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타이틀 매치: 이형구 vs. 오민〉

7.24~10.14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신혜영 | 미술비평

도록 표지에 실린 두 개의 ‘눈’ 이미지가 많은 것을 말해준다. 두 개의 눈은 단순히 두 작가의 다른 예술적 시각을 상징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눈은 오랫동안 서양사상에서 인간의 대표적 감각기관이자 인식의 통로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그러한 시각에 대한 절대적 가치 부여는 눈이 몸의 일부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인식의 영역으로 직결시켰으며, 시각을 청각, 후각, 촉각 등 여타의 감각과 분리해 감각기관들 간의 위계를 가져왔다. 그러나 근대 이후 현상학을 비롯한 서양철학은 눈이 다른 감각기관들과 ‘함께’ 작동할 뿐 아니라 ‘움직임’을 전제로 한 육체의 일부분이며, 시각이 객관적 진리를 담보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점차 공감하게 되었다.

이형구 〈Kiamkoysek(키암코이섹)〉 혼합매체 가변설치 2018 | 사진 : 박홍순

〈2018 타이틀 매치〉 전시의 두 작가 이형구와 오민은 그처럼 ‘몸의 일부분으로서의 눈’을 긍정하는 이들이다.

먼저 잘 알려진 이형구의 작품 중 다수가 ‘그러한 눈’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볼록  / 오목렌즈를 통해 눈의 크기와 형태의 왜곡을 가져오는 헬멧이나 안구를 강조한 골상학 조각이 상징적이라면, 원활하게 뒤로 걷기 위해 볼록거울을 장착한 장치나 인간이 아닌 말의 시각으로 세상을 볼 수 있도록 만든 구조물은 보다 구체적으로 눈과 몸의 관계를 탐구한다. 뒤로 걸으면서 후면을 볼 수 있게 하거나 동물의 시각 구조로 지각하게 하는 장치들은 인간의 시각이 평소 몸의 움직임에 익숙해진 결과일 뿐임을 깨닫게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간의 몸과 신체기관에 대한 작가의 관심은 시각을 통한 상상력에 힘입어 다양한 동물의 신체를 재구성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해부학 연구를 통해 납작한 만화 캐릭터들의 뼈 구조를 역추적해 입체화한 조각들이나 익숙한 닭 뼈들을 크게 확대·조합하여 낯선 거대 생명체로 만든 대형 설치작품 등이 대표적이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신작 〈키암코이섹(Kiamkoysek)〉은 인체의 골격 일부분을 확대해 ‘기암괴석’을 연상케 하는 자연풍경으로 설치한 것으로, 이러한 일련의 작업 경향 연장선상에 있다.

한편, 영상을 주요 매체로 삼는 오민의 작업에서 역시 눈과 몸은 핵심적이다. 그녀의 영상작업은 음악과 무용을 비롯한 공연(performance)의 실행을 담고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시각예술로서 귀결된다. 무용수나 안무가뿐 아니라 피아니스트와 성악가에게도 일정 수준의 결과를 내기까지 몸의  숙련이 얼마나 중요한지, 따라서 오랜 연습과 훈련의 결과로서 일회적 공연이 아닌 연습과 훈련의 과정에서 몸의 움직임이 얼마나 다양하고 유의미한 변주를 만들어내는지, 또 그 자체로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에 작가는 주목한다. 그 때 가장 중요한 기준은 영상 속 행위자(performer)를 바라보는 작가 / 관객의 ‘눈’이다.


오민 〈이영우. 안신애. 그리고 엘로디 몰레〉(사진 왼쪽) 3채널 필름, 14채널 오디오 9분 28초 2015 사운드: 홍초선, 의상: Ajo, 퍼포먼스: 이영우(피아노), 안신애(보이스), 엘로디 몰레(수박도) | 사진 : 박홍순

오민의 영상작품은 대체로 공통된 네 가지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 우선적으로 두드러지는 것은 행위자의 ‘움직임’과 그들이 내는 ‘소리’이지만, 그녀의 작업을 보다 차별화시키는 것은 화면의 배경과 행위자들의 옷에서 추출되어 영상 전반의 시각성을 압도하는 ‘색’과 무대 및 소품 혹은 간헐적으로 삽입되는 그래픽으로 통칭되는 ‘시각 기호’다. 오민의 작품은 이러한 요소들이 한데 어우러져 분리될 수 없는 청각과 시각에 의해서는 물론 감상자의 몸을 둘러싼 일종의 환경으로서 지각된다. 관객의 감상 위치까지 철저히 고려하는 그녀의 작품 구상은 이번 전시에서 기존의 클로즈업 쇼트와 풀 쇼트 간의 대조와 더불어 오케스트라의 성부(聲部)처럼 점멸하는 일곱 개 화면이 만들어내는 리듬을 통해 더욱 빛을 발한다.

전시는 두 작가의 대표작들을 한 눈에 살피고 일련의 흐름 가운데 새로운 작업을 함께 감상하도록 기획되었다. 층을 달리한 개별 전시실에서 각 작가의 작업세계를 온전히 집중하여 감상하도록 한 것은 그러한 의도에 부합한다. 2014년부터 〈타이틀 매치〉라는 제목으로 북서울미술관이 개최해 온 해당 연례전은 그간 “세대 간의 상생적 소통을 모색”한다는 취지 아래 원로작가와 신진작가의 대결  – 실질적으로는 대결도 아닌 – 구도로 두 작가의 작품을 한 공간에 배치해왔다. 그러한 세대별 구분이 아닌 특정 관점에서의 연관성을 고려해 작가를 선정하고 각 작가에게 개인전에 해당하는 수준의 전시를 할애하는 올해의 변화된 방식이 작가와 기획자에게 부담이 될 수 있겠지만 관객에게는 좀 더 내실 있는 전시가 될 것으로 보인다. (‘타이틀 매치’라는 제목이 다소 어색하지만)

이번 전시에서 우리는 일견 무관해 보이는 두 작가의 작업세계를 함께 살펴봄으로써 유의미한 관계를 도출할 수 있었다. 각각 과학과 음악을 토대로 하는 작가로 평가받아 온 이형구와 오민은 실증주의의 영향하에 기계적 엄밀함을 우선시해 온 대표적 두 분야인 과학과 음악에서 단일한 원칙이 간과하는 우연과 차이의 중요성을 시각예술 영역에서 각자의 조형언어로 다양하게 펼쳐 보이고 있는 것이다. 몸의 일부로서의 눈과 지각의 한 측면으로서의 시각을 긍정함으로써 말이다.     글: 신혜영 | 미술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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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월간미술 > vol.404 | 2018.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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