면서 진실은 다시 덮어졌다. 결국 사진에는 수많은 생산자가 각기 목적에 맞게 구축한 ‘분위기’만 살아남았다. 그리고 디지털 세계를 떠도는 분위기의 총합은 비현실적 공간을 축조하며 도리어 실물 세계를 붕괴시키고 있다.
공간 사진이 가진 효과 중 집객을 무시할 순 없다. 기분 좋고 멋진 공간 이미지는 사람들을 흡족게 하고 방문하고픈 마음을 들끓게 한다. 그런데 좋은 공간에서 자연스레 얻어진 좋은 이미지보다 그저 그런 공간에서 인위적으로 채집한 이미지가 소셜미디어 상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소비되며 집객률이 높아졌다. 그러자 이상한 일이 생겼다. 한 손으로 가려지는 스마트폰 스크린에서 최대한의 효과를 발휘하는 이미지를 뽑아내기 위해 도리어 실물 공간이 소셜미디어에 최적화된 형태로 변이되기 시작한 것이다. 하루 24시간 인터넷으로 실시간 연결되는 디지털 세계에서 분위기는 모두에게 공유되고 그에 따른 대중의 취향은 일정한 흐름으로 귀결된다. 나라, 지역, 역사, 배경 등 실제 장소의 맥락과는 상관없이 전 세계 각지의 공간 – 특히 메트로폴리탄적 대도시- 은 이런 거대한 조류에 상호 동조하며 결과적으로 인류사에 전례 없을 정도로 매 공간과 그 이미지가 모두 평평해지고 있다. 유행이란 이름으로 단단히 자리 잡은 이런 평준화는 끊임없이 배가 고파 다른 공간을 계속 잡아먹어야 성이 찰 듯싶다.
로한 허친슨(Rohan Hutchinson) 〈Post Hiroshige Series〉
그래픽으로 돌진하는 탐색에 부쳐
이미 전 세계적으로 구축된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의 촘촘한 거미줄에 붙어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공간 사진은 과연 어떤 대안을 고심할 수 있을까. 먼저 기술의 진화는 생각지 못한 돌파구가 될 수 있다. 모든 문제가 스마트폰 스크린에서 기인한다면 그 진원지가 진화하는 수밖에. 스크린이 접히는 폴더블 형이나, 돌돌 말린 스크린이 펴지는 롤러블 형은 지금 꿈이 아니라 현실이며, 세로 중심으로 위계가 잡히던 화면 체계가 다시 가로 중심으로 재편되는 상황을 예측하게 한다. 만약 사진의 디테일이 풀 프레임으로 전달되고, 비례의 제약이 없어질 정도로 스마트폰 스크린이 대형화된다면 그동안 불었던 참극이 일시에 소거되는 미래가 망상만은 아니다. 하지만 기술에 대한 기약 없는 희망 고문은 일방적인 의존이라는 점에서 창작자가 무척 경계해야 함이 마땅하다. 결국 내부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의미다.
요즘 몇몇 공간 사진에서 보이는 특징은 그래서 매우 흥미진진하다. 입체적 속성을 어떻게든 구현하려는 사진의 특성을 180도 뒤집어서 도리어 2D가 가진 고유의 속성을 미믹하는 방식으로 돌진하기 때문이다. 특히 그래픽 아트(줄여 그래픽) 영역에서 영감을 받아 선의 강조, 패턴화, 음영 제거, 균일한 면, 단순화를 추구하는 움직임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비록 의도는 다르지만 폭스바겐, BMW 등 전통적으로 3D 효과가 강한 엠블럼을 사용하던 카 메이커들이 최근 플랫한 2D 그래픽으로 리뉴얼하는 경향을 떠올려보면 디지털 최적화의 관점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작은 돌진은 수없이 다양하고 가시적인 방향성은 아직 비가시적인 게 현 상황이다. 어쩌면 이미 이니셔티브가 대중에게 넘어가버린 작금에 공급자 관점으로 특정 형식을 도모하는 게 공염불일지 모른다. 반응과 재반응의 상호 교류를 통해 자연스레 해결되는 것이 창작의 본질이니 말이다.
● < 월간미술 > vol.424 | 2020.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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